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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신문 책 소개에서 가져온 말들(2025년 3월 16일)

4줄 공식 

“당신의 글이 재미없는 이유는 바로 당신이 알고 있는 그 ‘기승전결’ 때문이다.”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는 이야기의 핵심은 외부 사건 변화가 아니라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변화이며,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4줄 공식이다. ‘주인공이 욕망을 품는 순간’, ‘주인공이 결심하고 행동을 시작하는 과정’, ‘방해 요소와 갈등이 주인공을 시험하는 순간’, ‘주인공이 변화하고 결심을 해소하는 과정’의 순서로 4줄의 글을 쓰면 된다. ‘4줄 공식’을 세우기 전에 먼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 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들에게 완벽한 복수를 하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은 단순한 선악 구도의 이야기를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참신한 이야기로 바꾸어 준다. 요컨대, 주인공의 내적 자아에 일어나는 변화에 집중하면 이야기를 단순하고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다. _이은희, 『4줄이면 된다』(부키, 2025)

이은희, 『4줄이면 된다』(부키, 2025)

 


가속류 

가속류는 추상적 단문, 반복적 패턴, 우연적 배치, 무한한 재귀 루프 등 자동화된 기계의 작동 원리를 알고리즘으로 구축한 최근의 시적 경향을 가리키기 위해 제안된 개념이다. 배시은, 김뉘연, 성다영, 한재범, 문보영, 이유야, 변혜지 등의 시에서 관찰되는 이런 경향은 얼핏 내면의 욕구가 희박해 보이고 사유의 깊이가 얕아 보이지만, 과잉 데이터가 눈앞에 쇄도하는 시대에 디지털 가분체가 된 주체의 달라진 인지 방식을 반영하며 새로운 시 창작 알고리즘을 갱신할 가능성을 지닌다. 일인칭 화자의 메타적 중첩, 망각으로 인한 단절, 현재의 무한한 영속화 같은 가속류 시의 스타일은 독자들에게 낯섦과 껄끄러움이 동반된 언캐니(uncanny)를 불러일으킨다. (중략) 어떤 대상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천천히 곱씹어 표현하는 인간적 방법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통해 응답하는 기계적 방법은 이러한 시들이 닮아 있는 사고방식이자 무의식적 회로로 시 전반을 장악한다. 무언가 불순하며 알 수 없는 것이 끊임없이 끼어들고 있다는 감각은 현재를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시간으로 인지하게 만든다. 영원히 불변하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태. 온전한 인간도 온전한 비인간도 아니라 둘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 있는 상태. 그러나 이러한 상태는 미래에 대해 열려 있는 감각을 동반하며 새로운 주체가 될 가능성을 예비한다. _인아영,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밤은 아름답다」, 《문학동네》 2024년 겨울호, 115~116쪽 / 훑기의 형식으로 쓰인 글이어서겠으나, 비평가의 글보다는 작가나 시인의 글에 가깝다. 가능성은 논리가 아니다. 

 

거절 

깨끗한 거절이야말로 청탁할 수밖에 없는 상대를 덜 비루하게 하고 덜 상처받게 하려는 배려이다. 거절해야 할 때 거절하지 못하는 건 기대하는 게 있거나 의지하는 게 있기 때문이고 거절하는 것은 거래 혹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이다. _정끝별, 『깨끗한 거절은 절반의 선물』(민음사, 2025)

명령이라서 거절하지 못했고 부탁이라서 거절하지 못했다. 제안이고 약속이라서 거절하지 못했고, 연대고 고백이라서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다. 거절 못 했던 진짜 이유는 그것들이 다 일종의 거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절하지 못한 내가 이후에 상대에게 다시 명령하고 부탁하고 제안하기 위해서였을 것이고, 또다시 약속하고 연대하고 고백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_정끝별, 『깨끗한 거절은 절반의 선물』(민음사, 2025), 70쪽.

정끝별, 『깨끗한 거절은 절반의 선물』(민음사, 2025)

 

건전화폐

건전화폐는 사람들이 장기간을 생각하고, 미래를 위해 더 많이 저축하고 투자하게 만든다. 미래를 고려한 저축과 투자는 자본을 축적하고 인간 문명을 발전시키는 열쇠다. 돈은 한 경제의 정보, 측정 체계다. 건전화폐를 사용하면 무역·투자·기업경영이 확고한 기반 위에서 계속될 수 있지만, 불건전화폐를 사용하면 이러한 절차가 혼란에 빠진다. _사이페딘 아모스,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 위대선 옮김(터닝포인트, 2018).

 

경이(wonder)

경이(wonder)는 이미 알고 있던 익숙한 세계를 마치 처음처럼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페미니스트의 자원이다. _사라 아메드

우리가 처음 마주하는 어떤 대상이 (중략) 우리가 그전까지 알고 있던 내용이나 갖고 있던 믿음과 상당히 다를 때 (중략) 나는 경이가 모든 정념 가운데 가장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_르네 데카르트, 『정념론』

 

경합

중요한 것은 갈등이 적대의 형태가 아니라 경합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_샹탈 무페, 『경합들』, 서정연 옮김(난장, 2020) 

 

계엄 

추구미가 블랙코미디인 작가에게 계엄은 치명적이다. 솔직히 계엄 사태가 터진 직후에는 이제 문학에서 5(6)86 세대 비판은 끝났구나, 생각했다. 절대 악 앞에서 어떤 공간이 있고 복잡성이 있는가. 어떻게 아이러니가 가능한가. (…) 계엄령 앞에서는, 나부터도 윤석열 탄핵과 내란죄 처벌을 위해 하나의 전선이 되어 일단 이것부터 치워야 한다고 자꾸 생각하며 스스로를 향해 ‘정신 차려!’ 외쳐야 했다. _이미상

 

관용 

우리는 좌파건 우파건 교조주의에 굴복해서는 안 되며, 개인의 자유, 학문의 자유, 상호 관용의 가치를 굳게 믿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정치적으로는 분열되었지만 기술적으로는 통합된 이 지구에서 오랫동안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_버틀란트 러셀,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장석봉 옮김(21세기북스, 2025)

버틀란트 러셀,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장석봉 옮김(21세기북스, 2025)

 

관찰

관찰은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알 수 있는 길이자 글감이 된다.  _강원국, 『나는 말하듯이 쓴다』(위즈덤하우스, 2020)

 

광기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라고 나는 배워왔다.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이 말을 뒷받침할 증거를 부단히 찾아봤지만 운이 없었는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세계가 더 광기에 빠져드는 것을 목격했다. _버트런드 러셀,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장석봉(21세기북스, 2025)

 

귀여움(cuteness)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미적 경험을 분석한 시앤 응아이에 따르면, ‘귀여움’은 단지 친숙하고 무해한 대상에게 느끼는 애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귀여움은 무력하고 유약한 것을 사랑하려는 욕망인 동시에 그것을 더욱 하찮게 만들고 보호하려는 수동공격적 욕망이다. (중략) 귀여움은 모든 사물을 위험하거나 불편한 구석 없이 기분좋고 쾌적한 상품으로 포장하는 중산층적 소비 욕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에 순응하는 증상적 미감이지만, 동시에 너무 사소하고 연약해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추상적인 교환 논리에 휩쓸리지 않게 애정으로 수호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에 제동을 거는 비판적 수행이 될 수도 있다. _인아영,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밤은 아름답다」, 《문학동네》 2024년 겨울호, 114~115쪽

 

글쓰기 

나는 단순히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한 인간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대단한 이야기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것을 포착해야만 했다. _임레 케르테스 

다르게 쓰고 싶다면 더 깊이, 가까이 들여다보고 무엇을 끄집어낼지 고민해 봐야 한다. _김현정, 『연중 마감, 오늘도 씁니다』(흐름출판, 2025)

이제 누구나 글을 무한정 생성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기만의 내면에 몰두하며, 이를 표현하고자 수많은 시간 동안 애쓰고, 그리하여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자기만의 표현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질 것이다. 세상의 것들을 적당히 조합한 생성은 쉽지만, 진짜 옥석을 가려내고, 진짜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내가 진실로 하고 싶은 것은 무자비하게 공허한 콘텐츠들을 생성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진짜 믿으며 나아가는 인간이 되고 싶다. _정지우

김현정, 『연중 마감, 오늘도 씁니다』(흐름출판, 2025)

 

기능 습득의 역설

한 음악가에게 ‘인생 최고의 연주’가 언제였는지 물었더니, 콩쿠르 장소를 착각해 엉뚱한 곳에 갔다가 겨우 제때 도착해 숨을 헐떡이며 곡을 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가 성과 저하로 이어진다는 ‘확신’이 ‘편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경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가 신체를 완전히 제어하지 못함으로써 열리는 새로운 움직임, 의식의 지배에서 벗어난 몸이 보여주는 놀라운 세계를 통해, 반드시 머릿속에 명확한 ‘상(像)’이 있어야만 동작에 성공할 수 있다는 ‘기능 습득의 역설’을 끊어낼 실마리를 찾게 된다. _이토 아사, 『몸은, 제멋대로 한다』, 김영현 옮김(다다서재, 2025)

 

기부 

사용되는 자원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그 자원을 얻기 위해 투여된 노동의 가치도 그만큼 높아진다. 기부는 결코 손해만 보고 희생만 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_손봉호,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우리학교, 2025)

 

기술 

기술은 인간이 생물학적 제약을 벗어나 상상 속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치도록 했다. 한마디로 기술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활동 영역을 확장한다. 인류의 새벽이 밝아온 이래 인간은 기술과 한 몸처럼 발전해 왔고, 생물학적 인간의 모습은 변함없었지만 기술 덕분에 기술과 인간이 합쳐진 복합체는 더 큰 존재로 발전했다. 그 결과가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이다. _이정동, 『기술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김영사, 2024), 24쪽.

 

나눔 

살레시오 기숙학교에서 저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법과 나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내 것을 나누어주는 법을 배웠습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는 법이잖아요. _프란치스코 교황, 『나의 인생』(윌북, 2025)

프란치스코 교황, 『나의 인생』(윌북, 2025)

 

내면의 빛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번쩍거리며 지나가는 빛줄기를 발견하고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각 개인에게는 음유시인이나 현자들에게서 나오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빛보다 자기 마음속에서 샘솟는 한 줄기 빛이 더 중요하다. _랠프 월도 에머슨, 『자기 신뢰』, 이종인 옮김(현대지성, 2021)

 

내적 평화 

자신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 근본 원리에서 이기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_랠프 월도 에머슨, 『자기 신뢰』, 이종인 옮김(현대지성, 2021)

 

노년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어크로스, 2018)에서 마사 누스바움은 우리가 나이 든 몸에 혐오를 느끼는 이유는 인간 역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취약하며 죽고 부패한다는 사실을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름살이나 축 늘어진 피부, 반점 등 노인의 몸에 나타나는 현상들은 젊은이보다 죽음에 가까워져 있다는 표시다. 따라서 그에 대한 회피나 혐오는 어느 정도 문화적 보편성을 띤다. “오래 산다면 우리도 불가피하게 저 낙인찍힌 집단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느낌”과 관련된 까닭이다. 누스바움은 말한다. “주류 집단에 속한 사람들(즉 젊은 사람들) 모두가 언젠가 (일찍 사망하지 않는 한) 비주류 집단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는 노인 집단이 유일하다.” 이는 노화를 불확실성과 막연한 공포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역량을 정의의 바탕으로 삼는 철학자답게 누스바움은 운동, 식단 관리, 비외과적 성형 시술 등 노인들이 외모를 개선하려고 애쓰는 자기 돌봄을 긍정한다. “‘자연스러움’을 낭만화하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삶이란 만약 우리가 몸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일절 하지 않을 때 도달할 모습에서 탈피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다.” 따라서 나이 든 여성이 자신을 더 아름답게 가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정당하다. 노년의 몸에 대한 부당한 낙인에 맞서는 사회적 운동으로는 연령차별을 없애는 운동이 있다. 인종차별 철폐 운동, 여성 인권 운동처럼 낙인의 새로운 경계선인 연령 차별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일상의 전문가 

노동자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남다른 지식과 지혜를 갖추고 있는 일상의 전문가다. _윤지영,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클, 2025)


노화와 죽음의 존재 이유
 

노화와 죽음은 진화의 산물이다. 박테리아, 핵이 있는 미생물 대부분, 크기 작은 원생생물, 곰팡이, 효모균 같은 균류는 영원히 젊음을 유지한다. 이들은 산소부족, 화재 등 외부 요인이 발생하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이들은 번식 상대 없이 스스로 생식하고 성장할 수 있다. 죽음은 생명체가 ‘유성생식’과 ‘감수분열’이란 특성을 획득하면서 치르는 대가다. 우리의 선조 격인 생물들은 적극적으로 상대를 찾아내는 능력을 갖춘 생식 세포를 만들어냈고, 상대와 결합해 젊음을 되찾았다. 인간도 그런 길을 걸었다. 남녀가 만나 아이를 낳고, 아이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으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 부모는 늙어 죽었다. “프로그램된 죽음은 특정 개체와 세포에서 일어나는데, 배아라는 새로운 생명은 이렇듯 예상 가능한 유형의 죽음에서 벗어나는 수단이다.” 인간은 원생생물이나 박테리아와 달리 짝을 찾아 아이를 낳는 방식으로 영생을 획득했다. _린 마굴리스, <어째서 우리는 죽도록 설계되었는가>,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포레스트북스, 2025)

존 브록만 외 엮음,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포레스트북스, 2025).

 

 

다종 공동체 (Multi-species community

『동물을 위한 정의』(이영래 옮김, 알래, 2023)에서 마사 누스바움이 제안한 개념. 누스바움에 따르면, ‘방해받는 삶’에서 벗어나 ‘번영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정의이다. 그렇다면 이는 인간과 다르지만 제 나름대로 번영을 추구하는 지각 있는 비인간 동물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다종 공동체’란 이를 공동 목적으로 삼고 그에 마땅한 의무를 지는 공동체이다.

 

달동네 

1990년대까지도 서울 달동네는 서민의 삶과 애환을 담은 보금자리이자 가난한 동네를 뜻하는 대명사였다. 이 용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건 1980년대다. 1960~1970년대엔 판자촌, 불량주택주거지, 재개발지 등으로 불렀다. 그런데 1980년부터 동양방송에서 ‘달동네’란 연속극을 상영하면서 ‘서민들이 사는 고지대 마을’을 달동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드라마 시청률이 거의 60%대였다. ‘달동네’가 상영되는 날이면, TV 있는 집에 달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웃고 떠드는 모습이 달동네 풍속이 되었다. _유승훈, 『서울 시대』(생각의힘, 2025)

유승훈, 『서울 시대』(생각의힘, 2025)

 

도서관 

도서관은 진정한 미덕으로 가득한 고대의 유물이, 현혹과 기만 없는 모든 것이 보존돼 안식하는 신전이다. _프랜시스 베이컨

 

독서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심장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_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이창실 옮김(문학동네, 2016), 10쪽.

위대한 예술 작품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감동적인 교훈은 이것이다. 다른 무수한 목소리가 반대 의견을 낼지라도, 점잖으면서도 굳건한 자세로 자신의 자발적인 느낌을 더 소중하게 믿고 그 작품들이 웅변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_랠프 월도 에머슨, 『자기 신뢰』, 이종인 옮김(현대지성, 2021)

 

동료 상담 

동료상담은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인 위치에서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사회에서 고립돼 있는 정신장애인들에게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뜻한다. (중략) 철저히 혼자 버려진 것 같았던 경험들은 비슷한 현실을 맞닥뜨리고 혼란스러워하던 동료들에게 소통의 다리를 놔주도록 했다. (중략) 우정이라는 계기를 통해, 그동안 고립돼 자책과 연민으로 신음하던 동료들이 한 사람의 시민으로, 이 사회의 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됐다.  _6411의 목소리,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창비, 2024)

 

모녀 

엄마와 나는 즐거울 때는 같이 웃었지만 슬플 때는 서로 모른 척했다. 위로해 주지 않는 엄마에게 가끔 상처받기도 했다. 엄마도 나에게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엄마의 슬픔을 알아차린 적이 거의 없었다. 엄마는 들키지 않았으니까. _윤성희, 『느리게 가는 마음』(창비, 2025) 

 

미니멀리즘 

네덜란드의 식문화 미니멀리즘은 혀를 내두르게 할 때가 많다. 따뜻한 음식은 하루 한 끼만 먹는다. 따뜻한 음식엔 요리한 음식, 고기와 채소를 먹는 것도 포함된다. 하루 나머지 두 끼는 안 그렇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요거트를 먹거나 빵에 치즈를 한 장 얹어 먹는다. 채소도 없다. 그렇다고 빵을 많이 먹는 것도 아니다. _유신영, 『살아보니, 네덜란드』(산지니, 2025)

유신영, 『살아보니, 네덜란드』(산지니, 2025).

 

번역

순수 언어라는 게 있고 그걸로 쓰인 작품이 있다고 가정하면 특정 언어로 쓰인 작품은 모두 근원적으로 불완전하다는 게 발터 베냐민의 생각이다. 번역은 원문에 갇힌 순수 언어를 해방시키기 위한 (불가능한) 시도이고, 번역이 도달하고자 하는 건 원문 그 자체가 아니라 원문이 애초 되고자 한 그 무엇이다. 원문 언어와 번역 언어가 “보다 큰 언어의 파편으로서” 존재한다는 생각은 둘의 대결을 생산적인 것으로 보게 한다. 생산적 대결 관계를 뜻하는 ‘아고니즘’(agonism)을 보통 ‘경합’으로 옮긴다. 맞수를 존중하는, 그러나 치열한 대결. 번역가들은 서로 경합할 뿐만 아니라 원문과도 경합한다. _신형철 

 

신형철의 ‘지금, 이 문장’ [.txt]

지난 7일 밤에 내가 좋아하는 번역가 홍한별의 북토크를 진행했다. 사람들은 번역가를 자주 비난한다. 옛날엔 직역이라서 욕했고 요즘엔 의역이라서 욕한다. 그러나 순수 언어라는 게 있고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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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란 처음부터 귀족을 위해서 정해졌기 때문이다. 귀족은 법 바깥에 서 있고, 바로 그렇기에 법이 전적으로 귀족이 손에 쥐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물론 법에는 지혜가 들어 있다. 그러나 십중팔구 그것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게 우리에게는 고통스럽다. (중략) 우리에게 부여된 가시적이며 의심할 여지가 없는 유일한 법은 귀족이다. _카프카, 『법에 대한 의문』

 

부패 

부패한 사람이 권력을 행사하면 항상 다른 사람을 자신의 부패 속으로 끌어들이고, 자신의 수준으로 그들을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부패는 썩은 냄새가 나는데, 입 냄새와 비슷합니다. 입 냄새가 나는 사람은 자신의 냄새를 거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냄새를 맡은 사람이 말해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부패한 사람은 양심의 가책만으로도 자신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이 가져다주는 선함을 마비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_프란치스코 교황, 『나의 인생』(윌북, 2025)

 

사다리 걷어차기 

왜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 자기 나라에서 실제로 시행해 성공을 거둔 전략을 사용하라고 권하지 않은 것일까? 왜 자본주의의 역사에 관하여 꾸며낸 엉뚱한 이야기(그것도 앞뒤조차 제대로 맞지 않은 거짓말)를 퍼뜨리고 있는 것일까? 1841년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영국이 자신들은 높은 관세와 광범위한 보조금을 통해서 경제적인 패권을 장악해 놓고서 정작 다른 나라에는 자유 무역을 권장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영국이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고 비난하며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아주 흔히 쓰이는 영리한 방책’이라고 꼬집었다. _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 2007), 34쪽.

 

사랑 

사는 법을 배우려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사랑입니다.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장벽을 허물고, 갈등을 극복하며, 무관심과 증오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_프란치스코 교황, 『나의 인생』(윌북, 2025)

온유한 사랑은 결코 나약함이 아닙니다. 진정한 힘입니다. 가장 강인하고 용감했던 이들이 바로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도 온유한 사랑으로, 또 용기로 이 싸움을 이어갑시다. _프란치스코 교황·카를로 무쏘, 『희망』, 이재협 외 옮김(가톨릭출판사, 2025)

 

생태화 

우리는 근대성과 함께 문명화되었지만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으니 잘못된 문명화였습니다. 이제 생태적 문제를 가지고 재문명화될 수 있습니다. _브뤼노 라투르, 『브뤼노 라투르 마지막 대화』, 이세진 옮김(복복서가, 2025)

“우리가 지구를 근대화하면 지구는 사라질 것이다.” 라투르는 근대화의 대안으로 인간과 지구의 공존을 의미하는 ‘생태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환경 보호를 넘어, 인간이 지구와 맺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생태화를 위해서는 기존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혁하고, 이른바 ‘지구의 외피’에 새로 정착해 생태 문명을 재창조해야 한다. _브뤼노 라투르, 『브뤼노 라투르 마지막 대화』, 이세진 옮김(복복서가, 2025)

브뤼노 라투르, 『브뤼노 라투르 마지막 대화』, 이세진 옮김(복복서가, 2025)

 

스마트 시니어 

스마트 시니어는 센스(Sense), 돈(Money), 문화예술(Art), 레크리에이션(Re-Creation), 기술(Technology)에 능숙하고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거부감 없이 주체적으로 수용하며, 문화와 여가를 즐기고, 경제적 여유와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한다. _최부헌 외, 『스마트시니어 골드파워』(신영북스, 2025)

 

스몰 베팅(small betting) 

스몰 베팅은 생물뿐 아니라 기술의 진화가 일어나는 가장 기본 논리다. 스몰 베팅으로 한 칸씩밖에 나갈 수 없는 것은 인간이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다 알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개미가 미로를 탐색하듯이 나갈 수밖에 없다. (중략) 짧은 시간에 놀라운 기술적 도약이 일어났다면 많은 스몰 베팅을 압축해서 집어넣었기 때문이지 축지법을 쓴 것이 아니다. 근시안적 시계공이지만, 지치지 않고 남보다 스몰 베팅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세상 처음 보는 놀라운 시계를 만들 수 있다. _이정동, 『기술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김영사, 2024), 110쪽.

 

스트레스 

거 있잖아, 요즘 텔레비전에서 카운슬러가 환자의 고민을 듣고 격려해 주는 장면. 그런 건 말이야.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즉 스트레스란 것은 인생에 늘 따라다니는 것인데 원래부터 그렇게 있는 놈을 없애려 한다는 건 쓸데없는 수고라는 거지. 그보다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게 좋아. _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 이영미 옮김(은행나무, 2005). 

 

시 

가족의 발견, 거기서 비롯되는 생활의 발견, 행복의 발견, 사랑의 발견이 시의 마음과 멀지 않다. (시는) 우리가 세상을 마주하고 들이마셨던 ‘그 누구’ 혹은 ‘그 무엇’의 영혼 속에 있는 지평이다. _정끝별, 『깨끗한 거절은 절반의 선물』(민음사, 2025).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협력자가 아닌 경쟁자로,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공유하는 사람이 아닌 축적하는 사람으로, 돕는 사람이 아닌 투쟁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했다.  _노리나 허츠, 『고립의 시대』, 홍정인 옮김(웅진지식하우스. 2021), 31쪽. 

 

어휘 

어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새롭게 세우기도 하고, 확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변화되고, 세상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늘 첫 번째다. _김정주 

 

여성 정치 

신상 털기, 지인 능욕 등이 젊은 남성들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현시점에서 여성,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여성 이주민이 정치의 광장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한국에서는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 위험한 모험이다. _정보라

 

열린 결말 

열린 결말과 없는 결말을 구분해야 한다. 열린 결말은 독자에게 선택지를 주지만, 없는 결말은 작가가 답을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_이은희, 『4줄이면 된다』(부키, 2025)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은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아침에 쓰인 작품일 수도 있다. _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외로움 

흰 털. 분홍 코. 꼬리. 태어난 지 3개월 된 생쥐. 생쥐는 우리 안에서 4주 동안 고독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오늘 방문자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친구가 우리 안으로 들어간다. (중략) 초기에 탐색전을 펼치던 생쥐는 침입자를 난폭하게 물어뜯어 바닥으로 넘어뜨린다. (중략) 거의 모든 사례에서 생쥐는 고립 시간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생쥐에게 더 공격적으로 굴었다. _노리나 허츠, 『고립의 시대』, 홍정인 옮김(웅진지식하우스. 2021), 63쪽. 

 

우정 

예수님이 보이신 가장 위대한 기적은 나이 서른셋에 열두 명의 절친이 있었던 것이다. _맥스 디킨스,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이경태 옮김(창비, 2025)

 

 

울음과 아픔 

문학은 꺼져가는 등불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울음과 아픔은 기계화된 환상이 생산할 수 없는 능력이며, 이것이 비인간 시대의 문학이다. _김주연

 

음모론 

음모론에 중독된 사람은 새로운 정보를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마치 강제로 약물을 끊게 하는 상황과 같아, 이를 어떻게든 피하려 한다. 대신, 또 다른 가짜 해방감을 얻기 위해 어쩌면 이전보다 훨씬 더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_프랜시스 콜린스, 『지혜가 필요한 시간』, 이은진 옮김(포이에마, 2025), 90쪽.

프랜시스 콜린스, 『지혜가 필요한 시간』, 이은진 옮김(포이에마, 2025).

 

의식 

의식은 쾌락이나 고통 같은 느낌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의식이 있다는 건 “무언가를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_최원형

 

동물이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아니, 해야만 한다는 것

오징어는 더 맛있었던 먹이를 먹은 경험을 기억하고, 그것을 다시 먹기 위해 기다리거나 움직일 줄 안다. 스트레스를 받은 꿀벌들은 보상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는 등 자포자기하는 듯한 태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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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인간은 각자 경험 안에 갇혀 언어라는 필라멘트로만 연결된 존재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비약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며, 자기 경험에 근거해 남을 재단하지 말고 끊임없이 이해를 시도해야 한다.  _세이디 딩펠더,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뇌』, 이정미, 이은정 옮김(웅진지식하우스, 2025)

 

인공지능 

인공지능(AI)은 새로운 전기이며 모든 산업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_앤드류 응(스탠퍼드대 교수)

 

인생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가장 아름답고 친밀한 소통 방식 중 하나이다. 인생 이야기는 지금까지 찾지 못했던 작고 단순한 것들을 발견하게 해주며, 복음이 말하는 것처럼 바로 그 작은 것에서 위대한 것이 탄생한다. _프란치스코 교황, 『나의 인생』(윌북, 2025)

 

자기 기술 (autodescription)  

자기 기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서술함으로써 자신이 무엇에 의존하며 살아가는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개인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할 것인지를 고민하려 할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브뤼노 라투르가 제안한 것이다. 자기 기술을 통해 개인은 자신이 처한 생태적 상황을 인식하고, 이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실천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얻는다. 생태 계급(ecological class)은 자기 기술을 통해서 이 역량을 갖춘 개인들의 집합체다. 라투르에 따르면, 생태 계급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주체다. _브뤼노 라투르, 『브뤼노 라투르 마지막 대화』, 이세진 옮김(복복서가, 2025)

 

자유 무역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개발도상국들이 사용하는 보호와 보조금, 규제를 위한 추가 정책들은 불공정한 경쟁을 초래하는 것이므로 개발도상국들에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중략) 그럼에도 나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는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 선수들이 벌이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국제적 시스템을 구축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선수들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데 경기장이 평평하다면 결국 그 게임은 불공정한 것이 된다. _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 2007), 300쪽.

 

적 

적은, 형상을 가진, 우리 자신의 문제다. _샹탈 무페, 『경합들』, 서정연 옮김(난장, 2020) 

 

전쟁 

전쟁은 우리 내면을 갉아먹습니다. 조그만 아이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이의 마음속에 기쁨은 사라지고, 두려움과 눈물만 가득 차오를 겁니다. 어린아이들을 생각합시다. 평화의 냄새를 맡아본 적 없는 아이들, 전쟁 중에 태어나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합시다. _프란치스코 교황, 『나의 인생』(윌북, 2025)

 

정의 

마사 누스바움은 역량을 근간 삼아 정의론을 펼친다. 역량이란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자유,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삶의 구체적 영역에서 행동을 선택할 기회”를 뜻한다. 이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정의(justice)이고, 반대로 “부당한 방해에 의해 중요한 삶의 노력이 차단”되는 것이 불의다. 한마디로, 누군가 무엇을 원한다면 그것을 실제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량의 목록에 기본 기회나 자격이 명시되어 있다 해서, 그것들이 전부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행동의 선택은 생존하고 번영하려는 개별 존재의 몫이며, 목록보다 의미 있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어떤 삶의 형태를 추구하느냐이다.

 

정치적 불안정의 네 가지 요인 

피터 터친에 따르면, 정치적 불안정과 국가 해체엔 네 가지 구조적 추동 요인이 있다. 포퓰리즘으로 이어지는 대중의 궁핍화, 집단 내 충돌로 귀결되는 엘리트 과잉생산, 쇠약한 재정 건전성과 국가 정당성 약화, 지정학적 요인 등이다. 이는 나폴레옹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발생한 약 300건의 위기 사례를 분석한 결과이다. 현재 미국의 경우, 대중의 궁핍화, 엘리트 과잉생산, 그리고 그 탓에 생겨나는 엘리트 내부의 충돌이 점차 시민적 응집성, 즉 사회를 지탱하던 사회계약이이나 국민적 협력 의식이 약화되는 중이다. 그 결과는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 수준 붕괴다. 공적 담론을 지배하는 사회규범과 민주적 기관의 기능이 해체된 것이다. _피터 터친,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유강은 옮김(생각의힘, 2025)

피터 터친,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유강은 옮김(생각의힘, 2025)

 

지금 여기의 삶 

불교에서는 이를 ‘즉금당처자기(卽今, 當處, 自己)’라고 합니다. 즉, ‘지금, 여기서, 내가 살아간다’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단순한 원리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단순합니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살아가면 되는 것이죠. _마스노 슌묘·마쓰시게 유타카, 『불교 마음 수업』(알에이치코리아, 2025), 247쪽

마스노 슌묘·마쓰시게 유타카, 『불교 마음 수업』(알에이치코리아, 2025)

 

지혜 

지혜란 무엇일까? 지혜가 지식에 의존하기는 하지만, 지식이 곧 지혜는 아니다. 지혜에는 도덕적 틀을 이해하고 이를 삶에 통합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나아간다. 제대로 작동하기만 하면, 지혜는 진리를 신중히 분별하도록 이끌고, 길이 분명하지 않을 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알려준다. 지혜에는 경험, 상식, 통찰이 포함된다. _프랜시스 콜린스, 『지혜가 필요한 시간』, 이은진 옮김(포이에마, 2025), 18쪽.

 

질문 

‘질문’은 내가 알고 싶다는 것 이상이다. 더 나아지고 싶다. 대충 살고 싶지 않다. 숙고하는 삶을 살겠다. 사람답게 살겠다. 아니 ‘나답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질문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생각을 촉발하고 결국 나를 성장’시킨다. _강원국, 『나는 말하듯이 쓴다』(위즈덤하우스, 2020) 

 

집단적 어리석음(衆愚) 

집단적 어리석음은 인간이 자기 신념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교조주의와 극단주의다. 그들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지 않고 기존 믿음을 강화하는 사실만 추려서 받아들인다. 교조주의와 극단주의를 벗어날 유일하고 또 최선인 방법은 ‘비판적 사고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떻게 비판적 사고를 견지하려면 단순히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며 생각을 엄격히 검토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_버트런드 러셀,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장석봉(21세기북스, 2025) 

 

체험 

우리는 아무것도 체험하지 못할 때도 무언가를 체험한다. _클로드 시몽

 

파크렛(Parklet) 

아스팔트 도로변의 주차 공간을 임시공원으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공잔디를 깔고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벤치를 놓는다면, 혹은 상업시설로 가득한 거리에 잠시나마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쉼터를 만든다면, 아주 잠깐이라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숨을 고를, 인간성을 상기할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을까? 미국의 한 도시 디자인 연구소는 실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주차 공간을 2시간가량 대여해 ‘임시공원’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길 지나던 행인이 그 임시공원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기 시작했고, 얼마 후 또 다른 행인이 벤치의 다른 편에 앉아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이벤트로 인해 사람들은 더 인간 중심적인 도시설계에 관심을 품기 시작했고, 주차장을 공원으로 만드는 ‘파크렛(Parklet)’이라는 공식 제도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노변 주차장을 공원으로 만드는 이 파크렛은, 특히 코로나 기간에 사람들이 ‘만남’과 ‘사회적 커뮤니티’를 이어갈 수 있는 유용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_김주연, 『공공디자인 시대』(스리체어스, 2023)

 

편견 

정치가 우리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면, 진리, 과학, 신앙에서 나오는 통찰을 흐릿하게 만들거나 의도적으로 억누르는 위험이 따른다. 현재의 정치 환경에서는 마치 경쟁에서 이기려는 욕망에만 삶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이런 편협한 관점은 믿을 만한 출처가 아니라, 우리를 ‘이기게’ 해줄 것처럼 보이는 정치적 목소리를 신뢰하게 만든다. _프랜시스 콜린스, 『지혜가 필요한 시간』, 이은진 옮김(포이에마, 2025), 40쪽.

 

혁신의 민주화(democratizing innovation) 

기술의 자연 경로에서 나타난 중요한 경향성은 혁신의 민주화 추세다. 이는 과거엔 소수 전문가만이 교과서적 원리를 알고 새로운 기술을 만들 수 있었다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록 비전문가라고 하더라도 기술 발전에 참여할 수 있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로 과거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소프트웨어 전문가만 코딩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챗GPT에 자연어로 명령하면 웬만한 코딩을 해주기에 비전문가도 자신만의 고유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중략) 지금은 중학생도 3D 프린팅 프로그램에 입력하고 마우스로 조절해 가면서 복잡한 모형 틀을 만들 수 있다. 이 혁신의 민주화 경향은 인류가 기술을 쓰기 시작한 이래 계속된 기술 진화의 자연스러운 추세 중 하나다. _이정동, 『기술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김영사, 2024), 144쪽.

 

확인 강박 

확인 강박은 확인을 반복할수록 불안이 커지는 심리적 증상이다. 반복적 확인은 일시적 안도감과 의심 사이의 악순환을 가져와 결국 일상을 망가뜨린다. 불확실성을 적으로 삼고, 안심을 구하는 행동을 반복할 때마다 불안, 괴로움, 자책감, 수치심이 몰려드는 까닭이다. 샐리 M. 윈스턴과 마틴 N. 세이프는 마음 챙김의 네 단계(DEAF)에 맞춰 꾸준히 연습해야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함정과 실제 위급 상황을 구별하고(Distinguish), 불확실성이 주는 불편한 느낌을 끌어안고(Embrace), 안심하는 마음을 피하며(Avoid), 불편한 느낌 위를 떠다니며 시간이 흐르게 놔두라(Float). “어떤 것에 대해서도 보장이나 완벽함을 기대할 수 없고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 우리 삶의 현실이다. 이것을 알고 나면 당신은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고 확신하지도 않을 것이다.” _샐리 M. 윈스턴·마틴 N. 세이프, 『확인 강박』, 이세진 옮김(교양인, 2025)

샐리 M. 윈스턴·마틴 N. 세이프, 『확인 강박』, 이세진 옮김(교양인, 2025)

 

희망 

네가 빨리 싹을 틔우지 않아도 키가 크지 않아도 멈추거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 캄캄한 땅속에서 무한히 자라고 있다는 걸 알아. _마리나 루이스 글·그림, 『시간이 지나면』(피카주니어, 2025).

무(無)는 전부를 포괄하지 않는다. 혹은 전부를 지배하지 않는다. 단어 ‘그리고’는 모든 문장 이후에 따라붙는다. _윌리엄 제임스, 「다원적 우주」 중에서

 

힌드 나가르(Hind Nagar)

힌드 나가르는 인도 힌두어로 ‘힌두인의 이상향’이라는 뜻이다. 6·25전쟁 당시 비무장지대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도시 이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10여 개국 젊은 군인 3만 명이 7개월간 ‘이데올로기’를 놓고 혈투를 벌였다. _K. S. 티마야, 『힌드 나가르 : 장단벌 중립국송환위원회의 설득작전 180일』, 라윤도 옮김(선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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