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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소설 / 희곡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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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야구란 무엇인가』(문학동네, 2013)를 읽다 1지난주 지하철 퇴근 시간을 이용해 김경욱의 『야구란 무엇인가』(문학동네, 2013)을 모두 읽었다. 적절한 주변의 소음이 아니었다면 이 끔찍하고 처연하며 아릿아릿한 이야기를 끝내 참을 수 없어서 울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이것은 김경욱 소설의 새로운 전개다. ‘광주’라는 소재의 심각함에서도 그렇고, 복수와 화해라는 주제의 묵직함에서도 그렇고, 분열증과 편집증이라는 심리의 전개에서도 그렇고, 말더듬과 초단문이라는 발화의 특이함에서도 그렇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김경욱은 갑자기 젊음의 꼬리표를 떼고 역사와 윤리가 교차하는 낯선 영역 속으로 투신해 버린 것이다. 읽으면서 여백에 메모해 둔 것들을 여기에 기록해 둔다. 2그 누구도 복수로서의 광주란 무엇인가를 그다지 열심히 묻거나 탐구하지 않았다. 서..
모파상 외,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고전소설 1』(숨비소리, 2006)을 읽다 지난 한 달 동안 모파상 외,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고전소설 1』(곽상환, 신선미, 전혜정, 최낙준 옮김, 숨비소리, 2006)을 읽었다. 이 책은 호손, 모파상, 푸슈킨, 로렌스, 고리키 등이 쓴 전 세계 고전 단편들을 모아서 엮은 것으로 작품마다 청소년을 위해 선생님들이 쓴 간략한 해설이 덧붙인 책이다. 어른이 읽기에는 다소 싱거운 감이 있지만, 이런 소설에 처음 입문하는 학생들이 읽기에는 괜찮은 책이다.이 책은 2002년 모두 여섯 권으로 나왔던 같은 제목의 책을 두 권으로 묶어서 다시 펴낸 책의 첫 권이다. 청소년 책답게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자아에서 세계로 관심이 점차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주제별로 분류해 작품들을 싣고 있다. 각 장의 주제는 나 ――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피츠제럴드의 『아가씨와 철학자』(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를 읽다 벼르던 일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두 주 전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양억관 옮김, 민음사, 2013) 교정을 끝마치고 난 후, 기왕에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김욱동 옮김, 민음사, 2003) 말고 피츠제럴드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나온 『피츠제럴드 단편선 1』(김욱동 옮김, 민음사, 2005)와 『피츠제럴드 단편선 2』(한은경 옮김, 민음사, 2009)를 읽으려고 꺼내 놓았다가, 곧 마음을 바꾸어서 피츠제럴드의 첫 번째 단편집으로 예전에 편집 참고용으로 사 두었던 『아가씨와 철학자』(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를 이번 주 내내 읽었다. 가장 거칠고 미숙했던 시절의 피츠제럴드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이 나온 것은 1920..
나쓰메 소세키의 『태풍』(박현석 옮김, 현인, 2012)를 읽다. 1며칠 동안 틈을 내어 나쓰메 소세키의 『태풍(野分)』(박현석 옮김, 현인, 2012)를 읽었다. 여름 무렵부터 국내에 출간된 소세키 작품을 하나씩 챙겨 읽기 시작했는데, 『도련님』(양윤옥 옮김, 좋은생각, 2007)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진영화 옮김, 책만드는집, 2011)에 이어서 세 번째이다. 소세키 소설들은 어느 작품이든 깊은 사유의 힘과 반짝이는 위트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태풍』은 나쓰메 소세키가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하여 전업 작가로서 살아가기 직전인 1907년에 쓴 작품으로, 이전 작품인 『도련님』이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비하면 다소 직설적이고 관념적으로 작가의 문학에 대한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은 생동감은 다소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정예영 옮김, 을유문화사, 2008)을 읽다 삼류 작가의 시시한 작품보다 거장의 걸작을 오해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어린 시절, 루카치의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마르크스주의 문예 미학의 깃발 아래 읽었던 발자크의 작품들은 얼마나 재미없었던가. 그때는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은 보이지 않고, 작가의 사상이 왕당파에 가까운 데도 불구하고 그 핍진한 묘사 때문에 소설 내용이 ‘부르주아의 승리’라는 역사적 법칙의 엄중함에 따른다는 것만을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하려 들었다. 작품마다 독자를 압도하는 거대한 관념들의 전개, 귀족 세력을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는 상인 세력의 발흥, 그 갈피에서 오로직 역사 법칙에만 복무하는 듯한 인물의 행위들, 이런 독서는 결국 나의 발자크 읽기를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나는 발자크 작품들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극도로 ..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진영화 옮김, 책만드는집, 2011)을 읽다 한 나라의 문학이 그 형성 초기에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특히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과 같이 서양에서 발달해 온 여러 양식들을 자국의 문학 전통 속에 수용해 새롭게 만들어 가야 했던 나라들은 더욱더 그렇다. 중국에 루쉰이 없고 일본에 나쓰메 소세키가 없고 한국에 이광수가 없었다면, 현재의 동아시아 문학은 아마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루쉰이나 이광수의 문학과는 달리 나쓰메 소세키한테는 통쾌한 유머가 있다. 루쉰의 웃음은 가혹할 만큼 쓰디쓰고 이광수는 전혀 웃을 줄 모르는데, 소세키 혼자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속해 있던 국가가 서구 열강에 대한 수비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 국가들에 대한 공격(침략)을 택했던 것과 연관이 있을까?지난 열흘 정도에 걸쳐서 나쓰메 소세키..
김영하,『아랑은 왜』(문학동네, 2010)를 읽다 김영하,『아랑은 왜』(문학동네, 2010)를 읽었다. 김영하 소설을 모두 모아서 읽기 시작한 게 6월 중순이었으니 벌써 두 달이 지난 셈이다. 그동안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문학동네, 2010), 『호출』(문학동네, 2010),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문학동네, 2010)에 이어 네 번째 작품이다. 그 사이에 신작 경장편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 2013)을 읽었으니 모두 다섯 권의 작품을 읽었다. 쌓아 놓고 읽는 작품들이 많아서 본래 예상보다는 조금 늦어지고 있지만, 빠르다면 빠르고 느리다면 느린 템포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아랑은 왜』를 읽고 난 후 일종의 회고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작품이 아니라 작품 바깥의 일들이 더 많이 떠올랐던 것이다.『아랑은 왜』는 아..
김영하,『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문학동네, 2010)를 읽다 예전에 이미 블로그에 올린 바 있지만, 요즘 김영하의 소설을 모두 구해 읽고 있다. 이런저런 읽을 일들 때문에 다소 늦추어진 탓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문학동네, 2010)과 『호출』(문학동네, 2010)에 이어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문학동네, 2010)를 오늘에야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최근에 나온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 2013)을 읽은 것까지 감안하면 네 번째로 완독한 것이다. 예전에 모두 읽었지만, 디테일이 아주 새롭게 다가온다. 짤막한 글이라도 따로 쓰기에는 시간이 지나 버려 줄이지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10년 후쯤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