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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소설 / 희곡 읽기

모파상 외,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고전소설 1』(숨비소리, 2006)을 읽다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고전소설 1』


지난 한 달 동안 모파상 외,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고전소설 1』(곽상환, 신선미, 전혜정, 최낙준 옮김, 숨비소리, 2006)을 읽었다. 이 책은 호손, 모파상, 푸슈킨, 로렌스, 고리키 등이 쓴 전 세계 고전 단편들을 모아서 엮은 것으로 작품마다 청소년을 위해 선생님들이 쓴 간략한 해설이 덧붙인 책이다. 어른이 읽기에는 다소 싱거운 감이 있지만, 이런 소설에 처음 입문하는 학생들이 읽기에는 괜찮은 책이다.

이 책은 2002년 모두 여섯 권으로 나왔던 같은 제목의 책을 두 권으로 묶어서 다시 펴낸 책의 첫 권이다. 청소년 책답게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자아에서 세계로 관심이 점차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주제별로 분류해 작품들을 싣고 있다. 각 장의 주제는 나 ――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첫발, 또 다른 ‘나’일 수밖에 없는 ‘너’, 가족 ―― 그 영원한 애증의 대상, 사회 ―― 공동체의 공동체, 인간의 운명, 꿈 ―― 인간 삶의 원동력 등의 순서로 각각 일곱 편에서 열한 편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두 권에 나누어 수록하고 있다. 그중 첫째 권이 다루고 있는 것은 3장 가족까지로 너새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에서 앙드레 지드의 「돌아온 탕아」에 이르기까지 단편 스물여섯 편이 실려 있다.

예전에 아이들에게 사 주었던 것인데, 어느 날 아들 책상에서 발견한 후 소파에서 눈에 띌 때마다 한두 편씩 지나치듯 읽었다. 아이들 주전부리를 빼앗아 먹는 기분이랄까. 괜히 즐거웠다. 많은 작품들이 예전에 대개 읽어 두었던 것이지만, 이 기회에 세계의 여러 주요 단편들을 한꺼번에 모아 읽고 싶어 손에 들었다. 모파상의 「목걸이」, 도데의 「황금 뇌를 가진 사나이」,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 오 헨리의 「20년 후」, 토머스 하디의 「환상을 좇는 여인」, 앙드레 지드의 「돌아온 탕아」 등은 명실상부한 작품으로 진부해지지 않고 아직도 현대적 주제를 잃지 않은 채 다가왔다. 물질에 대한 허영, 텅 빈 자아와 모방 욕망, 우정과 정의 사이의 갈등,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물음 등 인간 영혼의 영원한 문제들에 대한 탐구가 현대의 작품들을 어떤 면에서 뛰어넘는 방식으로 쓰여 있었다.

몇몇 작품들은 이 책에서 처음 읽었다. 특히 로렌스의 「명예와 권력」은 대위와 전령을 통해 인간 심리의 가장 추악한 부분 중 하나인 열패감이 빚어내는 끔찍한 비극을 이토록이나 날카롭게 묘파한 작품은 아주 드물었다. 로렌스의 다른 단편 「흔들목마」도 돈과 행운에 대한 강박이 빚은 비극을 그려 낸 뛰어난 작품이었다. 『아들과 연인』(전2권, 정상준 옮김, 민음사, 2002), 『채털리 부인의 연인』(전2권, 이인규 옮김, 민음사, 2003), 무지개』(전2권, 김정매 옮김, 민음사, 2006) 등 그의 장편소설들이 훌륭하다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단편소설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의 단편소설들을 모두 구해서 읽고 싶어졌다. 요한 L. 티크의 「금발의 에크베르트」도 이 책에서 처음 읽었는데, 환상적 공간 속에서 호기심과 의심이 낳은 인간 운명의 파멸적 드라마를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하게 그려 낸 멋진 작품이었다. 

전반적으로 작품 선정이 고르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고, 거창한 제목에 비해 몇몇 작가의 작품이 중복 수록되어 있는 등 몇몇 문제점이 눈에 띄지만, 그래도 좋은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었으므로 아들한테 다시 읽어 볼 것을 권하려 한다. 2권도 마저 읽을 생각이다. 


===== 책 속에서

― 들판이나 모닥불 가에서 홀로 깊은 생각에 잠기며 다져 가는 세계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보다 더 고상한 것이다. (어니스트 호손, 「큰바위얼굴」)

 여자란 타고난 신분이나 혈통과는 별개로, 아름다움과 매력이 곧 자신의 신분과 가문 역할을 한다. 타고난 기품, 본능이라 할 수 있는 우아함, 재치 따위들만이 그들을 가르는 유일한 등급이며, 이것은 때로 낮은 계급의 여인을 귀부인과 나란히 설 수 있게도 하는 것이었다. (기 드 모파상, 「목걸이」)

 인생이란 참으로 묘한 것,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것이다. 사람은 그런 사소한 일 하나로 충분히 파멸할 수도, 반대로 구원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기 드 모파상, 「목걸이」)

 이 세상에는 자신의 뇌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가련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은 사소한 생활에 자신의 값진 순금 골수와 실체(實體)로서 그 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하루하루의 고통입니다. (알퐁스 도데, 「황금 뇌를 가진 사나이」)

 인내하면서 천천히, 나는 생의 밑바닥에서 당신을 향해,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약속의 땅으로 가는 정찰병의 눈으로 여정에 있는 모든 것을 보았노라. (막심 고리키, 「필립 바실리예비치의 이야기」)

 그는 이성에 의해 희생되었던 야성으로 자신의 정신을 무장하고, 스스로 연구해 만든 움막에서 속세로부터 자신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좋아했다.  (스텔라 벤슨「무인도에 사는 사람」)

 죽음은 육체의 결정적이고 혐오스러운 승리였다. 그것은 침묵과 부패였다. (스텔라 벤슨「무인도에 사는 사람」)

 아마 한 번이라도 밖에서 밤을 지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세상이 모두 잠든 밤에 또 다른 신비한 세계가 적막 속에서 고독하게 눈을 뜬다는 것을 말이다. 샘물은 더 맑은 소리로 노래하고, 연못에는 작은 불꽃들이 반짝인다. 온갖 요정들이 신나게 날아다니고, 풀잎들이 쑥쑥 자라나는 소리가 맑은 공기를 가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들, 들릴 듯 말 듯한 그 온갖 소리들이 우리의 세상을 감싸는 것이다. 낮이 생물들의 세상이라면 밤은 낮에 침묵했던 자들의 세상이 된다. (알퐁스 도데,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