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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소설 / 희곡 읽기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정예영 옮김, 을유문화사, 2008)을 읽다


『골짜기의 백합』(정예영 옮김, 을유문화사, 2008)

삼류 작가의 시시한 작품보다 거장의 걸작을 오해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어린 시절, 루카치의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마르크스주의 문예 미학의 깃발 아래 읽었던 발자크의 작품들은 얼마나 재미없었던가. 그때는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은 보이지 않고, 작가의 사상이 왕당파에 가까운 데도 불구하고 그 핍진한 묘사 때문에 소설 내용이 ‘부르주아의 승리’라는 역사적 법칙의 엄중함에 따른다는 것만을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하려 들었다. 작품마다 독자를 압도하는 거대한 관념들의 전개, 귀족 세력을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는 상인 세력의 발흥, 그 갈피에서 오로직 역사 법칙에만 복무하는 듯한 인물의 행위들, 이런 독서는 결국 나의 발자크 읽기를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나는 발자크 작품들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극도로 혐오하게 되어 지난 25년 동안 다시는 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정예영 옮김, 을유문화사, 2008)을 읽어 가면서 나는 놀랍게도 발자크에 대한 한없는 매혹을 느꼈다. 단테의 『신곡』에 대응해서 인간의 드라마, 즉 『인간극』을 완성하려 했던 발자크의 거대한 기획 속에서 골짜기의 백합』은 ‘시골 생활 전경’에 속한다. 발자크의 고향인 투렌 근처 클로슈구르드를 배경으로 펠릭스라는 청년과 모르소프 백작 부인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내가 읽은 연애 소설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나폴레옹 집권기를 거쳐 루이18세의 왕정 복고에 이르는 역사적 시기를 배경으로 첫사랑에 빠진 청년의 녹아내리는 듯한 아름다운 감성과 사랑에 대한 작가 자신의, 아니 프랑스 당대의 우아하고도 기품 넘치는 사유가 적절히 어우러지면서 읽는 사람을 끌어들인다. 한적한 시골 골짜기 마을에 한 송이 백합처럼 고아하게 핀 모르소프 부인은 사랑의 정열을 마음 깊숙이 감춘 채,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고귀한 여성의 한 전형으로, 프랑스적인 이상적 여성상으로 그려진다.

연애 소설의 또 다른 걸작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서간체 형식으로 쓰인 이 작품은 화자로 불우하고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낸 펠릭스가 주인공으로, 세월이 흐르고 난 후 그가 자신이 겪었던 사랑 이야기를 다른 여자(나탈리)한테 고백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펠릭스는 어느 날 사교 파티에서 모르소프 백작 부인에게 한눈에 반해 그녀의 목덜미에 키스를 퍼붓는다. 그는 그녀를 못 잊어하다가 투렌 지방에서 우연히 그녀의 집을 방문하면서 서서히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사랑은 백작 부인의 뜻대로 육체적 불륜 없이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유지되다가, 성인이 되어 파리 사교계로 돌아가면서 황제의 측근으로 성공한 펠릭스가 영국의 귀부인 레이디 더들리와 육체적 사랑에 빠지면서 급격히 파멸로 치닫는다. 모르소프 백작 부인(앙리에트)은 펠릭스의 배신에 상심한 나머지, 어떤 음식도 입에 넣지 못하는 거식증에 빠져 죽어 버리고 펠릭스는 사랑을 잃고 쓸쓸하게 파리로 귀환하는 것이다. 

펠릭스와 모르소프 백작 부인이 나누는 사랑의 대화는 남녀 사이의 사랑, 이별, 관능 등 사랑을 둘러싼 모든 행동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으며, 철없고 불우한 소년 펠릭스를 급격히 한 사람의 남자로 성숙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강렬한 연애 소설이자 뛰어난 성장 소설로 읽힐 수 있으며, 또한 나폴레옹 집권을 전후로 한 프랑스 상류사회의 모습을 정밀하게 묘사해 낸 훌륭한 역사 소설로도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이 소설의 백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펠릭스가 파리 사교계에 진출하게 되었을 때, 모르소프 부인이 펠릭스에게 들려 보내 편지 한 통이다. ‘사회에 첫 발을 딛는 젊은이들에게’라고 따로 제목을 달고 싶은 이 편지는 어머니이자 연인의 마음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세상에 내던져지게 된 한 젊은이를 응원하는 따스한 격려와 그가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반 윤리를 담고 있다. 모르소프 부인은 말한다.


의젓한 말투, 말과 행동 속에 녹아든 우아한 진솔함은 엄청난 매력을 발산하는 육체적인 시심(詩心)과 같다. 그 원천이 가슴속에 있다면 얼마나 강력한 것이겠는가? 


만약 발자크를 아직 읽지 않았고, 앞으로 읽으려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 작품으로부터 출발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최근 읽은 작품 중에서 아주 유쾌한 독서 경험이었다.



=== 책 속에서 

 명예란 바로 옛날에 갈리아족의 여사제가 사람들을 제물로 희생시켰듯이 오늘날 프랑스인들의 목숨을 빼앗는 여사제가 아닌가.

 시골이란 바로 의학이 고칠 수 없는 병의 영원한 치료제가 아닌가. 

 사랑이 싹틀 때 젊은 가슴을 사로잡는 이유 없는 두려움.

 내 가슴은 나를 속이는 법이 없었으니까. 

 많은 불행한 이들에게는 내일이란 무의미한 단어다.

 나는 여성의 침묵이 얼마나 의미심장하고, 산만한 대화 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감춰져 있는지 알게 되었다.

 플루트의 키를 누르면 음이 분절되듯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음절의 끝소리마다 영혼의 숨결이 울리는 듯했다. 그 숨결은 귀 속에서 파장을 일으키며 사라졌는데, 그럴 때면 그 부위의 피가 세차게 약동했다. 단어 끝에 '이'를 발음할 때에는 마치 새의 노랫소리와 같았다. 그녀의 '슈' 발음은 애무처럼 부드러웠고, 'ㅌ'의 발성은 그녀의 감정적인 기질을 나타냈다.

 사랑에는 인생처럼 스스로도 만족하는 사춘기가 있다.

 벼락출세한 사람들은 민첩한 원숭이와 같다. 높이 올라가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그들의 날렵함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들이 꼭대기에 이르면 수치스러운 면모만을 보게 된다.

 야심을 품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힘 있는 자들의 특권이지만, 야심을 겉으로 드러내놓고 능력이 미치지 못해서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은 소심한 사람들의 몫이다.

 상류 사회에서는 남의 앞에서 경직된 얼굴을 보이는 자나, 칭찬은 아끼지만 신랄한 말을 잘하는 뿌루퉁한 입술을 가진 자들이 환영받지 못한다.

 정신적인 법칙에는 절대적인 것이란 없다는 점에서 물리적인 법칙과 다르다. 결과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하나의 현상에 대한 여러 생각들에 의해 좌우된다. 

 어머니의 인색함 때문에 경험했던 불안감과 쓰라린 근심들에 대한 기억으로 나는 젊은이들을 관대하게 봐주는 습성이 생겼다. 그것은 낭떠러지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가장자리에서 그 깊이를 헤아려 본 자들이 지닌 거룩한 관대함이다. 삶이 갈라지면서 그 바닥의 메마른 자갈이 엿보이는 순간에 나의 정직함이 위기를 극복하고 강화되었지만, 인간의 매정한 정의가 사람의 목에 창을 들이댈 때마다 생각했다. '형법은 불행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사랑은 가장 화려한 승리보다 가난한 자가 베푸는 물 한 잔, 인정받지 못한 채 죽는 병사를 더 기특하게 여긴다.

 모든 꽃은 시들기 마련이고, 큰 기쁨은 뒤끝이 좋지 않다.

 젊음은 고결하고, 거짓말을 모르고, 희생할 줄 알면서, 사심이 없지요.

 진실한 감정은 분할되지 않죠.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눈물을 흘리며 죽어간 천재들이여, 인정받지 못한 가슴들이여, 알려지지 않은 성녀들이여, 사막으로부터 삶에 입문한 이들이여, 어디에서나 차가운 얼굴들과 닫힌 마음들, 막힌 귀를 만난 이들이여, 결코 불평하지 말라! 누군가의 가슴이 당신에게 열리고, 누군가의 귀가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누군가의 눈길이 당신의 것과 마주칠 때의 무한한 기쁨을 당신들만이 온전히 맛볼 수 있도다.

 야망을 정부(情婦)로 삼겠다.

 좌절된 사랑이 어찌 사명이 될 수 있나요? 

 인생을 논하기 전에 인생의 시련을 겪어 보세요. 

 사랑이 범죄 앞에서 주저하는 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사랑은 무한해야 한다.

 잘못 정의된 자유의 원칙들은 민중의 복지를 창출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여인이 모든 여인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열렬한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서, 정숙하고 절제된 그녀의 눈빛을 독점하는 것은 젊은 남자로서 너무나 황홀한 일이다.

 집안마다 견디기 힘든 불화를 철저하게 숨기는데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제각기 자연스러운 감정을 해치는 깊숙하고 치유될 수 없는 상처들이 있다. 성격의 조화로 인한 진실하고 감동적인 애정은 영원하며 죽음이 닥치면 달랠 수 없는 지독한 아픔을 남기지만, 숨겨진 증오는 가슴을 천천히 얼어붙게 하여 최후의 작별이 다가왔을 때 눈물샘을 말린다.

 진정한 사랑은 불모지에서 피어났기에 더욱 보기 좋은, 아름다운 꽃과 같다. 

 사랑에도 문장(紋章)이 있다. 

 동양에서는 꽃의 색과 향기가 글을 대신한다.

 어떤 사랑의 고백도, 어떤 무분별한 열정의 증거도 그런 꽃의 교향곡만큼 강한 전염성을 지니지 못할 것이다. 억눌린 욕망은 베토벤의 음악과 같은 힘을 발휘하게 했다. 자기 내면 깊숙한 곳으로의 심오한 몰두, 하늘을 향한 경이로운 도약.

 이 모든 동작을 조용하고 꾸준한 육체적인 열의를 가지고 수행했다. 느리고 규칙적인 움직임은 내 영혼을 자유롭게 했다. 기계적인 동작이 없었더라면 모든 것을 불태웠을 열정의 수위를 조절함으로써 삶을 지탱하는 외적인 노통의 기막힌 즐거움을 맛보았다.

 심오한 감정들의 무한함을 알기 위해서는 젊었을 때 느낀 감정의 호수 속에 수심 측량기를 던져 봤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열정이란 메마른 땅 사이로 흘러간 용암의 격류였다면,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로 인해 맑은 물로 채워진 분화구와 같은 영혼들이 있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자는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라퐁텐)

 결혼하지 말게. 여자란 악마의 충고를 따른다네. 그중 가장 덕성 있는 여자도 만약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발명하기라도 할 것이야. 모두가 야수 같다네. 

 고통은 무한하고 기쁨은 유한하다.

 절개란 사람을 씻어 주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회생시켜 주는 성수와 같은 것이죠.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에는 모든 규칙을 기억하기란 매우 어렵죠.

 나는 항상 그녀의 편지들을 첫 편지를 읽었을 때와 똑같은 자세로, 즉 잠자리에 들어,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읽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쓴 편지를 달리 어떻게 읽으랴.

 정신적인 고독은 물리적인 고독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침묵은 가장 작은 울림까지도 감별할 수 있게 해 주고, 자기 자신 안으로 도피하는 습관은 자기를 향한 감정들의 미묘한 차이들을 발견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길러 준다.

 사랑은 말 한마디, 눈길 하나, 말투의 변화,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는 배려로 충분히 전달된다.

 저절로 증명이 된다는 점이 사랑의 가장 값진 특권이다.

 서로 떨어져 있으면 감정이 약해지고, 마음의 흔적들이 지워지며,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이 희미해지는 현상은 천박하고 저속한 사람들의 경우가 아니겠는가? 뜨거운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리고 열정이 피 속에 들끓거나 얼굴의 홍조로 나타나는 일편단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별은 마치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심을 더욱 굳건하게 해 주고,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던 고문과 같은 효과를 낳지 않겠는가?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속에는 무한한 소망들이 있어, 욕망의 대상은 몽상의 빛으로 물들어서 더욱 탐스럽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초조함에 의해 자극된 상상력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치장하지 않는가? 추억 하나하나를 되새김질해서 살아나는 과거는 더욱 커지고, 미래는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된다. 전류가 흐르는 구름을 다량 담고 있는 두 심장 사이에 오랜만의 재회는 번개처럼 갑작스러운 빛을 발하며 땅을 재생시키고 비옥하게 하는 자비로운 폭풍우와 같다.

 너는 현재만을 보고 과거는 모르잖니. 아버지를 부당하게 비판하지 말아라. 하지만 아버지의 잘못을 목격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면,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그런 비밀은 가장 깊숙한 침묵 속에 묻어 두는 거란다.

 정치인은 배우와 마찬가지로, 천재적인 두뇌만으로는 알 수 없는 요령들을 경험으로 터득해야 하죠. 

 파리라는 도시는 사랑의 절개나 양심의 순수함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위험한 바다이다.

 일관성이 없으면 젊음의 활력이란 실속 없이 낭비되기 십상이다.

 사랑은 어떠한 종류의 계산이나 이익을 몹시 싫어한다.

 전부가 아닌 연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할 때는 모든 것이 사랑으로 흘러들어 온다.

 회의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삶에 대해 싫증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고상한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과하고 교회가 신자들에게 날마다 생활 수칙을 정해 주었듯이 규칙을 세워 놓으라! 로마의 기독교가 정립한 엄격한 계율에는 위대한 사상이 담겨 있다. 그 계율들은 특정한 의식의 반복을 통해서 희망과 두려움을 항상 품게 하고 마음속에 의무의 도랑을 더욱 깊이 판다. 감정들은 그렇게 팬 도랑 속에 항상 줄기차게 흐르고, 도랑은 그 물을 고이게 하여 정화시켜서, 그것으로 끊임없이 심장을 재생시키며, 숨은 신앙심의 풍부한 보물로써 삶을 더욱 비옥하게 만든다. 신앙심은 단 하나의 사랑에 대한 단 하나의 마음이 증폭되는 신성한 원천이다.

 조용한 생활이 제공하는 편의에 익숙해진 사람은 항상 주목받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영국에서는 법이 모든 것을 규제하고, 각각의 영역에서 모든 것이 획일적이며, 덕을 실천하는 것은 마치 일정한 시간에 작동하는 톱니바퀴의 장치와 같다. 

 [영국보다] 기혼 여성을 끊임없이 죽음과 사회 사이에 처하게 함으로써 그녀의 위선을 이보다 잘 키워 준 민족은 없다. 그녀에게는 수치와 명예 사이에 중간이 없다. 전적으로 죄를 지었거나 죄가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즉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이다. 

 영국 여인들이 삶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열애에 대한 몰입, 자기 자신을 돌보는 극진한 정성,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 유명한 발코니 장면에서 아름답게 묘사된 그녀들의 섬세한 사랑. 셰익스피어는 일필(一筆)로써 영국 여인을 천재적으로 잘 표현해 냈다.

 영국 여자들의 영혼은 단 한 가지 소리를, 목소리는 단 하나의 음절만을 낸다. 그녀들의 대양 같은 사랑 안에 헤엄쳐 보지 않은 자는, 마치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이 시적 영감이 부족하듯이, 윰감이 자아내는 시를 영원히 모를 것이다.

 영국 풍속은 물질의 신격화, 즉 분명하게 정의되고 계획되고 교묘하게 적용되는 쾌락주의가 아닌가? 무엇을 하든, 뭐라고 말하든, 영국인은, 어쩌면 스스로도 모르는 채, 물질주의의 지배를 받는다. 그곳에도 종교와 윤리는 존재하지만, 그 안에는 영성이나 기독교적인 정신이 부재하다. 신의 풍부한 원천이란 어떤 훌륭한 연극으로도 가장할 수 없는 것이다.

 [영국에서] 물질은 풍요롭고 부드러우며, 반짝거리고 깨끗한 과일 속이 되어, 정신은 그 쾌락 속에서 파멸되어 간다. 편안함은 끔찍한 단조로움을 낳고, 자연스러움이 전혀 남지 않은, 갈등 없는 삶이 당신을 기계로 만든다.

 사람은 물질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물적인 본성이 그의 안에서 끝나고, 천사의 성질이 그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감되는 미래와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과거 본능의 잔재 사이에서, 즉 육체적인 사랑과 신성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오늘날처럼 천박한 풍속이 편재한 시대에 귀족 계급은 위대한 감정을 통해서만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부르주아들에게 내 혈관 속의 피가 그들의 피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면 그들이 죽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죽어야 하지 않겠어요? 

 정신적인 고통에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고 마음의 섬세함에 따라 그 강도가 달라지는 법이다.

 가장 상냥한 여자도 오히려 자신이 자비로웠던 만큼 잔인해진다.

 내 마음과, 생각과, 순수한 사랑, 젊음과 노년은 모두 당신의 것이고, 욕정과 덧없는 열정의 쾌락은 그녀의 것이요, 내 영원한 기억은 당신의 것이고 깊은 망각은 그녀의 것입니다.

 소유할 수 없는 사랑은 고조된 욕정 그 자체로 유지됩니다.

 자연은 오래 속일 수 없어요. 아주 작은 사고에도 광기와 유사한 힘을 발휘하며 깨어나죠.

 논리가 너무나 정연하고 미묘한 차이를 너무나 잘 표현하는군요. 충신들은 그렇게 말주변이 뛰어나지 않아요.

 올바른 길을 걸었다고 불평하는 자들에게 화 있으라!

 사랑이 지나간 후 연인들이 다시 만나지 말아야 하는 무시무시한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이 군림하던 자리에서 더 이상 아무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 삶의 영롱한 빛이 반짝이던 곳에서 죽음의 차가운 침묵만을 발견하는 고통!

 이성이 우리에게 부여한 가장 아름다운 특권은 우리로 인해서 행복해지는 이들에게 덕을 베푸는 일이지요.

 성당의 어둡고 고요한 천장이 기도를 권하는 것처럼, 달빛 아래의 자극적인 향기를 내뿜고, 봄의 은은한 소리들로 생기를 띤 나뭇잎은 신경을 건드리고 의지를 약화시킨다. 시골은 노인들의 정념을 진정시키지만 젊은 가슴들의 열정은 오히려 깨운다.

 모든 고통은 교훈을 수반하기 마련이죠. 나는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지식이 넓답니다.

 재치 넘치는 영국 여인의 혀는, 장난을 치면서 살과 뼈까지 앗아 가는 호랑이의 혀와 닮았다.

 한순간에 서른 살에서 예순 살로 넘어가는 건 여자보다 젊은 남자가 아니겠는가?

 넘어야 하는 거리, 지켜야 하는 겉모양새, 연기해야 하는 역할, 은폐해야 하는 비밀 등, 행복한 사랑의 이 모든 전략들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욕망을 되살아나게 하며, 습관이 가져오는 태만으로부터 마음을 보호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그러하듯이, 첫사랑은 낭비하는 습성이 있어서, 삼림을 정비하는 대신 완전히 벌채해 버린다.

 행복은 절대적이어서 비교를 용납하지 않는다.

 프랑스 여자는 세상을 자신의 사랑에 맞추는 반면, 영국 여자는 사랑을 세상에 맞춘다.

 과장되게 신중하면 과장되게 사랑하기 쉽다.

 프랑스에서 호사스러움은 사람의 자기 표현이자 자기의 생각, 그리고 특유한 서정성의 반영이다. 그것은 성격을 드러내고 연인들 사이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취향을 우리 주변에 빛나게 함으로써 작은 정성에도 가치를 부여한다.

 인간의 정의란 얼마나 나약하고 무력한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들만 처벌하다니.

 행복은 사람을 젊어지게 한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골고다 언덕을 겪어야 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가슴을 창에 찔리고, 머리 위에는 장미 화관을 대신하는 가시관을 쓰고, 서른세 살의 생애를 매몰시킨다.

 이기적인 사람은 본래 무심하게 마련이다.

 우리의 자산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면, 즉 우리가 사람들과 사건들 사이에 섞이면, 모든 것이 조금씩 줄어들고, 결국에는 잿더미 속에서 약간의 금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포부는 위대하지만 현실은 초라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부서지는 것은 엄청난 쾌락을 가져온다.

 땅 속에 묻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가슴속에 묻은 사람들도 있다. 너무나 사랑했던 그런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날마다 우리의 심장 박동과 섞인다. 숨을 쉴 때마다 그 사람 생각을 하고, 그 사람은 사랑 특유의 윤회 법칙에 의해 우리 안에 살아 있다. 하나의 영혼이 내 영혼 안에 들어 있는 셈이다.

 하나의 인생이 행동과 움직임으로만 이루어졌을 때에는 그 이야기를 짧게 끝낼 수 있다. 그러나 영혼의 가장 높은 지대에서 살아간 인생의 전기는 장황해질 수밖에 없다.

 아내에게는 저항할 수 있었지만 딸에게는 항상 양보해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나 많은 고귀한 존재들이 그들의 마음속을 헤아리고,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해 본 총명한 역사가를 만나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나는가! 이것이 인간 세상의 온전한 진실이다.

 가장 단순한 이야기 속에도 얼마나 많은 교훈이 담겨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