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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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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스스로 공부하는 인간 “지적 욕구에 불타던 터라 일주일에 한두 번 하는 세미나 수업을 많이 신청했습니다. 그리스어로 플라톤을 읽고, 라틴어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고, 프랑스어로 베르그송을 읽고, 독일어로 비트겐슈타인을 읽었습니다. …… 모두 소수학생만 듣는 수업이어서 결석은 불가능했습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만 했던 셈입니다.”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 나오는 동경대 수업 이야기다. 요즈음 대학을 생각하면 정말 꿈같아 보인다. 이 회고는 학부 수업만으로 다치바나 같은 지적 거인을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등교육의 목표는 ‘공부한 인간’이 아니라 ‘공부하는 인간’을 기르는 것이다. 대학은 수업료를 내고 강의를 들은 후, 졸업 단추를 누르면 직장이라는 상품이 쏟아지는 자판기가 아니다...
[책과 미래] ‘헬조선’을 말하는 청년 햄릿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헬조선’을 둘러싼 사회적 잡담이 치열하다.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가 “헬조선이라 빈정대지 마라. 부모들 모두 울고 싶은 심정”이라며, “스타벅스, 배낭여행, 컴퓨터 게임 등 지금 누리는 것 중 청년세대가 이룬 것”은 없으니, “응석부릴 시간에 공부하고 너른 세상을 보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자,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5천년 역사 최고 행복세대의 오만”이라고 거세게 비판하는 등 이에 대한 찬반이 이어지는 중이다.이 교수가 『햄릿』을 읽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는 마치 햄릿의 이해와 사랑을 갈구하는 거트루드 왕비 같다. “아들아, 어두운 낯빛을 버리고 친구를 바라보는 눈으로 덴마크를 보아라. 죽은 네 아버지를 찾지 마라. 흔한 일이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을 수밖에 없어.”완벽한 헛발질..
[책과 미래] 아이들은 왜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매주 토요일, 《매일경제신문》에 제 이름으로 나가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저의 관심사는 책이 기록한, 또 제가 경험했던 책의 인간들 이야기입니다. 저자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발상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저술하면서 창조성을 유지하는 것일까요.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인간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칼럼이니까, 100% 맞출 수는 없겠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들을 써보려고 합니다. 아래에 옮겨 둡니다. 칼럼마다 반드시 제가 읽었던 책이 하나씩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왜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옛날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이상하게도 전혀 없다. 졸린 눈을 억지로 비벼 뜨고, 부모가 지칠 때까지 ‘하나 더’ 이야기를 ..
꼰대가 될 것인가, 시인이 될 것인가 《중앙선데이》에 한 달에 한 번 쓰는 칼럼입니다. 지난달, 풍월당에서 강의했던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다가 영감을 얻어 일종의 ‘문학적 꼰대론’을 써 보았습니다. 강의를 위해 반복해서 작품을 읽다 보니, 사르트르가 평생에 걸쳐 싸웠던 삶의 실체, 이른바 부르주아적 삶에 깃든 역거운 허위의식의 실체가 조금은 들여다보이는 듯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죠.《중앙선데이》 편집이 바뀌어서 조금 손보았는데, 아래에 전문을 옮겨 둡니다. 꼰대가 될 것인가, 시인이 될 것인가 “40대가 넘으면 ‘경험의 직업인’들은 작은 집착이나 몇몇 속담을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들은 자동판매기가 되기 시작한다. 왼쪽 주입기에 동전 몇 개를 넣으면 은종이에 싸인 일화가 나온다. 오른쪽 주입기에 동전 몇 개를 넣으..
교육의 문명화 《매일경제신문》 칼럼. 이게 마지막이었는데, 어제 새로운 연락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한 해 동안 매주 읽기의 세계를 주제로 기명 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전 저 자신을 향해서는 할 말이 많고 세상을 향해서는 할 말이 아주 적은 사람이라 어깨가 무척 무겁네요. 교육의 문명화 “당신은 어떻게 가치 있는 인간인가?” 몇 해 전부터 학생들과 수업하는 프로젝트다. 내용은 간단하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자기 가치가 무엇인지를 각자 확인하고, 그 가치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발표해 비판적 논박을 주고받는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확인된 자기 가치를 실제로 실현해 보는 일련의 실천을 기획해서 실행한 후, 그 내용을 스스로 기록해 50쪽가량 책으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수업은 스스로 저자가 됨으로써 ..
여행, 살아서 겪는 죽음 《중앙선데이》에 한 달에 한 번 쓰는 칼럼입니다. 이번에는 다가올 휴가철을 맞아서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최고의 여행은 카타바시스, 즉 저승여행입니다. 살아서 죽음을 겪는 것, 산고를 겪고 여자가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조금 보충했습니다. 여행, 살아서 겪는 죽음 소년은 불우했다.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는 떠났다. 숙부네 집에 얹혀살면서 인쇄 견습공 일을 하던 소년은 열여섯 살 때 처음 여행을 한다. 순간적인 충동이었다. 친구들과 놀다 돌아오는데 성문이 닫혀 있었을 뿐이다.“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야훼의 명령을 받고 기꺼이 집을 나선 아브라함처럼, 어떤 운명을 느낀 소년은 숙부의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그대로 몸을 돌려 길을 떠난다. 며칠 동안 제네바 성 주변..
생각 좀 하고 살아 《매일경제》 칼럼, 이번에는 ‘생각하기’를 다루었습니다. 본래 글을 조금 보충했습니다. 전 6.5매에 아직 적응할 수가 없네요.ㅜㅜ사람들은 흔히 정보를 생각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죠. 오히려 정보는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2020년부터 일본은 대입시험을 개혁하면서, 학력과 생각하는 힘 중에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후, 교육 개혁 방향은 교과서를 폐지하고 일제 고사를 없애는 쪽으로 갈 가망성이 높습니다. 교과서와 일제 고사는 생각하는 힘에 역행하니까요. 그렇다면 생각하는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그 이전에 생각이란 게 무엇인지 좀 살펴보았습니다. 생각 좀 하고 살아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파스칼의 유명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엔 조리가 없다. 만약 이 말이 진실..
‘질문의 엘리트’가 필요한 시대 《서울신문》에 쓴 칼럼입니다. 인공지능시대는 미래 인재의 모습을 급속히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질문의 엘리트’가 필요한 시대 “‘제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못 들어봤다. 영미권에서 쓰는 표현은 아닌 것 같다.”어디 산속에서 살다 온 철없는 사람 이야기가 아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놀랍게도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세계는 평평하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등의 저서를 통해 ‘지구화 시대의 전도사’를 자부해 온 사람이다. 언어가 있는 곳에 인식이 있다. 우리가 ‘마법의 주문’에 홀려서 호들갑을 떠는 사이, 세계는 정보기술이 가져온 격변을 자기 시각에서 수용하고 소화하고 있다.‘제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면 실제로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