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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재난의 사고법 ― 『2021 한국의 논점』(북바이북, 2020) 서문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이었다. 전쟁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까. 처음 30년 동안은 혁명과 반동의 시대였다. 4.19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김대중김영삼의 선거 돌풍과 유신 반동, 서울의 봄과 신군부의 쿠테타……. 1980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여기에 있다. 이 사악한 되먹임 고리를 끊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1980년대 10년의 민주화 운동 기간을 거치고, 1989년 소비에트 붕괴 이후,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정상국가로 진입한 듯했다.

그다음 30년은 재난과 복구의 시대였다. 1997년에는 국가 부도 사태가 일어나고, 2008년에는 금융 위기가 있었다. 소수의 부유층과 권력층에게는 샴페인을 터뜨릴 만한 기회의 시대였으나, 대다수 서민들 입장에서는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는 재앙의 시기였다. 수많은 이들이 평생직장에서 쫓겨나고, 살던 집에서 밀려났다. 모든 종류의 격차가 심화되면서 세상 곳곳에 갑을이 나타났다. 부자들과 빈자들 사이가, 수도권과 지방 사이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가 점점 벌어졌다. 신자유주의가 퍼져 나가면서 출근 없는 노동이 일상화되어, 사람들 살이 전체가 불안정하고 주변화되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부의 세습에 얹어서 부모가 자면, 아들딸도 라는 지위와 신분의 세습을 노리는 사회적 흐름이 노골화되었다. 첨단 기술 사회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중세가 시작되었다. 1% 상류층에 이어서 20%의 중산층마저 사다리 걷어차기를 시도하는 세습 중산층사회가 출현한 것이다.

올해 어김없이 ‘10년 주기 재난이 시민들 삶을 덮쳤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압축되는 세 번째 재난을 우리 모두 온몸으로 겪으면서 지나가고 있다. 보수 10년의 정치로는 반복되는 사회적 재난을 막을 수 없었기에, 시민들은 촛불을 들어서 낡은 정치를 정지시키고 한 발 빨리 정권을 교체했다. 5.18민주화운동이 숭고한 피로써 혁명과 반동의 악순환을 끊었듯이, 촛불 평화혁명은 과연 재난과 복구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인가. 누적된 불평등과 쌓인 적폐를 청산하고, 인간다운 삶이 모두의 미래가 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인가.

코로나 팬데믹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가 문명과 야만, 개발과 야생, 착취와 피착취, 지배와 비지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다. 지난 세기말에 세계보건기구(WHO)“21세기는 감염병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 경고에 귀 기울인 사람은 드물다.

1980천연두 박멸 선언의 환상이 무너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81년 이후, 에볼라, 에이즈, 사스, 메르스, 조류독감 등 신종 감염병으로 사망한 사람들 숫자는 2900만 명에 달한다. 20201210일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의 사망자 1546828(한국 564)이니 이번 사태를 포함하면 30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코로나19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은 해마다 증가 중이다. 페스트, 결핵, 콜레라 등 이미 인류가 통제 가능하다고 믿었던 오래된 전염병들도 온갖 곳에서 부활하고 있다

원인은 지구 생명체를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파괴하는 인간 자체이다. 팬데믹(포르체)에서 홍윤철은 말한다. “전염병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사람을 공격했다기보다는, 사람이 세균의 생태계를 교란한 후 사람과 병원균 사이에 새로운 생태적 균형을 찾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인간이 일으킨 생태 환경의 변화가 바이러스와 세균의 생육 조건을 바꾸었고, 그 결과 인간 전체를 병들게 했다. 우리가 우리를 침략했다.

이 생태적 진실을 망각하는 어떠한 대책도 재난의 지연일 뿐 재난의 방지일 수 없으므로, 근본적으로는 공허하다. 신종 감염병의 현대적 기원에는 거대 농축산 기업, 즉 공장식 축산이 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얻기 위해 자연과 더불어 동물을 착취한다. 대규모 농장에서 단일 종만 밀집 사육하는 가축은 면역력이 약하다. 여기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다양성이 폭발하면서 변종 생성이 늘어나, 이중 일부가 인간을 감염시킨다. 신종 감염병은 농축산 기업의 판로, 즉 글로벌 공급망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한편, 인간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이윤 동기에 따라서 주로 작동하는 것도 심각하다. 코로나19,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갈무리)에 따르면, “지배자들은 환자보다 자본주의를 치료하고 싶어 한다.” 재난을 맞아서 긴급히 구제해야 할 것이 인간 생명이 아니라 은행과 회사와 공장이라고 생각하고, 보호받아야 할 것이 영세 자영업자나 프레카리아트가 아니라 건물주나 사업자라고 생각한다. 재난은 모두가 똑같이 겪지만, 그 결과까지 평등하지는 않다. 누군가의 삶은 영원히 복구되지 않는다. 이것은 자본의 폭주를 심화하고, 재난의 도돌이표를 만든다.

뉴노멀의 철학(동아시아)에서 김재인은 말한다. “기후 위기, 인공지능, 코로나19라는 삼각 편대는 근대를 산산조각 낸 진정한 다이너마이트다.” 참혹한 사태를 낳은 미국과 유럽의 재난 대응이 보여 주듯이, 홍콩 사태 등 민주주의 억압과 가혹한 인권 탄압을 자행하는 중국이 드러냈듯이, 근대의 노멀은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 재난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노멀의 실상을 폭로했다. 코로나19는 무엇보다 집콕·혼밥·온라인교육·화상회의·배달 음식 등 서로 만나지 않으면서도 일하고 회의하고 거래하고 교육하는 세상의 등장이고, 비접촉 세계에 대한 강제적 체험이며, 데이터로 무장한 플랫폼 제국들의 전면적 강화였다. 물론, 이것은 재난으로 인한 일시적잠정적 사건이라기보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장기적지속적 추세의 가속화라고 할 수 있다.

갈수록 대면 노동은 해체되어 부스러기 노동으로 전락하고, 이러한 노동을 주로 하는 이들은 항상적 위기에 빠져든다. 이는 한 개인의 삶에서 기술을 통해 언제, 어디에서나 업무를 처리할 줄 아는 원격 노동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동시에 사회적 차원에서 플랫폼 자본주의는 노동자도 없고, 재고도 없고, 시공간의 한계도 없는 전 지구적 독점 기업의 탄생이다. 그 결과는 시민 전체의 축복이 아니라 부의 쏠림이자 빈부 격차의 격화이다.

비대면이 만드는 격차는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 내부에 이미 존재하는 격차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올 한 해, 비대면 교육에 나타난 학력 격차는 앞으로 더욱더 심화될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을 징후적으로 보여 준다. 격차의 동심원은 곧바로 사회 전 영역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무엇보다 비대면이 여성의 사회적 삶을 파괴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비대면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증가시키고, 돌봄 재난을 일으켰으며, 생계의 어려움과 우울증에 따른 극단적 선택을 늘렸다. 이 모든 것은 재난의 도돌이표를 더 빠르게 한다.

재난은 늘 약자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중산층 몰락을 가속화하고, 소상공인·자영업자·프리랜서 등 취약 계층의 삶을 무너뜨린다. 1997IMF 국가 부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과거의 두 위기가 빈익빈 부익부의 골을 더 깊게 팠듯, 코로나 팬데믹 역시 양극화를 심화 중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03분기 소득 상하위 20% 사이의 격차는 ‘163만 원 대 1040만 원이었다. 작년보다 훨씬 더 심화되었다. 한 해 성적표가 나오면 격차는 더욱더 커질 것이다. 이는 재난의 도돌이표를 더 강화한다.

한국의 논점 2021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사회 각 분야에서 있었던 사건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하고 그 대안을 진지하게 모색한다. 코로나19는 한국사회를 반복해서 덮쳐 왔던 재난의 실상을 전면적으로 드러냈다. 이 사건이 한국, 아니 전 세계에 가져온 충격은 너무나 거대해 익숙한 일상의 회복을 말하는 담론은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돌아갈 길은 막혔다. 슬라보예 지젝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야만새로운 일상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야만을 선택한다면, 조만간 재난은 더 빨리, 더 가혹하게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재난의 도돌이표를 멈출 수 있는 새로운 일상의 구축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2017년 이른바 ‘86세력중심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 시민들 가슴에 희망을 불붙였다. 모두 문 대통령의 취임 연설을 기억한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사람들 마음을 홀리는 멋진 약속이었다. 그리고 3년 반이 지났다. 많은 일이 있었다. 적폐 청산의 구호로 시작된 이 정부도 벌써 말년에 접어들었다. 내년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보궐선거가 있고, 내후년엔 다시 대통령 선거가 있다. 그사이 한국사회는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과 정의로운 결과를 누리는 땅으로 바뀌었을까. 아니, 적어도 그 방향으로 분명히나아가고 있기는 한 것일까. 재난의 시기를 맞이해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는 온통 검찰 개혁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기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 방향과 성과를 따지는 것을 비롯해서 여러 개혁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었는지,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지, 다음 정부에서 지속할 정책 과제는 무엇인지 따질 때가 되었다. 국정 농단은 잘 청산되었는지,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교육의 공정성은 확보되었는지, 불평등을 심화하고 사회적 참사를 일으키는 노동은 개혁되었는지,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는 중인지, 북핵 위기와 미중 갈등을 넘어서 한반도는 평화를 향하고 있는지, 날로 심각해지는 주거 불안정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소수자 문제와 권력형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지, 지방 공동화와 지역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은 있는지, 혁신이든 그린이든 성장 정책은 제대로 찾았는지 묻고 싶다. 이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시민들의 추구와 열망을 담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이 혁명과 반동의 악순환을 끊었듯이, 촛불평화혁명이 재난과 복구의 악순환을 멈추어 어떠한 재난도 더 이상 재난으로 다가오지 않는 대동(大同)의 세상을 낳는 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익숙한 일상의 회복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의 구축이다. 이 책이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모든 시민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엮은이를 대표해서

장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