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문(雜文)/공감과 성찰

약자의 호소와 권력의 몰락

살려고 일하러 간 일터에서 사람이 죽는다. 광주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외벽 붕괴, 양주 삼표산업 골재 채취장 토사 붕괴, 여수 여천NCC 폭발 등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안전의식 타령은 그만하자. 위험 감수를 압박하는 현장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말단 노동자의 작업 거부는 어렵다. 아무도 직접 책임지지 않는 현장에 파견된 노동자라면 하소연 자체가 사치다. 그 처지를 모른 체하면 위선자, 못 느끼면 사이코패스다.

그런데도 법은 현장 앞에서 자꾸 멈추고, 정의는 법정에서 자주 반려된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죽은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김용균 씨 관련 며칠 전 판결도 역시나였다. 원청 대표는 위험을 몰랐다면서 무죄였고, 관련 임직원은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쳤다. 억울한 죽음에 유가족 한은 쌓여간다. 하소연해도, 하소연해도 듣지 않는…… 이런 세상, 괜찮을까?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는 15세기 영국에서 벌어진 랭커스터가와 요크가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인 장미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리처드 3세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탐하는 절대 악의 상징이다. 폭군이었던 그는 스스로 “멋진 신체 형상이 잘리고 말았으며/ 자연의 속임수에 얼굴을 도둑맞아/ 되다 말고 찌그러져” 세상에 나왔다고 고백한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에서 보듯, 영웅은 신을 닮아 ‘꽃미남, 11자 복근’이라고 믿었던 시대다. 잘린 신체를 타고났기에 리처드는 “두꺼비, 돼지, 거미, 도마뱀”으로 불리거나 “더러운, 추악한, 불쾌한” 등으로 경멸당했다. 

사랑을 몰랐던 그는 삐뚤어졌다. “신이 내 몸을 망쳐 놓았으니 마음도 굽게 해 주소서.” 소수자를 돌보지도 배려하지도 않고 차별만 일삼았던 세상이 절대 악을 낳은 근본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게다가 우정이 음모의 상징이고, 사랑이 배신의 전조였던 시대이다. 내전에서 패배한 아버지 요크 공은 목 잘려 죽고, 어린 리처드는 극도의 긴장 속에서 숱하게 죽음을 견디며 자랐다. 

머리는 극히 영민했다. 형제들과 힘을 합쳐 숙적을 무찌르고, 기어이 맏형 에드워드를 왕으로 세웠다. “지금은 우리의 불만의 겨울이건만/ 요크란 태양 덕에 찬란한 여름이다.” 작품의 첫 줄이다. 

한데 그는 여전히 왕이 되고 싶었다. 세상은 사랑이 넘치는 찬란한 여름에 들어섰으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불만의 겨울”이었다. 

내전이 멈추자, 그의 악마적 재능은 필요 없어졌고, 다시 그는 천덕꾸러기 괴물로 남았다. 그러자 잘린 신체를 대리 보충할 완벽한 권력, 즉 절대 권력에 대한 열망이 타올랐다.

정상적으로는 불가능했다. 기회가 열리지 않았다. 맏형이 죽어도, 둘째 형도 있고, 조카들도 있었다. 그래서 이 비틀린 영혼은 세상을 혼란에 빠뜨릴 “악한이 되기로 결심”한다. 

리처드는 무자비하고 끔찍했다. 형은 음모로 몰아 죽이고, 조카는 암살하고, 아내는 제거하고, 반대파는 학살하고, 충신은 외면하고, 시민은 농락했다. 그가 권력을 틀어쥐는 사이 영국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지옥이 되었다. 도덕은 무시되고 정의는 외면되며 시민은 공포 속에서 침묵했다. 악행을 아무도 말릴 수 없어 보였다. 

잔혹한 권력의 균열은 여성들한테서 생겨났다. 인간-괴물 리처드한테 가족을 잃은 마거릿, 앤, 엘리자베스, 요크 공작부인 등이 그에게 입을 모아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양심의 벌레가 네 영혼을 파먹어라./ 살기 어린 너의 눈에 잠이 오지 않거나/ 흉측한 마귀들이 괴로운 악몽으로/ 네놈한테 겁을 주어 떨게 만들어라.” 

협박과 위협으로 그녀들 입을 다물리려 했으나, 풀리지 않는 한 앞에서 아무 소용도 없었다. 저주는 끝없이 이어지다 마지막에 악몽으로써 실현됐다. 반란을 진압하러 리처드가 전장에 나서기 전날 밤,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유령이 차례로 찾아와 리처드에게 외친다. 

“절망하고 죽어라.”

과연, 전장에 나선 폭군 리처드를 돕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약자의 저주는 실현된다. 무참히 패하고 전쟁터에 버려진 그는 악몽대로 절망에 빠져 절규한다. 

“나라 대신 말 한 마리!” 

악행으로 얻은 부와 권력이 한낱 말 한 마리만 못하다. 약자의 하소연을 외면한 까닭이다.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두고 보자” 같은 저주가 실행이면서 예언이라고 말한다. 내버려 두면 권력의 둑을 파괴하고 낡은 체제를 무너뜨린다는 뜻이다. 약자의 죽음을 대가로 쌓은 부 역시 한순간 허망히 무너진다. 

민중의 억울한 사연이 쌓여 무쇠 방을 녹이는 것, 이것이 신적 정의의 도래이고 사랑의 실현이다. 소수자를 차별한 대가는 한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고, 부와 영화를 누리던 요크가를 쓰러뜨렸다. 

약자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지 않는 권력은 모두 멸망한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

세계일보 칼럼입니다.

보충해서 여기에 올립니다.

ps. 본문에 나오는 셰익스피어 작품 인용은 「리처드 3세」, 『셰익스피어 전집』, 이상섭 옮김(문학과지성사, 2016)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