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문(雜文)/공감과 성찰

(59)
[내 인생의 노래] 조앤 바에즈의 「솔밭 사이로 흐르는 강물(the river in the pines)」 인생에서 내 돈으로 첫 번째로 산 기계는 오디오였다. 인켈 캐논. 가격은 두 달치 과외비인 40만 원쯤이었던 것 같다. 앰프, 턴테이블, 테이프 플레이어, 라디오, 스피커 등이 각각 분리되는 기계였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친구한테 선물로 받은 LP 레코드 앨범 때문이었다. 조앤 바에즈의 「솔밭 사이로 흐르는 강물(the river in the pines)」. 나의 상처이자 추억이자 자부심. 턴테이블에 올려 수천 번 들었지만, 이 앨범은 지금도 애지중지 가지고 있다. 선물한 친구가 자꾸 들었느냐고 묻는데, 턴테이블이 없어 들을 수 없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몇 번을 얼버무렸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열 달 할부로 기계를 들여 조립한 후, 처음 소리가 집안을 울렸을 때의 감동은……...
100세 인생 시대의 노후 전략 요즈음, 아내와 앞날을 이야기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세상의 앞일이나 우주의 미래 같은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고, 주로 ‘100세 인생’을 살아갈 둘의 앞날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때때로 미세먼지로 숨 막혀 죽지 않기를, 때때로 전쟁광들에 맞서 평화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 절반을 갓 넘긴 입장에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히 살고 평안히 스러지려면, 노후 경제문제 등 사적으로 건사할 일도 한둘은 아니다.수명과 관련해 인간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공중보건의 지속적 확산과 의학의 비약적 발달로 기대여명이 실제로 100세가 될 가망성이 높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100세를 최소수명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이 한 세기를 살아가는 사회를 인류는 경험..
[책과 미래] 삼성SDS의 독서교육 ‘생각의 힘, 독서!’ 어느 도서관 프로그램 제목으로 보이겠지만, 올해 삼성 SDS에서 실시한 신입사원 입문교육 특강 제목이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깜짝 놀랐다. 읽기와 관련한 일을 평생 해왔지만,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에 독서 관련 강의가 포함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한 차례도 없었던 것이다.일회성 특강만 듣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통제의 승부사 사마의』(위즈덤하우스), 『딥 러닝 첫걸음』(한빛미디어) 등 최고경영자가 직접 고른 도서 여덟 권을 읽고, 두 차례에 걸쳐 네다섯 명씩 조를 이루어 독서 토론을 하게 했다. 좋은 사원이 되려면 ‘생각하는 힘’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힘을 기르는 데 독서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삼성 SDS 같은 정보기술기업이 ‘생각하는 힘’을..
전체주의의 대중심리 며칠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가 열렸다. 법원이 ‘허위사실 유포자’로 판결한 극우주의자 지만원 씨가 연설을 했다. 이미 귀를 씻었으니 그 말을 입에 담지 않겠다. 국회가 세금으로 허위사실을 들어주고 주장하는 공간인가, 하는 처참한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공당이라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가세한 점이다. 이종명 의원은 “폭동이라 했던 5·18이 정치세력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고 했다. 김순례 의원은 “종북 좌파들이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했다.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 계엄군의 무차별 진압에 시민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치가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을, 일본군이 난징에서 중국인을 학살한 것..
[책과미래]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 이번 주에 우리 모두가 기억할 만한 두 죽음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 사람은 사고였고, 한 사람은 과로였다.한 사람은 두 달 전 태안화력발전소의 빛도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몸이 두 동강 난 채, 무참히 죽었다. 이름은 김용균, 입사 석 달째, 고작 스물네 살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일 뻔했다.일터의 안전을 확보할 절차를 마련하고 관련 비용을 들이는 대신, 발전소 경영진이 ‘위험의 외주화’를 고안하고 집행한 것은 사실상 사고를 유도한 것이나 마찬가지. 그 비틀린 인간성을 규탄해야 마땅하다. 젊은 영혼의 안식을 담보 삼아, 유족들은 ‘죽음의 외주화’를 막는 사회적 합의를 일으켰다. 숙연히 마지막 가는 길을 기릴 만..
[책과 미래] 독서를 돈으로 사겠다고? 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을 ‘의사 문맹(책과 담 쌓은 사람, aliteracy)’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 특이한 나라에 속한다. 문맹률은 0%에 가까운데, 성인 독서율은 고작 59.9%에 불과하다.(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성인 10명 중 4명이 의사 문맹인 것이다. 의사 문맹 상태가 지속되면 문해력에 문제가 생긴다. 짧고 간단한 글은 읽어도 길고 복잡한 글은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되거나, 글자를 읽어도 문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사람으로 바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한국은 청소년기 문해력은 세계 1~2위를 다투지만 노년기 문해력은 최하위권으로 전락한다. 성인이 되어 독서를 하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다.성인의 독서 이탈률이..
올림픽의 인문학 ― 경기, 인류 문명의 위대한 도약 매주 쓰는 《매일경제》 칼럼,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이해 그 의미를 따져 보았습니다. 아래에 조금 보충해서 올려 둡니다. 올림픽의 인문학 ― 경기, 인류 문명의 위대한 도약 올림피아 축제란 무엇인가. 전설에 따르면, 마라톤 전투의 승리 소식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한 후 탈진해 죽은 병사를 기념하는 데에서 이 축제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 축제는 간절한 기다림 끝에 결국 제우스의 정의가 실현됐다는 기쁨의 선언이자 평화의 선포다. 또 앞날에 대한 불안도, 방패에 실려 돌아온 이들로 인한 슬픔도 없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간절한 재현이다.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것은 무척이나 어울린다. 고구려 땅일 때 평창(平昌)은 욱오(郁烏)나 우오(于烏)로 불렸고 통일신라 때에는 백오(白烏)라는 이름이었다. ..
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매주 쓰는 《매일경제》 칼럼, 이번에는 서지현 검사의 일을 계기로 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오이디푸스, 그대가 왕이지만 답변할 권리만은 우리 두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져야 할 것이오.” 테이레시아스가 말한다. 테바이를 덮친 전염병의 진실을 말하러 찾아온 예언자를, 성난 군주는 뇌물을 받아먹고 지껄이는 헛소리로 몰아붙인다. 그러자 테이레시아스는 자기가 오이디푸스의 노예가 아니라면서 동등한 인간으로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 장면이다.파르헤시아(Parrhesia). 희랍어로 ‘진실을 모두 말하기’라는 뜻이다. 성서에서는 ‘담대함’으로 옮긴다. 테이레시아스 같은 태도를 말한다.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