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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서평] 왜 어떤 일은 기억하고 어떤 일은 쉽게 잊을까 _다우어 드라이스마의 망각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표절 사건이 일어난 후, 소설가 신경숙이 그 일을 사실상 시인하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표현의 모호함 탓에 대중의 더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일상에서 무척 자주 일어난다.1970년 영국에서 유사한 표절사건이 벌어졌다. 고발된 사람은 조지 해리슨. 비틀즈의 멤버다. 그가 솔로로 발표한 곡 「나의 자비로운 신(My Sweet Lord)」이 여성 그룹 치폰스의 히트곡 「그 사람은 너무 멋있어(He’s so fine)」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두 곡은 멜로디가 아주 비슷했다. 「그 사람은 너무 멋있어」를 반주로 틀어놓고 「나의 자비로운 신」을 불러..
지하철 시에 대하여(기독교방송 인터뷰) 열흘 전에 기독교방송 박재홍의 뉴스쇼에서 지하철 시와 관련해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새벽에 한 인터뷰여서 힘들었습니다만, 아래 기사로 정리되어 나왔기에 블로그에 일단 옮겨둡니다. 아무래도 입말을 옮긴 것이라서 거칠기에, 본래 제가 예비 질문지에 써 두었던 글로 대체해서 게시합니다. “수준 미달 지하철 詩, 알고 보니 문단 장삿속?” ■ 방송 : CBS 라디오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장은수 (문학평론가) 출근길 만원 지하철을 기다리시면서 지금 이 시간에 라디오 들으시는 분들 많으시죠? 지하철을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주는 게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하철 내의 스크린도어에 실린 시 한 편인데요. 대부분 읽기도, 이해하기도 쉬운 시들이죠. 보시면서 “덕분에..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민지부모(民之父母, 백성의 부모) 『시경』에 이르기를, “즐겁구나, 군자여, 백성의 부모로다.”라고 했다. 백성이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바를 싫어하니, 이런 이를 백성의 부모라고 부른다. 『시경』에 이르기를, “우뚝하구나, 저 남산(南山)이여, 바위만 첩첩하도다. 밝디밝구나, 태사(太師)와 윤씨(尹氏)여, 백성들이 모두 그대들을 우러르는구나.”라고 했다. 나라를 가진 사람은 삼가지 않을 수 없으니, 치우치면 천하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愼, 辟則爲天下僇矣. 전(傳) 10장을 계속 읽겠습니다. 오늘 읽을 부분은 『시경』의 구절을 빌려 혈구(絜矩, 자로 헤아림)의 도를 해설합니다...
[오래된 독서공동체를 찾아서]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를 추구합니다 (청주 강강술래) 잠든 거인은 저절로 깨어나지 않는다. 낡은 램프는 내버려두면 낡은 램프일 뿐이다. 알라딘이 낡은 옷소매로 문질러 광을 낸 후에야 거인이 풀려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다. 책은 사람 앞에 놓인 램프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눈을 옮기지 않으면, 안에 잠든 거인을 해방시키지 못한다. 도서관은 각종 마법 램프들의 전시장이다. 000번 총류에서 900번 역사에 이르기까지 램프들이 잘 분류된 채로 소원을 들어주려고 알라딘들을 기다리는 중이다.램프에 거인을 잠들게 만든 마법사들은 어떨까. 가끔이라도 램프를 문질러 소원을 빌고는 있는 걸까. 요리사가 집에서 요리를 하는 법은 드물고, 교사가 자식 가르치는 건 어려운 일처럼 이들 역시 자신을 위한 램프 닦기를 힘겨워할까. 책의 프로페셔널, 즉 저자, 편집자, 평론가, ..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김부식(金富軾)의 대흥사에서 소쩍새 울음을 듣다(大興寺聞子規) 대흥사(大興寺)에서 소쩍새 울음을 듣다 김부식(金富軾, 1075~1151) 속세 손님의 꿈은 이미 끊어졌는데,소쩍새는 울다가 또 흐느끼네.세상에 이제 공야장(公冶長)이 없거늘,누가 알겠는가, 마음에 맺힌 한을. 大興寺聞子規 俗客夢已斷,子規啼尙咽. 世無公冶長, 誰知心所結. 김부식은 고려 인종 때 문인으로 『삼국사기』를 지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문장이 뛰어나고 시에도 밝았습니다. 묘청(妙淸), 정지상(鄭知常)이 주도한 서경(西京, 평양) 천도 운동을 저지하고 이들이 난을 일으켰을 때 진압한 공로로 정권을 잡아서 정치를 좌지우지했으며, 말년에는 스스로 정계에서 은퇴했습니다. 사후에 무신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의 목을 베었을 만큼 문벌 귀족의 상징이었습니다. 대흥사(大興寺)는 개..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혈구지도(絜矩之道, 자로 헤아리는 길) 이른바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것이 그 나라를 다스리는 데 달려 있다는 말은,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답게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심을 일으키고, 윗사람이 웃어른을 웃어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공손함을 일으키며, 윗사람이 외로운 이들을 구휼하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을 것이니,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 자로 헤아림)의 도를 갖춘다고 하는 것이다. 윗사람에게서 싫어했던 바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에게서 싫어했던 바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에게서 싫어했던 바로 뒷사람을 이끌지 말고 뒷사람에게서 싫어했던 바로 앞사람을 따르지 말며, 오른쪽 사람에게서 싫어했던 바로 왼쪽 사람을 사귀지 말고 왼쪽 사람에게서 싫어했던 바로 오른쪽 사람을 사귀지 말라. 이것을 혈구의 도라고 일컫는 것이다. 所謂平天下在治其..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장연우(張延祐)의 한송정(寒松亭)에서 부르는 노래(寒松亭曲) 한송정(寒松亭)에서 부르는 노래 장연우(張延祐, ?~1015) 한송정 밤에 달빛은 밝고,경포대 가을은 물결이 고요하네.슬피 울며 오락가락하나니믿음 있는 갈매기 한 마리가. 寒松亭曲 月白寒松夜, 波安鏡浦秋. 哀鳴來又去, 有信一沙鷗. 이 시는 지명(地名)이 들어 있기에 배경 지식이 없으면 해독되지 않습니다. 첫째 구절의 한송(寒松)은 ‘차가운 소나무’가 아니라 강릉에 아직도 남아 있는 정자인 한송정(寒松亭)을, 둘째 구절의 경포(鏡浦) 역시 ‘거울 포구’가 아니라 강릉의 호수인 경포대(鏡浦臺)를 뜻한다는 것을 모른다면 엉뚱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 구절에서 월백(月白)은 ‘달빛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구름 한 조각 없는 맑은 밤하늘에 달이 휘영청 떠올라 교교히 비추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밤은 달..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의기가인(宜其家人, 그 집안 사람들과 잘 지내리) 『시경』에 이르기를, “복숭아는 탐스럽고, 그 잎은 무성하네. 이 딸이 시집가니, 그 집안사람들과 잘 지내리.”라고 했다. 그 집안사람들과 잘 지낸 이후에야 가히 그로써 나라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형 노릇도 잘하고, 아우 노릇도 잘하네.”라고 했다. 형 노릇도 잘하고 아우 노릇도 잘한 이후에야 가히 그로써 나라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그 거둥이 어그러지지 않으니, 이 사방 나라들이 [본받아] 바르게 되리라.”라고 했다. 그 아비 됨과 아들 됨과 형 됨과 아우 됨이 본받을 만한 이후에야 백성들이 그를 본받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함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이다.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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