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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시에 대하여(기독교방송 인터뷰)

열흘 전에 기독교방송 박재홍의 뉴스쇼에서 지하철 시와 관련해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새벽에 한 인터뷰여서 힘들었습니다만, 아래 기사로 정리되어 나왔기에 블로그에 일단 옮겨둡니다. 아무래도 입말을 옮긴 것이라서 거칠기에, 본래 제가 예비 질문지에 써 두었던 글로 대체해서 게시합니다. 



“수준 미달 지하철 詩, 알고 보니 문단 장삿속?”


■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장은수 (문학평론가) 


출근길 만원 지하철을 기다리시면서 지금 이 시간에 라디오 들으시는 분들 많으시죠? 지하철을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주는 게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하철 내의 스크린도어에 실린 시 한 편인데요. 대부분 읽기도, 이해하기도 쉬운 시들이죠. 보시면서 “덕분에 웃는다, 또 위로를 받는다” 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데 일각에서는 “그래도 시인데 수준이 좀 떨어지는 건 아닌가?”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출판사 민음사의 전 대표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은수 씨를 연결해서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실린 시에 대해 말씀 나눠봅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 장은수> 네, 안녕하세요. 


◇ 박재홍> 사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광고를 실으면 굉장히 수익이 남을 텐데요. 대신 시를 실었다는 말이죠? 취지는 참 좋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 장은수> 광고 같은 것을 실으면 수익성에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시민들이 시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읽으면서 생각의 지평도 넓히고 기쁨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정신적 행복의 공간으로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일부를 할애한 건 공공성의 확장 측면에서 크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그런데 최근에 스크린 도어에 실린 시들의 수준이 ‘함량 미달이다’ 이런 지적도 나오고 있어요. 


◆ 장은수> 좋은 시는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추거든요. 쏟아내지 않고 에둘러 말해서 읽는 사람들이 생각할 여지를 만들어주는데요.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실린 시들은, 여운이랄까, 이런 것을 남기지 않는 작품들이 많아서, 굳이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이 게시되어야 하나’ 같은 의견이 많이 나오는 거죠. 


◇ 박재홍> 그런데 사실, 시를 보고 읽을 때 ‘좋다, 나쁘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생각할 여지나 여운 같은 건 굉장히 주관적 요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객관적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 장은수> 물론 시의 평가에 완벽한 객관성은 있기 어렵죠. 읽고 느낌이 있으면 되니까, 주관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보통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감각을 새롭게 열어주고, 흔히 접하는 사건이나 사물을 달리 보는 이른바 발견의 기쁨을 주는 시를 게시하는 데에는 대체로 합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만한 작품들도 게재되어 있지만, 상당수 시들이 그러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수준이 너무 떨어지는 시들은 교체해야 하는 건 아닌가,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 박재홍> 만약에 이런 시들이 문학상 같은 곳에 투고를 한다면 수상기준으로 봤을 때는 어떤 정도 수준으로 평가하세요? 


◆ 장은수> 어렵죠.(웃음) 문학성을 논의하기에 힘든 수준의 작품들이 굉장히 많죠. 물론 보통 시민들이 써서 실리는 시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일부 기성시인 작품들도 수준 미달 작품이 꽤 있습니다.


◇ 박재홍> 기성 시인들의 시와, 시민들의 시민공모전을 통해서 시가 실리고 있는데요.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잖아요. 그러면 문학성이 조금 떨어져도, 시민들의 시가 실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은 아니냐?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장은수> 네, 물론이죠. 그런데 시민들 공모전을 통해 실리는 시가, 제가 알기로는 아주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압니다. 시민들 시가 실리는 건 아무 문제없습니다. 시민들께도 즐거운 경험이 되니까요. 문학 확산의 계기도 되고요. 하지만 시민 공모작도 지나치게 많으면 조금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크린도어는 공적인 공간이잖아요. 더 수준 높은 시가 게시되어 시민들한테 기쁨을 줄 수 있는 시가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요.


◇ 박재홍> 그렇다면 어떤 시가 스크린도어에 실려야 한다고 보시는 거죠? 


◆ 장은수> 일단은 검증된 좋은 고전부터 실려야 합니다. 수천 년의 한국문학사가 빚어낸 작품들 중에서, 시민들이 공감하기 좋고 기쁨도 줄 수 있는 시들이 많이 있습니다. 향가, 고려가요, 시조를 비롯해서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한 한시들, 김소월, 윤동주, 백석, 이상 등의 현대시까지 그 목록이 끝이 없습니다. 이 작품들로까지 개방되어서, 시민들한테 널리 읽히면 스크린도어 공간이 공공성을 더욱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박재홍> 그러니까 오랫동안 고전으로 사랑받아 왔던 보편적인 시들이 실리면, 더 좋은 문화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인데요. 그러면 지금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실리는 시는 어떤 과정을 통해 실리나요? 논란이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까? 


◆ 장은수> 일곱 군데 문학단체에 의뢰해서 작품을 추천받고요. 나머지는 시민공모전을 통해서 받은 후, 열한 명 정도 심사위원들이 모여서 작품을 선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중 몇몇 단체들은 활동이 미진하거나, 활동이 있더라도 수준 높은 작품을 쓰는 분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라고 하기에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 단체의 회원들 시도 심사 대상으로 추천됩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자기 작품이 게재되는 것이 어찌 보면 시인들한테는 명예가 되잖아요. 그런 명예를 이용해서 전부는 아니지만 그 단체들이 장삿속을 드러낸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일들이 왕왕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겁니다.

어찌 보면 자기가 쓴 시를 자기가 추천하는 거잖아요. 이래서는 객관적이기 어렵죠. 자기가 자기를 심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살아있는 사람이 자기 작품을 거기에 게재하려고 애쓰다 보니까 이런저런 폐단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돌아가신 분들의 시, 문학사적으로 검증된 시들이 더 많이 실리면 시민 공모작과 어울려 좋은 문학적 향유 공간이 되리라고 봅니다.


◇ 박재홍> 좀 더 면밀한 기준을 통해서 실어야 된다는 말씀이신 것 같네요. 


◆ 장은수> 그렇습니다. 자기 단체 회원의 작품에서 추천한다? 이런 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싶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리고 또 시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고전 소설이나 명작 속에 좋은 문장이나 구절을 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장은수> 좋은 의견입니다. 광화문 교보빌딩에 있는 글판은 가끔씩 산문에서 글을 따 오기도 합니다. 사실 모든 문학작품에는 시가 들어 있거든요. 그런 작품에서 뽑은 시적인 구절들도 게재되면 좋겠네요. 만약 시의 작품 수가 부족하면 그 역시 훌륭한 대안이 될 것 같네요.


◇ 박재홍> 많은 시민들이 접하는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실리는 시인 만큼, 좀 더 면밀한 검토를 해서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가 실리면 좋겠습니다. 말씀 여기까지 들을게요. 고맙습니다. 


◆ 장은수> 네, 안녕히 계십시오.


◇ 박재홍> 문학평론가인 장은수 씨와 말씀 나눠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