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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편집을 생각하다 “내린다는 느낌보다는 공기 중에 가득한 느낌의 가랑비.”새벽에 일어나 이케자와 나쓰키의 『문명의 산책자』(노재명 옮김, 산책자, 2009)를 읽다가 밑줄을 그어 두었는데, 예감일까, 하루 종일 이런 비가 홍동에 내렸다. 도서관 창밖으로 보이는 공기는 맑았던 어제와는 달리 무겁고 축축하지만, 힘껏 집중하지 않으면 비가 내린다는 것을 알아채기 어렵다. 이곳의 소리는 풍부하다. 멀리에서 끊임없이 산비둘기가 운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어루만지는 소리, 엄마를 따라 온 아이들 웃음소리, 건너편 도서관 회의실에서 중학생들이 토론하는 소리도 가끔씩 창턱을 넘어온다. 길 건너 논에서는 벼들이 낟알을 실어 고개가 휘어지기 시작했다. 초록에서 노랑으로 들의 색깔이 막 바뀌려는 참이다. 음력으로 표시하는 자연의 절기는 정확하..
더욱 편집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 오늘날 한국/세계 출판의 상황에 대해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과 대답, 그러니까 공부가 필요하다. 과거의 경험만으로는 쉽게 추론하거나 예견하기 어려운 낯선 상황이 계속되는 중이다. 서점 기능의 지속적 약화, 출판 공론장의 구조적 붕괴, 이형 콘텐츠와의 출혈적 경쟁, 출판 자본의 단기 투기 자본화 등 거시적 요인들이 개별 출판 또는 서적이 쓰이고 만들어지고 팔리는 미시적 현장을 옥죄는 중이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도서 정가제의 제한적 시행은 온라인 서점 등장 이전으로 출판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에는 조금의 도움이 되겠지만, 이런 복합적 위기 상황을 타개하는 데에는 별다른 시사점이 있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낡은 절망이 아니라 어쩌면 새로운 분투를 불러일으킨다. 서점의 약화는 우리..
주세붕(周世鵬)의 종이창에 새기다(紙窓銘) 종이창에 새기다 주세붕 종이창은 능히 밝은 빛을 받아들이나니, 그것을 더럽히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종이창은 능히 바람을 막아 주나니, 그것을 찢는 사람은 스스로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이 방에 살면서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가짐을 닦으려는 사람은 사악한 생각이 깃들지 않도록 힘쓰라. 紙窓銘紙窓能納明, 汚之者自欺. 紙窓能御風, 破之者自危. 居是房而欲正心修身者, 庶幾無邪思. 이 글은 주세붕(周世鵬)의 문집인 『무릉잡고(武陵雜稿)』에 실려 있는 글이다. 주세붕은 이 글에서 종이창을 마음에 비유하고 있다. 종이창이 빛을 투과하고 바람을 막는 것처럼, 마음 역시 끝없이 정갈함을 유지해 밝은 빛으로 채우고 구멍 나지 않게 챙겨서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유지해야 함을 경계한다. 요즈음은 우리의 건축..
[銘] 창문에 부쳐[窓銘]_주희 창문에 부쳐[窓銘] 주희 말할 때에는 먼저 삼갈 것을 생각하고,움직일 때에는 먼저 넘어질 것을 생각하고,허물이 있을 때에는 없애버릴 것을 생각하라.네 몸을 단정히 하고,네 용모를 바르게 하고,네 마음을 전일하게 하라. 窓銘言思毖. 動思躓. 過思棄. 端爾躬. 正爾容. 一爾衷.
[뉴스 속 후한서] [삶의 향기] 내 얼굴의 반쪽을 그린 초상(중앙일보) 어제 《중앙일보》 삶의 향기에 미술 평론가인 손철주 선생의 칼럼 「내 얼굴의 반쪽을 그린 초상」이 실렸다. 선생이 쓴 책과 글에 오래전부터 감탄해 오던 터라서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읽었다. 친한 화가가 그려 준 얼굴 반쪽의 초상을 걸어 두고, 스스로 부족함을 보완하는 계기로 삼으리라는 내용이었다. 언제나 느껴 왔듯이 선생의 글에는 격조가 있는데, 특히 이번 칼럼은 조선의 선비가 쓴 족자를 걸어 두고 쓴 명(銘)을 읽는 기분이어서 더욱 깊은 맛이 들었다. 칼럼 중간에 『후한서』를 인용한 부분이 있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의 전형으로 칭송받는 후한의 재상 유관(劉寬)의 이야기였다. 내 평생의 병통을 요약하는 말이 있다. 바로 ‘질언거색(疾言遽色)’이다. 질언거색은 ‘나오는 말이 급하고, 낯빛이 금방 바뀐다’..
[뉴스 속 후한서] [황종택의新온고지신] 상경여빈(相敬如賓) 며칠 전 《세계일보》 황종택 칼럼에 부부애를 이야기하면서 『후한서』 속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상경여빈(相敬如賓), 즉 [부부가] 손님처럼 서로 공경한다는 뜻이다. 3000여년 전 주나라 건국의 설계자 태공망은 “아내의 예절은 반드시 그 말이 고와야 한다(婦人之禮 語必細)”고 강조했다. 결국 부부 서로 위해줘야만 화평을 이룰 수 있다. ‘가족이니까 이해해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면 파경을 맞을 수 있다. 그래서 ‘상경여빈(相敬如賓)’, 부부라도 손님 모시듯 서로 공경하라고 ‘후한서’는 가르치고 있잖은가. 태공망의 훈계는 계속된다. “어리석은 남편이 아내를 두려워하고, 어진 아내는 지아비를 공경한다(癡人畏婦 賢女敬夫).” 이 말은 『후한서』 권83 「일민 열전(逸民列傳)」 중 방공전(龐公..
[북카페] 후한서 본기 외(조선일보) 이번에 『후한서』를 출판하고 나서 주요 일간지 여기저기에 기사가 났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두 감사드립니다. 하나씩 이 블로그에 옮겨서 차례대로 소개합니다. 후한서 본기|범엽 지음|장은수 옮김|새물결|3만5000원 조선 선비들이 필독 역사서로 읽어온 후한서(後漢書) 본기(本紀)가 처음 완역됐다. 역동적이었던 후한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돼 있다.
[저자와 차 한잔] ‘후한서’ 완역한 장은수 민음사 대표(서울신문) 이번에 『후한서』를 출판하고 나서 주요 일간지 여기저기에 기사가 났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두 감사드립니다. 하나씩 이 블로그에 옮겨서 차례대로 소개합니다. “후한서는 중국사 넘어 동아시아 공통사지요” 기원전 206년 고조 유방(劉邦)이 세운 한(漢)왕조는 서기 9년 왕망의 정변으로 신(新)나라를 세울 때까지 유지됐다. 서기 25년 한나라 왕조의 후예인 유수(劉秀)가 신나라를 무너뜨리고 한나라를 재건했으니 그가 광무제(光武帝)다. 역사에서는 신나라 이전을 전한, 이후를 후한으로 각각 구분한다. 후한은 서기 220년 헌제(獻帝)가 조조의 아들 조비에게 제위를 물려줌으로써 막을 내린다. 남북조 시대 유송(劉宋) 왕조의 역사가 범엽(范曄·398~445)이 200년가량 지속한 후한의 흥망성쇠를 기록한 ‘후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