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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농사법 _ 홍동 마을에서 보낸 편지 창으로 들어오는 새벽 첫 빛에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쉰 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 늦은 잠이 줄고, 새벽에 깨는 일이 조금씩 늘어갑니다. 세월을 미리 대비하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몸이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은 언제나 몸 가는 곳을 뒤늦게 좇는 것만 같습니다.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립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호미 한 자루만 들고 집 뒤쪽 텃밭에 나갑니다. 뒷산 부엽을 긁어서 덮고 왕겨를 덧입혔지만, 자라는 풀들을 어쩔 수는 없습니다. 이랑 사이로 비죽비죽 솟아오르는 풀들을 하나하나 솎습니다. 평일에는 각자 삶을 살고, 주말에만 밭을 손대다 보니 그사이 무성하기 일쑤입니다.지난 가을부터 홍동에서 몸을 쉬면서 ‘사람이 풀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는데, 풀들은 과연 힘..
책의 발견 _초연결 사회에서 출판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방금 전에 통보받았는데, 이 행사는 메르스 때문에 연기되었습니다. 가을로 연기된 도서전이 다시 열릴 때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6월 19일 오전 10시부터 제가 사회를 보면서 이중호, 이홍, 박주훈 세 분 출판 전문가를 모시고 서울국제도서전 출판전문가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초연결사회에서 출판의 진화를 고민하고 모색하는 귀한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출판의 미래를 고민하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2015 서울국제도서전 출판 전문가 세미나 1책의 발견 _초연결 사회에서 출판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오늘날 출판은 모든 것이 연결된 사회에서 이루어집니다. 저자와 독자, 독자와 독자, 저자와 책, 독자와 책이 서로 연결된 데 이어서 책과 책이 연결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출판은 저자와 독자를..
완두를 따면서 첫 수확의 때가 왔다. 어제 오후 완두를 소복이 따서 담았다. 집으로 가져가서 밥에 놓아먹거나 쪄서 까먹을 생각이다. 입에 저절로 군침이 돈다. 초여름 가뭄이 계속되면서 밭작물이 실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했는데, 실하게 무척 많이 열려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수확해서 온 가족이 나눌 생각을 하니 마음이 저절로 즐겁다.새벽에 일어나 밭으로 나가 생채, 상추, 적상추 등(아직 이름을 제대로 구분 못 한다.ㅠㅠ)을 따서 챙겼다. 저녁에는 고기 두어 근 사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쌈을 먹을 생각이다. 지난주에 한아름 가져갔는데도 한 봉지 가득 담을 정도로 다시 자랐다. 새삼 땅의 힘을 느낀다. 심고 조금만 가꾸면 발버둥치면서 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밥상의 풍요를 만들어 낸다.한 번뿐인 이 삶의 ..
오래된 독서공동체를 찾아서 _ 연재 시작합니다 “텔레비전을 더 보려고 귀농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미 있게 살려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자기 삶터에 관한 책을 함께 읽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주변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고, 생활에 이어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 즐거움이 반복되다 보면 자기 안에 좁게 갇혀 있던 눈이 생활세계 전체로 확장되면서 삶의 호흡이 무척 깊어집니다. 행복하지요.” (제주 남원북클럽 취재에서)"오래된 독서공동체를 찾아서!" 이번 주부터 한국일보에서 연재를 시작합니다.책을 혼자 읽는 것과 같이 읽는 것은 다릅니다. 같이 읽기는 단순한 독서 토론과 다릅니다. 때때로 토론이 있고, 때때로 논쟁이 깊어질지라도, 오래 책을 같이 읽는 것은 결국 삶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몇 군데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책이 자신을 바꾸고, 가족..
출판을 생각하다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다 “당신은 뱃속까지 진지합니까?”새벽에 상반기 출판 상황에 대한 글을 쓰다가 문득 나쓰메 소세키의 말이 떠올랐다.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에서 마주친 구절이다. 수첩에 슬쩍 적어두었는데, 메모해 둔 자료를 뒤적이다가 중간에 툭 튀어나온 것이다. 얼어붙은 듯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사는 것은 그냥저냥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의 형태로 내 삶에 출몰하는 세상사를 ‘뼛속까지 내려가서’ 마주하는 것은 어렵다. 햄릿의 대사처럼 세계의 사개가 물러나 있고 이를 바로잡을 운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그 막중한 임무를 외면하고 싶지 않은 이는 누구이겠는가. 지난주 기획회의에 “편집 전략이란 무엇인가요?”라는 글을 보낸 후, 후배 한 사람이 답장을 보내왔다. “편집자의 역할은 과연..
[서평] 냉전(冷戰)의 대량파괴무기가 남긴 위험한 유산 _ 데드 핸드 데드 핸드 / 데이비드 E 호프만 지음, 유강은 옮김 / 미지북스 사실들은 아름답다. 정교하게 배치되고 긴박하게 응축된 채 사건의 배후를 향해 파고들어가는 강렬한 운동을 할 때, 우리는 사실의 내부로부터 어둠을 밝히는 환한 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다고 느낀다. “바람보다도 더 먼저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예지가 있을 터인데도,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라고 무심하고 단정하게 단어를 골라내는 현장 특유의 글쓰기가 또다시 빛을 얻었다. ‘워싱턴포스트’에서 스물일곱 해 동안 근무한 민완 기자답게 데이비드 호프만은, 사실을 끈질기게 집적하는 건조한 글쓰기로 차가운 전쟁(冷戰)의 뜨거운 역사(熱史)를 써내려 간다.저자는 미소 양국 사이에 펼쳐진 파멸의 레이스, 즉 지도자의 한순간 실수만으로도 인류를 순..
[논어의 명문장] 승부부해(乘桴浮海,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돌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행해지지 않아서 뗏목을 타고 바다에 떠간다면, 나를 따를 사람은 아마 유(由, 자로)이리라.” 자로가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유가 용맹을 좋아함은 나보다 낫지만, [뗏목 만들] 나무를 취할 곳이 없구나.”子曰:“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 其由與?” 子路聞之喜. 子曰:“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공자는 천하를 편력했으나 등용되지 못하여 뜻을 펼칠 수 없었다. 희망에 지친 공자는 작은 뗏목이나 타고 바다를 떠돌며 세상 밖에서 살고 싶다고 하면서, 이때에도 따를 사람은 자로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로에 대한 굳은 믿음과 함께 자신의 정치적 이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좌절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행동의 인간’이었던 자로는 공..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또 읽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 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213쪽) 저녁에 노원인생학교 강의를 앞두고 어제 하루 종일 한강의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다시 읽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 찢어지는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