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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파시즘 바이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1852)에서 마르크스는 말했다.

“헤겔은 어딘가에서 세계사의 모든 위대한 사건과 인물은 두 번 등장한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그가 잊고 덧붙이지 않은 말이 있다. 첫 번째는 비극, 두 번째는 소극(farce)이라는 점이다.”

비극의 주인공은 프랑스 혁명 직후에 등장한 나폴레옹이고, 소극의 주인공은 1848년 혁명 이후에 나타난 그 조카 나폴레옹 3세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 사건은 부르주아의 본질을 폭로했다. “만일 민주주의의 가치(자유, 평등, 박애)를 버리는 것이 곧 경제적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라면, 부르주아 계급은 언제든지 그 가치를 차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새로운 보나파르트인 ‘스트롱맨’ 도널드 트럼프 역시 같은 사실을 드러낸다.

“미국의 많은 금권주의자는 헌법을 쓰레기 취급하고, 이민자를 희생양으로 삼고, 백인우월주의자를 동원하는 것 같은 소행이, 금융 규제 완화, 감세, 부패한 거래를 통해 자본을 한층 더 집중하는 데 치러야 할 작은 비용이라고 본다.”

전부 부르주아 탓은 아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룸펜 프롤레타리아야말로 진짜 보나파르트주의자다. 그들은 “모든 계급 중에서 쓰레기, 찌꺼기, 폐물”로, 보나파르트는 “이들에게서 개인 이익을 대량으로 찾아내는, 이들의 두목”이다.

과거의 프랑스 룸펜 프롤레타리아처럼, 오늘날 “수백만의 미국인도 자신을 착취당하지 않게 보호해 준다고 약속하지만 실은 훨씬 더 철저히 착취당하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파시즘 바이러스’에 굴복했다.”

이들은 “스트롱맨, 즉 일단 국가 기관들이 약해지면 권력을 잡은 다음 계속 그 기관들을 더 약하게 만들기만 하는 자를 옹호”했다.

그런데 비극 다음에 오는 것이 소극이라면, 소극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

대답과 관련해서 “쏟아진 헛소리가 엄청나게 많았다.” 탈진실은 우리를 화나게 하지만, 헛소리 정치는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우리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을 다 알면서도 하는지라 진실과 관계를 유지하지만,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는 진실에 아무 관심도 없는지라 진실을 한층 더 부식한다. 탈진실 정치(posttruth politics)는 대단히 큰 문제다. 그러나 수치를 모르는(postshame)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 이중의 곤경은 오늘날 우리의 설 자리를 끝없이 빼앗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 엘리트를 어떻게 흠잡으며, 부조리를 일삼는 정당 지도부를 어떻게 조롱한단 말인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고, 모든 것이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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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소극 다음은 무엇?』(조주연 옮김, 워크룸프레스, 2022)에 나오는 핼 포스터의 서문 앞부분을 정리해 본 글이다.

이 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썼던 포스터의 글을 모은 현대 미술 비평집이다.

‘파시즘 바이러스’는 칼 폴라니의 용어다. 이 바이러스는 영혼이 있는 존재로서의 개인을 적대하고 공격해서 고사시킨다.

보나파르트가 마르크스 당대의 상징이고, 히틀러가 폴라니 당대의 상징이듯, 트럼프 역시 우리 시대의 상징이다.

모든 것이 우리 손을 떠나 버린 듯한 세계, 비판적 입장이 디스토피아적 입장과 구분이 어려워진 시대에 포스터는 “허구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유토피아”를 지푸라기처럼 잡아 보겠다고 이야기한다. 소외된 세계에서 문화는 우리가 그나마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소극은 본래 “종교극의 막간에 나왔던 희극”이었다. 지금이 소극의 시대라면, 그람시의 말처럼 “구정치 질서와 신정치 질서 사이의 병적인 공백기”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른 시간이 올 것"이다.

봄에 홍수가 나면 강 위의 얼음이 깨지듯, 어느 순간 “힘이 느닷없이 방출”되면서 "관례, 제도, 법률을 모두 깨뜨리고 다른 식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것이 정치적 격변기인 현 시기의 기회다.”

뜨거운 사람이 있어서 역사는 때때로 희망을 빚어내는 듯하다.

 

핼 포스터, 『소극 다음은 무엇?』, 조주연 옮김(워크룸프레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