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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좋은 물건을 만드는 일은 영혼을 단련하는 것과 같다

누구나 자기 일을 통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배울 수 있다. 집은 짓든, 가구를 만들든, 음식을 요리하든, 경지에 오른 장인은 모두 깊은 영성의 탐구자이기도 하다. 그들의 손길이 닿으면, 일상의 제품은 영혼의 작품이 된다. 

물건 만드는 일은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요, 영적 깨달음을 누적하는 일이다. 좋은 물건을 만나면 경건하고 거룩한 마음이 먼저 일어서는 이유다. 『울림』(니케북스, 2022)에서 독일의 바이올린 장인 마틴 슐레스케는 말한다.

“악기를 만들다 보면 특별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작업실에서 경험하는 거룩한 순간. 그 순간에 나는 삶의 외적·내적 일들을 새롭게, 다르게 지각한다. 단순히 습득된 지식을 넘어서는 경험이다. 나는 모든 사람의 일상에도 이같이 계시의 순간들이 주어질 거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그런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걸 배우기만 하면 된다.”

슐레스케는 국내에서만 수십만 부가 팔려나간 스테디셀러 『가문비나무의 노래』로 유명한 악기 장인이다. 바이올린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성찰한 전작과 마찬가지로, 『울림』에는 악기, 인간, 영혼에 걸쳐진 세 겹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겉이야기는 하나의 바이올린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깊고 높은 산에서 자란 ‘노래하는 나무’가 연주자의 손에서 아름답게 소리 내는 악기로 변신하는 바이올린 제작 과정 전체가 감동적으로 재현된다.

저자는 산속을 떠돌며 악기가 될 나무를 찾는 일, 그 나무를 켜서 목재를 만들어 때로는 수십 년간 보존하는 일, 결에 맞게 깎아내고 모양에 맞춰 조각하는 일, 감미롭고 힘 있고 빛나는 음색을 찾으려 궁리하는 일, 칠을 해서 나무를 살리고 기품 있는 광택을 내는 일, 악기가 열정적 연주자를 만나서 서로를 길들이면서 독특한 음색을 얻는 일 등을 세세히 보여준다. 단계마다 이어지는 저자의 세심한 작업 공정을 지켜보면서 하나의 악기가 만들어지는 거룩한 순간을 함께 체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기쁨을 준다.

악기 이야기는 동시에 바이올린을 만드는 한 장인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저자는 학교생활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했다.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탓에 수업 시간에 찍히기 일쑤였고, 불을 내는 사고까지 저지른 문제아였다. 간신히 학교를 졸업한 후 바이올린 장인을 기르는 미텐발트에 들어갔을 때 저자는 하고 싶은 일을 찾은 듯한 기쁨을 느꼈으나, “좋은 울림은 어떻게 생겨나는가”를 둘러싼 끝없는 질문 탓에 교사들과 다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슐레스케를 구원한 것은 공간 음향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헬무트 뮐러였다. 제작학교를 졸업한 저자는 뮐러 밑에서 도제 수업을 쌓았다. 악기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려면 전해 온 손기술에 현대 음향 물리학의 지식을 더해야 했다. 악기의 고유한 음색은 악기의 독특한 진동이었다. 

공부에 부족함을 느낀 저자는 대학에 들어가 물리학을 전공하고, 바이올린 마이스터 시험을 통과한 후 자신만의 공방을 차린다. 숱한 위기와 고난을 넘어 세계적 장인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인생 연금술이 무척 매혹적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인간 영혼의 순례기가 담겨 있다. 저자에게 악기를 만드는 일은 인생을 성찰하고 영성을 추구하는 거룩한 마음과 이어진다.

악기는 인생과 같다. 척박한 땅에서 힘겹게 자란 가문비나무가 생존의 위기를 겪으면서 목질이 단단해져 ‘울림의 축복’을 받듯이, 상처를 견뎌내면서 굳세진 영혼은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대가로 얻는다.

악기처럼 인간도 신의 소리를 조화롭게 담아낼 때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누구나 하루하루 의미 있는 삶을 연주해야 한다. “음악에서 작곡가의 생각이 들리고 영혼을 건드리는 것처럼, 우리가 하는 행동과 일에서 우리 삶의 의미가 들린다.”

이 책에서 우리는 단어가 음표가 되고, 문장은 음률이 되며, 행간이 깊은 생각과 영적 탐구를 불러일으키는 기쁨을 맛본다. 미국 철학자 리처드 세넷의 말처럼, 우리의 손은 언제나 ‘생각하는 손’이다. 인간은 손으로 생각하고, 손과 함께 생각하며, 손을 통해서만 생각한다.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장인의 마음으로 살라고 호소한다. 무슨 일이든 지극한 정성으로 대하고, 영적 추구의 재료로 삼아 정진할 것, 거기에 구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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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서평입니다.

 

마틴 슐레스케, 『울림』, 유영미 옮김(니케북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