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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걷는 생각

가벼움의 시대

현대 문명은 가벼움에 홀려 있다. 가벼움은 이 시대의 이상적 질서다. 『가벼움의 시대』(문예출판사)에서 프랑스 사회학자 질 리포베츠키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는 가벼움을 “제도적으로 합법화하고 사회적으로 일반화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질 리포베츠키, 『가벼움의 시대』, 이재형 옮김(문예출판사, 2017)

‘슬림’ ‘심플’ ‘홀로’ ‘쿨’ ‘큐트’ ‘초소형’ ‘초경량’ ‘초간편’ 등 우리를 둘러싼 세계 전체가 가벼움을 찬양한다. 가볍고 얇고 작고 짧은 물건들은 우수함의 증거다. 다이어트와 피트니스는 신체의 궁극적 관리 기술이 된다. 가벼운 몸, 즉 날씬하고 빼빼한 몸매의 생산은 이 시대의 지상명령이다. 

혈연이라는 운명의 형식으로 묶인 가족마저 점차 가벼워진다. 대가족은 핵가족으로, 핵가족은 1인 가구로 세포분열 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6년 말 1인 가구가 540만가구로, 무려 전체 가구의 27.4%에 이른다. 증가 속도도 가파르다.

‘솔로’는 우리 시대 경제의 진짜 동력이다. 집집마다 필요한 것은 웬만큼 다 갖춘 포화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려면 휴대폰 배터리의 수명을 세 해 정도만 유지되도록 설계해 상품의 교환주기를 필연으로 만드는 방법(계획적 진부화)을 쓰거나 가족 자체를 지속적으로 분열시켜 잠재 수요를 만드는 방법을 써야 한다. 그리하여 광고는 싱글의 자유로운 삶을 예찬한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며, 혼자 여행을 떠난다……. 나 홀로 살아도 가전이든, 컴퓨터든, 책상이든 간에 있어야 할 것은 모두 있어야 하니까.

그러나 ‘1인분 경제’의 내적 정체성은 해방이 아니라 흔히 고독으로 귀결된다. 가족과 일터의 온갖 관계에서 놓여난 ‘가벼운’ 개인들은, 마음의 안식을 잃은 채 휴식할 곳을 찾아 거리를 떠돈다. 밀란 쿤데라는 말한다. 

“지상에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더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의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진다.”

우리는 중력의 존재다.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두 발을 땅에 붙인 채, 세상의 온갖 무게를 견디는 과정 자체가 우리 삶의 비밀을 이룬다. 짓눌리되 주저앉지 않고 우리는 직립한다. 넘어지지 않고 아슬아슬 걷고 신나게 뛰고 즐겁게 춤춘다. 

그러나 디딤판 없이는 어떤 도약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 세계에 붙잡혀 있다. 우리의 제약, 이것이 우리의 자유다. 부단한 연습으로 근육을 붙여서 중력을 이기고 걷거나 뛰거나 춤추는 기쁨. 

대지가 없는 양 살아가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환각에 불과하다. 정보기술이 시간적·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할 것처럼 폭주 중이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이 문명이 우리를 무의미의 지옥에 떨어뜨리고 있지는 않는지,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