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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걷는 생각

386세대 적폐론

386세대를 다룬 책이 늘어난다. 산업화의 막내이자 민주화의 중심이며 정보화의 개척자를 자부하는 이 세대가 한국사회의 사실상 적폐로 탄핵받는 중이다.

김정훈・심나리・김항기 등 30대 중후반이 쓴 『386세대 유감』(웅진지식하우스)은 “아무 견제 없이 우리 사회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이 세대가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타 사다리를 걷어찼다”고 주장한다. “헬조선 탄생을 주동하거나 최소한 가담하거나 방관해 온 386세대의 미필적 고의”에 “‘가해자성’을 물을 시간”이라면서 이들은 이 세대한테 “혁명의 열정을 뽐내는 주체”의 자리에서 내려와 “세대독점의 해소”에 겸손히 봉사함으로써 “혁명을 완결”하자고 말한다.

40대 후반인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도 진단과 제안은 비슷하다. “좋은 운을 향유”한 386세대가 “불평등의 생산자이자 수혜자로 등극”한 과정을 이 책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청년기의 민주화 투쟁 경험을 자산 삼아 이 세대는 “정치 권력과 시장 권력을 동시에 장악”한다. 

한국경제의 성장률이 떨어지고 잠재력이 고갈되는 상황도 이들을 막지 못한다. 정치・행정・사법은 물론 학교・시민단체・상층노동시장을 과점한 이들은 다른 세대에게 돌아갈 몫을 착취해 자기 호주머니에 넣는다.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청년세대의 불행”은 386세대가 특유의 단결력과 조직력을 활용해 “좋은 일자리, 높은 임금, 권력을 장기 독점”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이들은 확보한 밥그릇을 일절 양보 없이 지키려고 이들은 다음 세대 일자리를 비정규・외주노동 등으로 유연화한다. 이 와중에 386세대 전체가 청년들과 적대적 관계가 되면서 불평등이 세대문제로 나타난다.

법무장관 후보가 된 사람의 삶은 이 세대의 한 전형이다. 민주화투사라는 상징자본을 이용해서 이름을 날린 그는 ‘입으로는 정의, 몸으로는 실리’를 추구해 자신의 말을 실제 삶에서 배반했다. 부모 도움으로 문화자본을 대물림한 ‘386 주니어’가 부모들 자리를 또다시 차지하는 경우를 흙수저 청년들은 흔히 볼 듯하다. 두 번 배신당할 운명에 처한 청년들의 실망과 분노가 아프고 두렵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이 세대의 한 사람인 나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괴로웠다. 얼마 전 후배들한테 50대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어른이 될지 늙은이가 될지 정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는 스스로 뛰어서 업을 쌓을 일보다 다음 세대 도움을 받아서 해낼 일이 많은 시기다. 저자들은 386세대한테 “배려와 양보의 미덕”을 발휘할 것을 권한다. 남은 몇 해 동안 많은 것을 내려놓고, 무엇보다 몰염치하거나 파렴치하지 않도록 애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되기는커녕 적폐로 몰리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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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칼럼입니다. 몇 문장 보태어 여기에 올려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