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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걷는 생각

일을 사랑하는 법

“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직업을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열정의 배신』(김준수 옮김, 부키, 2019)에서 칼 뉴포트 조지타운대 교수가 묻는다. 흥미로운 질문이다. 대부분 죽지 못해 일한다. 아침마다 사표를 항상 품에 넣은 채 출근하는데, 먹고사는 일을 열정적으로 좋아할 수 있다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질문의 답은 단 한 줄로 요약된다. 

“자기 일에 충분히 능숙해질 만큼 오래 일하면 된다.”

칼 뉴포트의『열정의 배신』(김준수 옮김, 부키, 2019)

때때로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하고 직업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누구처럼 다 자란 아이들 스펙을 챙길 만큼 정신없지는 않지만, 부모 마음에 걱정이 되어 슬쩍 물으면 아이들은 펄펄 화를 날린다. 제 앞가림은 하겠다는 기개에 일단 마음은 놓인다. 어느 날 심각한 얼굴로 “아빠, 나 뭐 하면 좋을까” 하고 물어온다면, 재앙이 일어난 것일 테니까.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 나이 때 나 자신이 편집자가 되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했을 뿐, 열정을 바칠 직업 같은 것은 떠올리지 않았다. 군에서 제대할 무렵, 우연한 충동에 출판사에 들어서 이 직업을 얻었다. 다행히 ‘읽기중독자’로서 잘할 법한 일인 데다, 첫 직장에서 마음껏 책을 기획할 수 있는 자율을 보장한 덕분에 재미를 얻어 하루 이틀 날을 덧붙이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천직이라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에서 처음부터 사랑할 만한 일은 드물다. 스스로 직업을 만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설령 그런 일이 있더라도 자기 차례가 아니기 십상이다. 삶이란 우발적으로 다르게 흘러가는 일이 많고, 세상 일자리는 대부분 ‘자기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인간은 제 욕망을 우선하므로, 남의 일에 운명적 열정을 쏟거나 빼곡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성자가 아니면 일종의 변태나 다름없다.

뉴포트에 따르면, 일에 대한 사랑은 주로 후행적(後行的)이다. 어떤 일을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오랫동안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무슨 일이든 꾸준히 잘해낸 사람만이 그 일을 운명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세상은 후자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에 나중에는 인과가 역전된 것처럼 보인다. 번쩍이는 자연현상에 번개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나중엔 번개가 번쩍인다고 말하듯. 그러나 번쩍이지 않는 번개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해보지도 않은 일을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는 아이들한테 ‘열정을 좇으라’는 충고는 나쁜 조언에 속한다. 다가올 기나긴 직장 생활은 청년의 순간적인 열정을 손쉽게 증발시킨다. 착각에 사로잡혀서는 좋은 길을 찾기 어렵다. 열정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남보다 잘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어떤 일을 사랑할 만큼 오랫동안 할 수 있다. 뉴포트는 조언한다. ‘어렵고 힘든 훈련을 견딘 후에 탁월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 길을 따라가라.’ 나는 운이 있었다. 좋아하는 ‘읽기’에서 때마침 그 길을 만났으니까. 부디 아이들한테도 같은 식의 행운이 찾아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