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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걷는 생각

지하철 소리 풍경

휴대전화의 이어폰이 무선으로 바뀌면서 지하철 등에서 민망할 때가 많다. 입술 앞에 휴대전화나 마이크가 없어서일까. 사람들 목소리가 저절로 커지면서, 본의 아니게 옆 사람 사생활을 생방송으로 듣곤 한다. 일종의 환지통 같은 것일지 모른다. 통화하는 본인은 소곤거린다고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물리적 실체를 느낄 수 없다 보니 저도 모르게 존재하지 않는 마이크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창피한 줄 모르고 지하철 한 칸이 다 들리도록 말이다

머리 셰이프, 『사운드스케이프』, 한명호, 오양기 옮김(그물코, 2008)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고, 도구는 인간을 바꾼다. 나로서는 아직 무선 이어폰을 사용해 본 적은 없으나 비슷한 일을 겪을 때마다 다짐하곤 한다. 유선 이어폰이 모조리 사라지면 몰라도, 저걸 쓸 일은 없을 거라고. 선이 없을 때 편리한 점도 없지는 않겠지만, 공중장소에서 사람을 저절로 무례하게 만드는 도구라면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온 사람들한테 때로는 감추고 싶은 것도 까발리는 꼴이 아닌가. 삶을 수치로 만든다면 기술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휴대전화 통화 소리 탓도 조금은 있지만, 사실 요즈음 지하철은 너무 시끄럽다. 승강장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는 순간, 때때로 소리의 공습이 시작된다. 상단에 달린 큼직한 화면에서 광고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시민들 대부분이 휴대전화에 코를 박고 있어서일까, 사람들 눈에 호소하는 시각 광고는 줄어들고 소리를 동반한 광고가 늘어나고 있다.

지하철 안에서도 소리가 따라온다. 타고 내리는 역을 안내할 때마다, 역 주변의 병원이나 음식점 등을 알리는 광고가 따라붙는다. 놀랍고 끔찍하다. 역을 안내하는 소리는 낮고 정중해 지나치기 일쑤고, 광고 방송은 톤이 높고 허공을 찢는 듯한 목소리라 귀가 불편할 정도다. 딸려오는 돈 몇 푼으로 도시철도공사의 배를 불리고, 부수 효과로 시민들 요금은 좀 아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의 소리풍경이 이래도 정말 괜찮은 것일까.

머리 셰이퍼는 사운드스케이프(그물코)에서 소리 과잉으로 인간을 괴롭히는 현대 사회의 소리 풍경을 고발한다. 현대인들은 내면의 고요 속에 단 한 순간도 침잠하지 못하고 항상 침묵을 착취당하면서 불안하게 살아간다. 세상에는 눈으로 보는 풍경이 있고, 귀로 들리는 풍경이 있다. 봄꽃은 새 소리와 함께 즐겨야 제 맛이다. 여름 녹음은 소나기 소리와 함께, 가을 단풍은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겨울 눈은 바람 소리와 함께 즐겨야 한다. 모든 공간은 어울리는 소리가 있을 때 인간을 아늑히 품는다. 마음이 휴식할 수 있도록 지하철에서 침묵을 돌려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