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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걷는 생각

수다 중독

수다란 무엇인가. 미국의 언론학자 피터 펜베스에 따르면, “어떤 가치 있는 것도, 중요한 것도, 흥미로운 것도 포함되지 않는 이야기”를 말한다. 

말 자체는 한없이 계속될 수 있다. 한가한 주말 오후 별로 안 친한 지인과 일없이 만났을 때처럼, 친목 모임에서 자리에 없는 사람들 뒷담화로 시간을 죽일 때처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나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문장이 흘러갈 때처럼, 시간이 닿는 한 말은 영원히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체력이 다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어도, 수다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의미 있는 말은 사실상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아이러니가 이로부터 생겨난다. 상대방이 자기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표시하려고 한시도 쉬지 않고 입을 떼는 상태 말이다. 

물론, 가부장제 아래 여성들처럼 평소에 자기표현을 극도로 억압당했던 이들의 수다는 ‘아무 말 대잔치’를 넘어선다. 수다에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말함으로써 억눌린 자신을 치유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진실 없는 대화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수다 중독’에 빠져든다. 

말하는 행위로부터 아무 진실도 생성되지 않는 까닭에, 수다가 길어질수록 관계는 공허해진다. 모임에 나가 입을 실컷 놀릴수록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 쓸쓸해진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유튜브 등 인터넷 세상의 수다는 더 비참하다. 사람들은 세상 모든 일에 의견을 붙이고 정체성을 표시하는 강박을 품도록 길들여지지만, 스스로 탐구한 진실을 말하는 대신에 권위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견해를 전하는 숙주가 될 뿐이다. 

SNS 같은 곳에 자주 글을 올릴수록 자신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현실의 헛헛함은 커진다. 사이버 세상에서 ‘좋아요’ 놀이에 중독될수록, 충족되지 않는 욕망 때문에 현실의 신체는 화면 앞에서 외로움에 떠는 것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으려고 가상공간의 언어는 쉽게 거칠어지는 이유다.

『존재와 시간』(까치)에서 하이데거는 이렇게 의미 없는 잡담을 즐기는 현대인을 “퍼뜨려 말하고 뒤이어 말하기”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사유가 담긴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은폐되어 있는 진리를 드러내는 일에 나서지 않고 평균적・피상적 견해를 되풀이하면서 “사실이 그렇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으니까.”는 식으로 입소문에 불과한 것에 진실의 무게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해 왔듯이, 만 명의 수다가 한 사람의 진리를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부화뇌동하면서 떠도는 말들을 주고받는 데 걸신들린 수다가 아니라 숙고를 통해 세계의 참모습을 살피는 사유가 인간을 구원한다. 


※ 이 글은 김다혜의 「여학생 수다와 전쟁」, 《상허학보》 41집(상허학회, 2014)을 참고해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