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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출판과 종교(필사에서 종교로, 금속활자에 대하여)


고려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낼 만큼 오랜 출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세 유럽 수도사의 일과가 성경을 베껴 쓰는 일과 기도로 이루어졌듯이, 고려의 승려도 경전을 직접 베껴 쓰며 사경을 제작했다. 필사의 전통에서 인쇄로의 전환은 세계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또 하나의 혁명이었다. 

고려시대 금속활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쇄 문화는 수도원과 사찰, 성경과 경전이라는 신앙 공간, 종교의 성전(聖典)을 매개로 꽃피었다. 대장경에는 불교의 성전이라는 신앙적 의미로서뿐 아니라 지식을 체계화하고 소통하고자 했던 인류의 지혜가 담겨 있다. 대장경판이 봉안된 해인사 장경판전은 진리를 향해 나아간 당대의 노력을 보여주는 거대한 도서관과 같다. (중략)

필사의 방식에서 목판 인쇄로의 발전은 인류의 역사에서 결정적 장면 중 하나이다. 나무판에 새긴 목판이 한 종류의 책만 찍어 낼 수 있다면, 낱개 글자로 되어 있는 활자를 다양하게 조합하면 보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찍을 수 있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금속을 녹여 활자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놀아운 창안이자 새로운 인쇄술이었다. 세상을 바꾼 창안은 무수한 실험과 기술적 시도, 실패를 거쳐 이루어진다. 

고려의 찬란한 기술인 금속활자 인쇄술은 조선시대로 이어진다. 조선 왕실에서 만든 한글 활자가 처음 찍은 책은 ‘바른 법(法)’에 대해서 말하는 『능엄경 언해(楞嚴經諺解)』이듯이, 고려의 첨단 기술은 시대를 이어 책의 나라 조선으로 이어진다.

_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국립중앙박물관, 2019) 도록 중에서(정명희 국립중앙박물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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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이 문(文)은 문신이라고 이야기한 걸 읽은 후,

문자와 영성의 결합에 대해 편집자들의 깊은 탐구가 있어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습니다.

출판이란 상품을 만드는 것 이상의 행위입니다. 어찌 보면 경전을 만드는 일인 것이지요.

온갖 어려움에도 책을 떠나지 못하는 편집자들을 볼 때마다 사제를 떠올리곤 합니다.

종교 이후의 영성은  어쩌면 책으로 이루어져 있을지 모릅니다.

제 깜냥으로는 아직 탐구가 불가능한 어려운 논증이기는 합니다만......


조선 왕실에서 만든 한글 활자가 처음 찍은 책이 『능엄경 언해(楞嚴經諺解)』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바른 법(法)’에 대해서 말한다는 점도요. 한 번  『능엄경해(楞嚴經)』, 이 책을 읽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