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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대학 공부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혈구지도(絜矩之道, 자로 헤아리는 길)

이른바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것이 그 나라를 다스리는 데 달려 있다는 말은,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답게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심을 일으키고, 윗사람이 웃어른을 웃어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공손함을 일으키며, 윗사람이 외로운 이들을 구휼하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을 것이니,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 자로 헤아림)의 도를 갖춘다고 하는 것이다. 윗사람에게서 싫어했던 바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에게서 싫어했던 바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에게서 싫어했던 바로 뒷사람을 이끌지 말고 뒷사람에게서 싫어했던 바로 앞사람을 따르지 말며, 오른쪽 사람에게서 싫어했던 바로 왼쪽 사람을 사귀지 말고 왼쪽 사람에게서 싫어했던 바로 오른쪽 사람을 사귀지 말라. 이것을 혈구의 도라고 일컫는 것이다.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오늘은 전(傳) 10장을 읽겠습니다. 전 10장은 치국(治國)을 다루고 있습니다. 『대학』에는 평천하(平天下)에 대해 해설하는 부분은 따로 없는데, 아마도 이는 나라를 잘 다스리면 저절로 세상이 평화로워진다고 생각한 까닭일 것입니다. 『대학』은 수백 년에 걸친 세상의 혼란이 서서히 잦아들고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는 전국시대 말기에 쓰였다는 게 정설입니다. 당시에 유가(儒家)는 한비자(韓非子), 상앙(商鞅) 등 엄격한 법을 앞세워 군주의 위엄을 세우고 흐트러진 사회질서를 바로잡으며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법가와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개인윤리를 넘어서는 사회윤리의 정립이 필요했고, 그에 대한 오랜 고민의 결과를 『대학』이라는 책에 응축해 놓았습니다. 따라서 『대학』은 유교 정치철학 또는 사회철학의 핵심을 이루며, 특히 치국을 다루는 이 장은 그 절정에 해당합니다.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것을 경(經)에서는 “천하에 밝은 덕을 밝히는 것[明明德於天下]”이라고 했습니다. 온 세상에 마음의 밝은 덕이 미치면 과연 세상은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천하에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삶의 어떤 원칙을 자신한테 적용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데, 어떻게 남한테까지 권할 수 있을까요. 제가(齊家)를 넘어 치국(治國)이나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려면 이 문제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 10장에서 『대학』의 저자는 그 대답으로 혈구(絜矩)라는 말을 제시합니다. 

혈구에서 구(矩)는 본래 ‘곱자’라는 뜻입니다. 직각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해서 만든 자입니다. 물론 여기에서는 ‘자’라는 뜻이 아니라 기준, 표준, 전범 등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혈(絜)은 헤아린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혈구란 ‘자로 재는 것과 같이 어떤 기준에 맞추어 모든 것을 헤아린다’고 새길 수 있습니다. 왜 이런 객관적 기준이 필요했을까요? 

전국시대 말기에 이르면, 군주가 자신의 잘못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백성의 잘못에는 더욱 가혹하게 구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입니다. 상앙이 자신이 만든 법 탓에 죽임을 당하는 아이러니는 어쩌면 그러한 시대 상황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을 재는 잣대로 남을 재어야 한다는 혈구의 논리는 유가 실천 윤리의 핵심인 ‘서(恕)’를 정치에까지 확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군주가 자신이 당하기 싫어하는 바를 백성들에게 베풀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백성들을 올바름으로 교화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군주가 자신한테는 관대하고 백성들에게는 가혹하다면 반드시 천하는 어지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장의 특징은 혈구의 도를 추상적 심학(心學)으로 풀이하지 않고 상하전후좌우에 있을 법한 구체적 관계를 통해 풀이한다는 점입니다. 노인을 노인으로 공경하고, 웃어른을 웃어른으로 대접하며, 외로운 사람을 보살피는 것을 예시로 들면서 이를 행하면 백성들이 저절로 교화되어서 집안에서는 효성스럽고, 직장에서는 공손하며, 나라에서는 순종한다는 이치를 밝혔습니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서(恕)의 윤리를 정치적, 사회적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바로 ‘혈구의 도’인 것입니다. 한 줄씩 읽겠습니다.


소위평천하자재치기국자(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상로로이민흥효(上老老而民興孝), 상장장이민흥제(上長長而民興弟), 상휼고이민불배(上恤孤而民不倍), 시이군자유혈구지도야(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소위(所謂)는 이른바, 앞에서 말한 바 등의 뜻입니다. 상(上)은 군주(君主)를 말합니다. 노(老)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집안의 웃어른을 뜻합니다. 흥(興)은 ‘일으키다’로 새깁니다. 장(長)은 어떤 단체나 조직 등에서 경륜이 오래된 어른을 뜻합니다. 집안에서는 노인을, 사회에서는 웃어른을 대접하면 백성들은 이를 본받아 자신을 낮추어 저절로 효성스럽고 공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휼(恤)은 ‘구휼하다’ ‘불쌍히 여기다’의 뜻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이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말합니다. 고(孤)는 본래 ‘고아’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사회적으로 홀로 설 수 없는 사람들, 즉 사회적 약자들을 말합니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환과고독(鰥寡孤獨), 즉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을 홀로 생계를 꾸릴 수 없는 사람들로 보고, 가뭄이나 홍수 등 재난이 들어 사회적 혼란이 우려될 때마다 국가가 곡식을 풀어 이들을 도왔습니다. 휼고는 이들을 늘 살피면서 어려움이 없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실 국가가 이런 일을 하는데, 백성들 마음이 떠날 일이 있겠습니까. 더욱 충성스럽게 될 것입니다. 배(倍)는 ‘곱절, 갑절’ 등의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에서는 ‘배반하다’ ‘등지다’의 뜻입니다.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면 백성들이 나라를 등지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이(是以)는 ‘이 때문에’ ‘이런 이유로’라는 뜻입니다. 혈구는 위에서 설명했으므로 여기에서는 풀이를 생략합니다.


소오어상(所惡於上), 무이사하(毋以使下). 소오어하(所惡於下), 무이사상(毋以事上). 소오어전(所惡於前), 무이선후(毋以先後). 소오어후(所惡於後), 무이종전(毋以從前). 소오어우(所惡於右), 무이교어좌(毋以交於左). 소오어좌(所惡於左), 무이교어우(毋以交於右). 차지위혈구지도(此之謂絜矩之道).

惡은 여기에서는 ‘싫어하다’는 뜻이므로 ‘오’라고 읽습니다. 상(上)은 윗사람, 하(下)는 아랫사람을 뜻합니다. 어(於)는 ‘~과 관계하면서’ ‘~과 관계에서’ 등으로 새기면 됩니다. 무(毋)는 금지사로 ‘~하지 말라’라는 뜻입니다. 사(使)는 ‘부리다’ ‘시키다’라는 뜻입니다. 윗사람과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싫다고 느꼈던 바를 아랫사람과 일할 때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희는 이를 무례함이라고 풀었습니다. 윗사람이 나를 무례하게 대하는 것이 좋지 않았다면, 나 역시 아랫사람과 일할 때 무례히 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事)는 ‘섬기다’라는 뜻입니다. 아랫사람과 일하면서 싫었던 바가 무엇일까요. 주희는 이를 ‘불충(不忠)’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일을 충실히 하지 않고 건성건성 대충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진실한 마음 없이 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前)은 ‘앞사람’, 즉 내가 맡은 일의 전임자를 말합니다. 후(後)는 후임자입니다. 선(先)은 ‘먼저 하다’ ‘이끌다’ 등으로 새깁니다. 종(從)은 ‘좇다’ ‘따르다’ 등의 뜻입니다. 교(交)는 ‘사귀다’ ‘친구를 맺다’라는 말입니다. 상하 관계와 전후 관계에 이어 좌우 관계까지 바로잡는다면, 나를 둘러싼 모든 정치적, 사회적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입니다. 혈구의 도는 결국 나를 중심으로 해서 있을 수 있는 모든 관계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을 적용함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윤리적 기틀을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