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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대학 공부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여보적자(如保赤子,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같이 하라)

『서경』 「강고(康誥)」 편에 말했다. “갓난아기를 돌보는 것같이 하라.” 마음이 진실로 그것을 구하고자 하면, 비록 적중하지 않을지라도 멀리 엇나가지도 않을 것이다. 아이를 기르는 법을 배우고 난 이후에 시집가는 여자는 아직 없었다. 한 집안이 어질면 한 나라에 어짊이 일어나고, 한 집안이 겸양하면 한 나라에 겸양이 일어나며, 한 사람이 탐하여 어그러지면 한 나라에 어지러움이 생긴다. 그 기미가 이와 같은 것이다. 이를 일컬어 한 마디 말이 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킬 수도 있다고 한다.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이어서 전(傳) 9장을 같이 읽겠습니다. 「강고(康誥)」는 앞에도 나왔는데, 주공(周公)이 동생인 강숙(康叔)을 은나라 유민들의 땅에 봉하여 보내면서 당부하는 말입니다. 정치를 잘하는 것은 따로 배움이 필요하다기보다는 갓난아기를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같이 행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물가로 기어가는 아기를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서 뛰어가서는 그 아이를 구할 것이라는 생각이 『대학』에 깔려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야말로 제가(齊家)의 근본입니다. 누구나 자기 자식은 아끼고 불쌍히 여기면서 정성을 다해 키우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육아를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아이들은 대부분 정상으로 자랍니다.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를 키울 때 정성을 다했듯, 백성을 다스릴 때에도 어머니처럼 정성을 다하기만 하면 정치가 큰 문제 없이 잘 굴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한 정치’라면 설사 원하는 바대로는 이루지 못할지라도 이루려 한 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로써 『대학』에서는 ‘제가’가 어찌해서 ‘치국’의 원리가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성의 정치’에서 ‘감성의 정치’로 옮겨가는 것은 현대 서양 정치학의 뚜렷한 흐름입니다. 마사 누스바움의 『감정의 격동』(조형준 옮김, 새물결, 2015)은 이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정(情) 없이 이(理)만으로 정치를 잘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미 2500년 전에 이를 통찰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康誥曰(강고왈), 如保赤子(여보적자)

「강고(康誥)」는 『서경』의 편명으로 주공이 동생인 강숙(康叔)을 은나라 유민들을 모은 위(衛) 땅에 보내면서 당부한 말이 담겨 있습니다. 은나라가 멸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데다가, 직전에 관숙(管叔), 채숙(蔡叔)에 동조한 은나라 유민들의 반란이 일어나서 가혹하게 진압한 직후여서 민심이 아주 흉흉했을 것입니다. 이런 땅으로 동생을 보내면서 주공은 은나라 풍습을 존중하고 따르면서 그들을 덕으로써 대하여 교화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 절정이 바로 ‘여보적자(如保赤子)’라는 말입니다. 『서경』 원문에는 ‘약보적자(若保赤子)’라고 나옵니다. “백성들을 갓난아기 돌보듯 하면 백성들은 편하게 다스려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적자(赤子)’는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아서 살색 그래도 붉게 보이는 아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심성구지(心誠求之), 수부중불원의(雖不中不遠矣). 

‘심’은 정치에 임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성(誠)’은 부사로 ‘진실로’ ‘정성스레’ 등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지(之)’는 지시대사로 ‘갓난아기를 돌보는 것같이 정치를 하려는 뜻’을 가리킵니다. 수(雖)는 ‘비록 ~할지라도’라는 뜻입니다. 중(中)은 ‘적중하다’라고 풀이합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본래 백성을 바르게 잘 이끌어서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중’은 그 뜻이 화살이 과녁에 들어맞듯이 정확히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서 본래 뜻이 어그러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를 ‘부중(不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갓난아이를 돌보듯 정성스레 백성들을 다스리다 보면 본래 하려고 했던 바를 정확히 이루지 못하더라도 멀리 어그러지지 않고 그와 비슷한 것은 이룰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이를 ‘불원(不遠)’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멀리 어그러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미유학양자이후가자야(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

‘미유(未有)’는 자주 나오는 표현이지요. ‘아직 있지 않았다’라는 뜻입니다. ‘이후(而后)’와 ‘이후(而後)’는 ‘~한 후에’라는 말로 서로 통용됩니다. 가(嫁)는 ‘시집가다’라는 말입니다. 아이 기르는 법을 모두 배운 이후에 시집을 가는 처녀는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하나씩 배워 가는 것입니다. 처녀가 배워야 할 것은 육아의 세세한 방법이 아니라, 아이를 기르는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입니다. 그런 마음가짐만 있으면 사실 아이 잘 키우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앞 구절에서 이미 밝혔듯이, 100퍼센트 원하는 대로 자라지는 못하더라도 그와 크게 어긋나지 않도록 자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가인(一家仁), 일국흥인(一國興仁), 일가양(一家讓), 일국흥양(一國興讓), 일인탐루(一人貪戾), 일국작란(一國作亂).

인(仁)은 흔히 ‘어질다’로 옮기는데, 최근에는 하나의 개념으로 보아서 ‘인(仁)하다’로 많이 옮깁니다. 이 말에 대한 정의가 다양해서 ‘어질다’라는 말로는 그 뜻을 포괄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우리말로 잘 옮겨져서 오랫동안 잘 써먹던 말을 요즈음에 공부 좀 했다고 해서 한자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그리 탐탁치는 않습니다. 차라리 우리말 ‘어질다’에 ‘인(仁)’이 포괄하는 것과 같은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옳아 보입니다. ‘양(讓)’은 ‘사양하다’, ‘겸양하다’, ‘양보하다’는 말입니다. 서로 겸손하게 자기 몫을 내세우지 않으면 집안이 화목할 것이고, 그 집안이 겸손히 자신을 낮추면 모든 집안이 서로를 낮출 것이니 한 나라에 겸양이 흥하게 될 것입니다. 일인탐루(一人貪戾)에서 ‘일인’은 ‘임금’을 가리킵니다. 한 조직의 수장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탐루’는 탐욕 탓에 타고난 본성이 제 모습을 잃고 일그러지는 것을 말합니다. 임금이 재물 등을 탐내 창고를 채우느라 착취를 일삼으면 한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질 리 없습니다. 그러면 ‘작란(作亂)’, 즉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이때 ‘작’은 ‘만들다’라는 뜻이 아니라 ‘~하게 하다’ ‘~을 일으키다’라는 뜻입니다. 


기기여차(其機如此)

‘기(機)’는 ‘기틀’ 또는 ‘기미’라는 뜻입니다. 한 나라가 흥하거나 어지러워지는 기틀이나 기미는 한 집안이나 한 사람에게서 이미 볼 수 있습니다. 한 집안이 어질고 겸손하면 한 나라가 어질고 겸손할 것이요, 한 사람이 탐욕으로 질서를 깨뜨리면 한 나라가 어지러워지니까요. 차(此)는 앞 문장 전체를 받습니다.


차위일언분사(此謂一言僨事), 일인정국(一人定國)

‘일언(一言)’은 ‘말 한 마디’라는 뜻입니다. 분(僨)은 ‘넘어지다’, ‘실패하다’로 새깁니다. 한 마디 말 덕분에 일이 잘되기도 하고, 한 마디 말 탓에 일이 어그러지기도 하는 경우는 살면서 수없이 겪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군주) 덕분에 나라가 평화로워지기도 하고, 한 사람 탓에 나라가 어지러워지기도 합니다. 말 한 마디라도 조심히 정성스럽게 하고, 움직임 한 번이라도 신중히 단아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