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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대학 공부

[시골마을에서 대학을 읽다] 신독(愼獨, 홀로 있음을 삼가다)

소인은 일 없이 홀로 있을 때 선하지 않은 일을 하는데, [끝내] 못 하는 짓이 없음에 이른다. 그러다 군자를 만나면 슬그머니 가리면서 그 선하지 않음을 감추고 그 선함을 드러내려 한다. [그러나] 남이 자신을 보면, 그 폐와 간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으니, 그렇다면 [숨김과 드러냄이] 어찌 보탬이 있겠는가? 이를 일컬어 [마음]속이 정성스러우면 바깥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음을 삼가는 것이다.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 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지난주에 이어서 전(傳) 6장을 읽겠습니다. 계속해서 ‘성의(誠意,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를 부연하여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본래 군자는 백성을 다스리는 지위를 가진 귀족 남자를 가리키고, 소인은 군자에게 다스려지는 사람들, 즉 평민 백성을 가리킨다는 것은 전에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소인의 본뜻인 백성으로 보는 게 옳으나, 학문과 덕행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현대적으로 보아도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한 문장씩 읽겠습니다.


소인은 일 없이 홀로 있을 때 선하지 않은 일을 하는데, [끝내] 못 하는 짓이 없음에 이른다. 그러다 군자를 만나면 슬그머니 가리면서 그 선하지 않음을 감추고 그 선함을 드러내려 한다.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 

한거(閒居)는 본래 일 없이 한가롭게 지낸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주희는 독처(獨處), 즉 홀로 있다는 뜻으로 풀었습니다. 이 문장이 ‘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조차 삼감)’ 다음에 오는 것을 고려할 때 속뜻으로 주희를 좇아 풀이하는 것이 그럴듯합니다. 

‘부소무지(無所不至)’에서 ‘무(無)~부(不)~’는 이중 부정으로 ‘~하지 않는 바가 없다’ ‘반드시 ~한다’는 말입니다. 선하지 않은 일을 저지르다 결국 못하는 짓도, 못할 짓도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본래 ‘밝은 덕[明德]’을 타고나나 제 욕심을 좇다 점차 그 밝음을 잃고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소인이라 이러는지, 이런 짓을 하면 소인인지 선후를 알 수 없으나, 이렇게 살지 않도록 모름지기 경계했으면 합니다. 이후(而后)에서 후(后)는 본래 ‘제왕’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후(後)’를 대신해서 쓰였습니다. 흔히 서로 통용되므로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염연(厭然)을 주희는 ‘힘 잃고 덮어 감추는 모습[銷沮閉藏之貌]’으로 풀었습니다. 공영달은 ‘선하지 않은 일을 덮어 감추는 것[閉藏其不善之事]’이라고 했습니다. ‘厭’은 발음에 따라서 뜻도 달라집니다. ‘은폐하다’ ‘가리다’일 때에는 ‘厭’을 ‘염’으로 발음합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제나라 군사가 성읍(成邑)을 에워쌌다. 성읍 사람들이 말에 물을 먹이고 있는 제나라 군사를 치수(淄水)에서 공격했다. 그러고는 백성들의 마음을 가리려 했다[將以厭衆]고 말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두예(杜預)는 이를 “백성들의 마음을 가림으로써 이미 항복했음을 알지 못하게 하려 한다[以厭衆心,不欲使知已降也]”고 주해했으며, 육덕명(陸德明)은 『석문(釋文)』에서 이런 경우에 ‘厭’은 발음이 어(於)와 염(冉)의 반절이라고 했습니다. 『강희자전(康熙字典)』에는 ‘염(黶)’ 또는 ‘엄(掩)’과 뜻도 발음도 같다고 나옵니다. 이로 보아 ‘염’이라고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厭’을 ‘암’으로 읽고 ‘계면쩍다’ ‘꺼리다’ 등으로 풀이합니다. 『대학언해(大學諺解)』에서는 ‘안’으로 읽었습니다. 한편, 제임스 레게는 ‘instantly’, 곧 ‘즉시’라는 뜻으로 풀이했습니다. 일본에서도 뒤덮다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주희와 공영달을 따릅니다.

‘엄(揜)’은 감춘다는 뜻입니다. ‘저(著)’는 흔히 ‘저술하다’로 쓰이지만, 여기에서는 ‘드러내다’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남이 자신을 보면, 그 폐와 간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으니, 그렇다면 [숨김과 드러냄이] 어찌 보탬이 있겠는가?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인지시기(人之視己)’에서 ‘인(人)’은 ‘남’을 뜻하고, ‘기(己)’는 소인을 말합니다. ‘남들이 소인을 바라보면’이라고 옮기면 됩니다. ‘여견기폐간연(如見其肺肝然)’에서 ‘여(如)~연(然)’은 대구를 이루어 ‘~인 것 같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폐간(肺肝)’은 소인의 속마음을 가리킵니다. 즉하익의(則何益矣)는 반어문입니다. 주어가 생략되어 있는데, 앞 문장에 나오는 ‘엄(揜)’과 ‘저(著)’를 말합니다. 


이를 일컬어 [마음]속이 정성스러우면 바깥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음을 삼가는 것이다. 此謂, 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성어중(誠於中), 형어외(形於外)’는 공자 학파 사이에서 당시 널리 이야기되던 말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차위(此謂, 이를 일컫다)’라는 말을 썼습니다. ‘어(於)’는 장소를 뜻하는 어조사로 ‘ ̄에서’라는 뜻이고, ‘중(中)’은 ‘마음 한가운데’를 말합니다. ‘형(形)’은 명사로는 ‘모양, 형태’의 뜻이지만, 이 구절에서는 동사로 쓰였습니다. ‘나타나다’로 새깁니다. 마음이 오로지 정성스러우면, 그 마음이 저절로 겉으로 나타나는 법입니다. 따라서 소인이 하듯이, 선함을 억지로 내보이고 악함을 숨길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방종하면 반드시 겉으로 드러나 표시가 납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조차 마음이 악에 물들지 않고 선함에 힘쓰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앞에 이어서 ‘신독(愼獨)’을 한 번 더 강조한 것은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데 이 일이 그만큼 중요함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