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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한시

[한시 읽기] 유방(劉邦)의 대풍가(大風歌)

大風歌

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歸故鄕

安得猛士兮守四方



큰 바람의 노래[大風歌]

유방(劉邦)


큰 바람 부니 구름이 흩날렸는데

위엄을 천하에 더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네.

어디인가, 용맹한 군사를 얻어 사방을 지킬 곳이.



1) 漢高祖 劉邦 : 한나라 고조 유방(기원전 256?~기원전 195)는 자가 계(季)이며, 태어난 해는 256년 외에도 257년이라는 설과 246년이라는 설이 있으나 어느 설도 정확하지 않다. 패현(沛縣) 풍읍(豊邑, 현재 장쑤성 펑현)에서 농민으로 태어나 나중에 진시황 사후 어지러워진 천하를 통일하여 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젊을 때에는 건달 노릇을 하면서 이른바 협객의 무리들과 어울렸고, 나이 들어 사수(泗水)의 정장(亭長)이 되었다. 진나라 말에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에 편승하여 군대를 일으켰다. 유방의 나이 마흔여덟 살 때였다. 이후 초나라의 명문 출신이 항량(項梁)의 군대에 합류하여 진나라 군대와 싸웠다. 가장 빨리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咸陽)에 들어가 천하에 이름을 떨쳤으며, 진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는 항량의 조카인 항우(項羽)와 천하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몇 번이나 항우에게 패하여 궤멸될 뻔했으나 휘하 장수들의 도움을 받아 끝내 항우를 무찌르고 천하를 손에 넣었다. 코는 높고 안면은 길어서 얼굴 모습이 용과 같았다. 멋있는 수염을 길렀으며 허벅지 안쪽에는 일흔두 개의 점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을 잘 부리는 용인술의 대가로 유명하다. 다른 시로는 「홍곡가(鴻鵠歌)」가 남아 있다.

2) 大風起兮雲飛揚 : 이 구절은 진나라 말 천하의 영웅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난 것을 가리킨다는 설과 큰 바람[大風]은 유방을, 구름[雲]은 뭇 군웅들로서 유방이 일어서니 뭇 군웅들이 흩어져 난이 평정되었음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 첫 번째 설을 많이 따른다.

3) 兮 : 「초사(楚辭)」에 자주 나타나는 어조사. 특별한 의미는 없고 가락을 정돈하는 역할을 한다. 2구와 3구의 兮를 무시하면 칠언시(七言詩)로도 읽을 수 있다.

4) 威 : 위엄.

5) 海內 : 천하. ‘四海’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6) 故鄕 : 유방의 고향인 패(沛)를 가리킨다.

7) 安 : 어디. 장소를 나타내는 말.

8) 猛士 : 용맹한 병사.

9) 四方 : 사방의 나라. 즉 천하.



2009년 일본 여행 때 서점에서 이시카와 다다히사(石川忠久)의 『한시감상사전(漢詩鑑賞事典)』(講談社, 2009)을 구입했다. 『시경(詩經)』에서부터 노신(魯迅)에 이르는 중국 한시들 중 명편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국내에도 이와 비슷한 책이 여러 권 나와 있지만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해설과 감상이 돋보였다. 한문과 일본어 실력이 모두 딸리지만 곁에 두고 때때로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큰 바람의 노래」는 「초사(楚辭)」풍의 시로서 항우의 「해하의 노래[垓下歌]」와 여러 모로 대비되는 시이다. 이 작품은 유방이 경포(黥布)의 난을 평정하고 수도인 장안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고향이 패현에 들렀을 때 지은 것이다. 『문선(文選)』에 따르면, 이 시를 지을 때 유방은 행궁에 커다란 잔칫상을 벌여 놓고 예전에 알던 이들을 불러들인 후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놀았다. 또한 패현의 젊은이 백이십 명을 선발한 후 몸소 축(筑, 거문고 비슷한 악기)을 뜯으면서 「큰 바람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고는 명령을 내려 젊은이들에게 이 노래를 연습해 부르게 한 후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일어나서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미어지면서 찢어질 듯하여 수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렇듯 이 노래에는 천하를 평정하고 고향으로 개선한 자신의 업적을 뿌듯해 하는 마음(1, 2구)과 앞으로 이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3구)이 교차하면서 풍부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아울러 고향의 젊은이들에게 용맹한 군사가 되어 나라를 지켜 줄 것을 부탁하려는 뜻도 숨어 있다. 천하를 통일한 장부의 기개와 함께 그의 섬세한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시이다. 


* 이 시는 새로 옮긴 것은 아니고 예전 블로그에 있던 것이다. 틈날 때마다 조금씩 이쪽으로 옮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