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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한시

[한시 읽기] 항우(項羽)의 해하가(垓下歌)

垓下歌

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騅不逝

騅不逝兮可奈何

虞兮虞兮奈若何


해하(垓下)의 노래

항우(項羽)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한데

시세가 이롭지 않으니 추(騅)가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할 것인가.

우(虞)여, 우(虞)여, 너를 어찌할 것인가.




1) 항우(기원전 232년~기원전 202년) : 성은 항(項)이고 이름은 적(籍)이며 자는 우(羽)이다. 임회군(臨淮郡) 하상현(下相縣, 지금의 장쑤 성 수첸 시)에서 태어났다. 항씨는 대대로 초나라의 장군 가문이었다. 항우는 작은아버지 항량(項梁)과 함께 군대를 일으켰으며, 항량이 죽은 후에 진나라 정벌군의 총수로서 활약했다. 마침내 진나라를 쓰러뜨린 후 ‘서초(西楚)의 패왕(覇王)’을 칭하면서 제후들을 휘어잡았는데, 이때가 약관 스물일곱 살 때였다. 그 후 유방과 천하를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는데, 군사적인 우위와 몇 차례에 걸친 압도적인 승리에도 불구하고 유방의 교묘한 계략에 말려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서른한 살 때였다. 소년 시절에 항우는 “글은 이름과 성을 쓸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하면서 학문을 익히는 대신에 오직 병법에만 흥미를 보였다. 그러나 병법도 대략의 요령을 이해하자 그 이상 배우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키는 여덟 자가 넘고 힘은 솥을 들어 올릴 수 있었으며 재주와 기량은 남들을 뛰어넘었다.”라는 천부적인 소질을 충분히 단련하여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 항우의 비극이 있다.

2) 해하(垓下) : 지금의 안후이 성 링비 현 동남쪽에 있는 강변.

3) 역발산(力拔山) : 산을 뽑아 버릴 만큼 강력한 힘.

4) 기개세(氣蓋世) : 세상을 완전히 덮을 만한 기운. 의기가 높음을 비유한 말.

5) 추(騅) : 검푸른 털에 흰 털이 섞인 말. 여기서는 항우의 말을 가리킨다.

6) 서(逝) : 왕(往), 즉 나아간다는 뜻이다.

7) 가내하(可奈何) : 어찌할 것인가. 어쩔 수 없다는 반어적 표현.

8) 우(虞) : 항우의 후궁 우 미인(虞美人)을 말한다.

9) 약(若) : 여(汝), 즉 ‘너’라는 뜻이다.



초사체로 씌어진 이 시는 ‘헤(兮)’가 반복되면서 아름다운 리듬을 만들고, 반어적인 표현을 중첩해서 영웅이 처한 비극적 상황을 강조하고 있다. 이시카와 다다히사에 따르면, 항우와 유방의 대결은 젊음과 노련함, 가문이 좋은 도련님과 출신 성분조차 알 수 없는 두목의 싸움이었다. 도련님은 때때로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커다란 승리를 여러 차례나 거두었지만 지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결코 사람을 믿지 않았다. 두목은 퇴각하는 도중에 달리는 마차에서 친자식을 발로 차서 내던질 만큼 치욕스러운 일도 겪었지만 참고 견디면서 인재들을 모아들여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천하의 형세는 갈수록 유방 쪽으로 기울었다. 유방의 노련한 솜씨에 몰려 해하까지 쫓겨 온 항우는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 노래[四面楚歌]를 듣고는 마침내 패배를 예감하고 좌절해 버린다. 

「해하의 노래」는 한 번도 커다란 실패를 겪어 보지 못한 도련님의 비참한 마음을 처절한 어조로 드러내고 있다. 첫 구절은 타고난 힘과 기운으로 천하를 질주했던 화려한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두 번째 구절은 갑자기 우리를 비극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다. “시세가 이롭지 않으니”라는 구절이 표현하는 도련님의 좌절은 어딘가 철부지 같은 느낌, 즉 현재의 어두운 상황을 모두 하늘의 탓으로 돌리는 듯한 원망과 체념이 서려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첫 구와 둘째 구 사이의 감정적 격차는 더욱 커져 듣는 이에게 롤러코스터를 타고 천국에서 지옥으로 직각으로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 끔찍한 좌절을 오히려 부채질하는 것이 “추가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항우의 애마인 추는 그때까지 모든 전장에서 늘 항우의 마음을 먼저 읽고 바람처럼 달려 나가서 적을 무찌르는 데 앞장섰으리라. 그런데 그 용감했던 추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희대의 영웅이었지만 동시에 한갓 도련님에 지나지 않았던 항우는 완벽하게 좌절해 버린다. 운명에 의해 완벽하게 버림받은 것이다. 두목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조차 다시 기어오를 수 있었겠지만, 좌절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몰랐던 항우는 꺾인 무릎을 곧 죽음이라고 여겼으리라. 그리하여 그는 체념한다.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구나.” 추가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면서 영웅은 자신을 절망의 끝없이 깊은 바닥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영웅은 세상의 마지막 남은 인연인 우미인을 향하여 “우여, 우여, 너를 어찌할 것인가.”라고 울부짖으며 장엄한 비극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운명이 강요하는 이 압도적인 비극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을 자가 그 뉘겠는가.


* 이 시는 새로 옮긴 것은 아니고 예전 블로그에 있던 것이다. 틈날 때마다 조금씩 이쪽으로 옮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