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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후한서

후한서를 번역해 책으로 내다




오래전부터 조금씩 번역해 왔던 『후한서』(새물결, 2014)가 드디어 책으로 나왔다. 본기만 번역해 출판했지만 국내 초역이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역사 전공자도 아니고 한문 실력도 딸리는 아마추어의 작업이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조형준 선배의 호의 덕분이다. 

늘 남의 책만 만들다가 내 책이 편집의 대상이 되고 책으로까지 출판된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라서 작업 중에 계속 마음이 설레었다. 그저께 처음으로 책을 받고, 가벼운 출판 기념 술자리를 가졌다.

어제 늦게 집에 와서 내내 잠들지 못했다. 망오십을 앞두고 책을 한 권 펴내게 된 것이 나로서는 더더욱 뜻 깊다. 삶의 새로운 단계를 조심스럽게 열어 둔 느낌이다. 

아래에 이 일과 관련해 두 가지만 먼저 밝혀 두고 싶다. 

책이 출간된 후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몇 해 전 돌아가신 선친이다. 어릴 때 선친께서 "집안에 문자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라는 말씀과 함께 명심보감을 받아 읽고 외던 기억이 난다. 글자를 한 자 한 자 익히고, 문장으로 이어 보고, 딸린 번역문을 함께 외웠다. 어린 마음에 그 일이 그토록 싫었고 금세 실증을 내어 꾀를 부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마음을 붙잡아 준 선친의 엄한 질책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이 일도 전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돌아가실 무렵에 문안하러 가면 옥편을 들고 대학 노트에 글자를 옮겨 적곤 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순간 눈앞이 흐려진다. 부모의 진정한 뜻은 가까이는 전혀 알지 못하고 아주 멀리 지나서야 비로소 깨닫는 것이 아닐까.

또 책을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펴내지 않은 것은, 이 번역이 전문성을 담보하기 힘든 아마추어적 작업의 결과라서라기보다는 책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공공성을 담보하고 싶었던 알량한 마음 탓이다. 책이란 주관의 산물이 아니라 상호주관성의 산물이라는 것이 내 오랜 믿음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함께 대화하고 고민할 편집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내의 후배들에게 그 일을 맡길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선배가 편다고나 할까. 어쨌든 새물결의 조형준 형은 이런 면에서 좋은 편집자이자 선배로서 격려와 질정을 통해 끊임없이 나를 이끌어 주었다. 이 도움 없이는 아마 이만한 책이 되기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고마움을 표한다.

아울러 번역 과정에서 있었을 크고 작은 잘못들을 이곳에서 토론하여 책을 개선해 나갔으면 한다. 혹여 독자들의 많은 질정을  바란다. 아래에 역자 서문을 옮긴다. 이왕에 출판되었으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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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엽의 후한서는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진수의 삼국지와 함께 전공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이라도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반드시 읽어 보고 싶어 하는 책이다. 이 책의 우리말 번역이 부분적으로만 시도되었을 뿐 한 번도 완역되지 않은 사실을 안 것은 진수의 삼국지를 우리말로 옮긴 김원중 교수의 정사 삼국지(민음사, 2007)가 출간된 후였다.

물론 이 시기의 중국사에 대해 관심을 품은 많은 이가 항용 그러하듯이, 옮긴이 역시 그 이전에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를 김팔봉, 박종화, 정비석, 이문열 등 판본을 바꿔 가면서 여러 차례 읽은 경험이 있었다. 그러면서 연의에 펼쳐진 세계를 좀 더 깊이 있게 탐구해 보려고 삼국 시대와 관련한 교양서와 학술서 등을 뒤적거리면서 공부에 열을 올린 적도 있었으며, 그 와중에 이 시기를 다룬 국내외 학자들의 학술 논문들도 제법 탐독한 바 있었다.

어쨌든 정사 삼국지를 때때로 원문을 참조해 가면서 읽다가 문득 이 시기를 다룬 또 다른 역사서인 범엽의 후한서를 떠올리고는 대조해 읽고 싶어서 우리말 번역본을 찾으려 했으나 인터넷 등에 부분 번역본이 여기저기 나돌 뿐 출판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후한서를 우리말로 옮겨 보려고 마음먹은 것은 전혀 아니다. 한참이나 모자란 한문 실력과 부족한 역사적 지식으로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다만, 당시 블로그에 취미로 중국 고전에 관한 글들을 가끔씩 올리곤 했는데, 정사 삼국지를 읽다가 문득 그 시대의 주요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알고 싶어서 시기가 겹치는 후한서본기本紀 중 마지막 세 황제의 기를 한 줄씩 우리말로 옮기기 시작한 게 이 험난한 과정의 시작이 되었다. 이 시대에 대한 사전 공부도 전혀 없이 무작정 환제기桓帝紀, 영제기靈帝紀, 헌제기獻帝紀를 옮기고 난 후 외척과 환관의 어마어마한 부패와 피비린내 나는 정쟁으로 얼룩진 끝에 끝내 민중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고 마침내 자신마저 파괴해 버린 이 엉망인 나라가 언제부터 망가져 갔는지를 알고 싶어서 한 황제씩 거슬러 올라가면서 주말 및 휴일과,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 짧은 시간을 이용해 몇 년에 걸쳐 우리말로 옮겼다.

독자들도 이미 짐작하겠지만, 솔직히 말해 이 책은 전적으로 아마추어적 작업의 결과물이다. 좋은 번역의 필수 조건인 언어(한문)와 관련 지식(중국사) 모두가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 손으로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중국사 전문가에 의한 제대로 된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그저 갈증을 달래는 용도로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아마추어로서는 잘못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다.

번역에 들어간 후에는 후한과 삼국을 다룬 우리말 단행본과 논문을 가능한 한 많이 찾아 읽고 지식을 보완했으며, 뜻 파악이 어려운 부분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번역본을 참고하고 지인들에게 물어서 해답을 찾아나갔다. 그러나 그 일은 동시에 워낙에 옮기기 까다로운 부분이 많아 책을 온전하게 만들기는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아 간 과정이기도 했다. 이 책의 번역을 두고 혹시 있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잘못들은 전적으로 옮긴이 탓이다. 그에 대한 어떠한 질정도 고맙게 받아들이려 한다.

한편, 아마추어적 작업의 결과로 블로그에나 올려두려 했던 이 번역본을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한편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서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뜻에서이다. 동서고금의 좋은 책을 우리말로 옮겨 한국어 자체의 사유 영역을 넓힘으로써 일반의 지식 교양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 한, 인문과학의 토대는 결코 높아질 수 없으며, 인문학의 위기 역시 극복하기 힘들다. 후한서는 옛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읽었던 중요한 고전의 하나이며, ‘일당백’ ‘오리무중등 수많은 고사성어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 첫머리를 옮겨 펴낸 이 책을 통해 학계는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이 시기의 역사와 삶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그것이 오늘의 삶에 거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이 나온다고 생각하니 시름을 하나 내려놓은 느낌이다. 기회가 닿으면 후한서본기에 이어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열전列傳을 옮겨 볼 생각이다. 번역 원고를 읽고 몇 군데 오류를 잡아 준 학형學兄 공원국에게 감사한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만한 책이 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원고 이야기를 듣고 기꺼이 출판을 허락해 준 새물결출판사의 조형준 주간께도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가 보내 준 진심 어린 격려가 없었다면 애초에 용기를 잃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미없는 남자와 같이 살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고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챙기는 아내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표한다. 그 애정 아래에서만 어떤 일이든 가능할 수 있음을 안다. 이 지면을 빌려 아내한테 입으로 하지 못했던 말을 손으로라도 하고 싶다.

20143

불암산 아래 당현천 옆에서

장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