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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후한서

민음사 장은수 대표, 후한서 본기 완역(연합뉴스)

이번에 후한서』를 출판하고 나서 주요 일간지 여기저기에 기사가 났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두 감사드립니다. 하나씩 이 블로그에 옮겨서 차례대로 소개합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이듬해(221)에 유비가 촉(蜀)에서 황제라고 칭하고, 손권 역시 오(吳)에서 스스로 왕이라 칭하니 이로써 천하는 마침내 세 갈래가 되었다."(明年, 劉備稱帝于蜀, 孫權亦自王於吳, 於是天下遂三分矣)

이보다 한 해 전에 유비, 손권과 더불어 이미 천하를 삼분한 위왕(魏王) 조조가 죽었다. 

그 자신을 사기(史記)를 남긴 사마천에 비기면서 한서(漢書)를 쓴 반고를 뛰어넘는 역사서를 쓰겠다고 한 남북조시대 유송(劉宋) 왕조의 역사가 범엽(范曄·398~445)은 광무제 유수(劉秀)의 봉기와 즉위에서 시작하는 후한서(後漢書) 본기를 마지막 황제 헌제(獻帝)에서 마무리하면서 이처럼 간략하지만 함축적인 말로써 삼국시대가 개막했음을 알렸다. 

후한(後漢)이라고 하면 삼국시대 전단계라 해서, 흔히 황건적이 발흥하고 군웅이 할거하는 그 마지막 시대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어느 시대만큼이나 역동성 있는 왕조였다. 후한서는 200년가량 지속한 이 왕조의 역사문화를 집약한 총화다. 

하지만 한서가 그렇듯이 한문 원전이 특히나 난해해 당분간 완역은 엄두를 내기가 힘들다는 말을 듣곤 했다. 

한데 역사학이나 한문학 전공자가 아닌 출판인이 겁 없이 번역에 달려들었다. 

민음사 대표 편집인 장은수(46) 씨.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으로 줄곧 출판과 문학평론에 종사한 그가 후한서 번역에 매달려 그 첫 번째 성과물로 황제 열전인 본기(本紀) 편을 최근에 냈다. 출판사는 그가 지금 몸담은 민음사가 아니고 새물결이다. 

다른 출판사에 내는 이유를 그 자신은 "이 번역이 전문성을 담보하기 힘든 아무추어적 작업의 결과라서기보다는 책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공공성을 담보하고 싶었던 알량한 마음 탓"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다른 출판사 편집자를 통해 그 자신의 성과를 검증받고 싶었다는 뜻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좀 찜찜한 구석은 없지 않은 듯하다. 

이번 번역본 서문에서 그는 "솔직히 말해 이 책은 전적으로 아마추어적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하면서 "좋은 번역의 필수 조건인 언어(한문)와 관련 지식(중국사) 모두가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 손으로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중에 중국사 전문가에 의한 제대로 된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그저 갈증을 달래는 용도로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가 후한서에 관심을 지니게 된 계기는 이 분야 여타 일반독자가 그렇듯이 삼국지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음을 그 자신도 부인하지는 않는다. 

후한서는 전체 100권. 이 중에서 범엽이 한창 집필 중에 죽는 바람에 그 자신이 완성한 것은 본기 10권과 열전 80권이며, 제도사에 해당하는 항목인 지(志)는 범엽이 후한서를 쓸 때 참고한 후한 시대 사마표의 속한서(續漢書) 내용을 나중 사람들이 덧보탠 것이다. 이 중에서 이번에 본기가 나왔으니, 단순 계산으로 후한서는 전체 10분의 1이 나온 셈이다. 

1965년 중국 중화서국(中華書局)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는 그의 이번 번역에서 주목되는 점은 역대 후한서 주석서 중에서도 가장 저명한 당나라 장회태자 이현(李賢)의 주석까지 거의 고스란히 번역했다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번역본을 참고하고, 지인들에게 물어가면서 작업을 한다는 그에게 남은 후한서는 열전과 지. 이 중에서도 열전은 무미건조하고 사실 나열에다 비교적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는 본기와는 달리 범엽 특유의 화려한 문체가 유감없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더 힘든 고난의 행군이 될지도 모른다. 712쪽, 3만5천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