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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헤밍웨이 단편선 1을 완독하다

연휴 마지막 날 겸 일요일이라 하루 종일 읽고 썼다. 헤밍웨이 단편선 1을 모두 읽고, 헤밍웨이 단편선 2(김욱동 옮김, 민음사, 2013)를 꺼내들었다. 읽어갈수록 매력적이다. 연이은 전쟁으로 길을 잃어버린 세대의 깊은 공허를 이렇게 침착하게 그려 낸 작품을 읽는 것은 소설 미학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요즈음 나에게는 거의 축복이나 다름없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여전히 좋았지만 헤밍웨이 단편선 1에서 유독 마음에 드는 작품은 인디언 부락, 살인자들, 깨끗하고 밝은 곳, 그리고 무엇보다도 병사의 집이었다. 오직 헤밍웨이 특유의 가공할 절제력을 통해서만 드러낼 수 있는 인생의 비의가 빛나는 작품들이다. 거의 반윤리적이라고 할 정도로, 무감각한 행동을 통해 전쟁터에서 얻어 온 거대한 허무와 맞서는 한 귀환 병사의 일상을 다룬 병사의 집은 아마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과 맞먹는 작품으로 보인다.

 

 

(1) 헤밍웨이, 헤밍웨이 단편선 1(김욱동 옮김, 민음사, 2013) 중에서



감상적인 사람은 남한테 수없이 배신을 당하는 법이다.(아버지들과 아들들) (50)

()으로 말하자면, 앞으로 갖게 될 모든 장비는 미리 갖추었고, 알아야 할 것은 굳이 남의 충고 없이도 스스로 배우게 되는 법이다. 이런 것은 우리가 어디에 살든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아버지들과 아들들) (51)

그가 그것을 글로 쓴다면 조금은 언짢은 기분을 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지금껏 여러 가지 일을 글로 씀으로써 그것들을 마음에서 쫓아냈던 것이다.(아버지들과 아들들) (53)

병을 자주 새로 따게 되면 주정뱅이가 된다.(사흘 동안의 폭풍) (82)

만약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면 잃게 될 입장에 서선 안 되지. 잃어버릴 입장에 서질 말아야 해.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찾아내야 해.(이국에서) (180) 이 고통스러운 절망. 희망이 없다면 이런 말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예감은 반드시 현실이 된다. 따라서 이 말은 자신의 운명을 아는 자의 절규에 해당한다.

크레브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이야기를 꾸며 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거짓말을 두 번 하고 나니 스스로 전쟁과 전쟁 이야기에 반감을 느꼈다. 거짓말을 한 탓으로 자기가 전쟁에서 겪은 모든 일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병사의 집) (184)

크레브스는 결과라는 것 자체가 모두 싫었다. 두 번 다시 어떤 결과건 맛보고 싶지 않았다. 결과 없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병사의 집) (187) 이 고통스러운 진술. 내가 만난 문장 중 최고의 문장으로 꼽을 만하다. 어떻게 한 사내의 절망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여자에 대해 생각해야 비로소 여자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군대에서 그것을 배웠다. 이르건 늦건 어차피 여자란 손에 넣게 되는 법이다. 한 여자에게 마음이 쏠리면 언제든 손에 넣게 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다. 조만간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그는 군대에서 그것을 배웠다.(병사의 집) (188)그는 군대에서 그것을 배웠다.”라는 문장의 반복은 기이한 리듬과 함께 어떤 끔찍한 것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나는 늦게까지 카페에 남고 싶어. 잠들고 싶어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밤에 불빛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말이야. (중략) 매일 밤 가게를 닫을 때마다 어쩐지 망설이게 돼. 카페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말이지.(깨끗하고 밝은 곳) (202)

그것은 모두 허무였고, 인간도 한낱 허무에 지나지 않거든. 모든 것이 오직 허무뿐, 필요한 것은 밝은 불빛과 어떤 종류의 깨끗함과 질서야. 허무 속에 살면서 전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지. 모든 것은 나다’()이면서 나다이고, 나다나다이면서 나다일 뿐이지.(깨끗하고 밝은 곳) (203~204)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은 죽지 않는 법이에요. (킬리만자로의 표범) (249)

난 뭐든 남겨 두고 가긴 싫어. 그 무엇도 남기고 가기 싫다고.(킬리만자로의 표범) (259)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안일만을 추구하며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는 그런 인간이 되어 보낸 하루하루의 생활은 그의 재능을 우둔하게 만들었고 집필에 대한 의욕마저 약화시켰다. 그래서 결국 그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260)

우리는 모두 우리가 하는 일에 맞게 태어나야 하는 거야. 어떤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 가든 거기에는 각자의 재능이 있는 거지. (킬리만자로의 표범) (262)

그는 너무 많이 사랑했고,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고,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마모시켜 버렸던 것이다.(킬리만자로의 표범) (268)

망원경의 초점을 맞춰 넓은 시야를 압축하듯이, 올바로 다룰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한 단락 속에 압축할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이제는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274) 이것이 헤밍웨이 문학론의 핵심이다. 언젠가 헤밍웨이의 작법을 다룬 글을 모아 책으로 내고 싶다.

병원에서는 농담을 포함하여 모든 일이 훨씬 단순해지는 법이다.(도박사와 수녀와 라디오) (299)

혁명은 아편이 아니지. (중략) 혁명은 배설 행위야. 압제의 힘이 아니고는 오래 끌 수 없는 도취감에 불과하지. 아편이란 혁명의 앞과 그 뒤에 사용하는 것이거든.(도박사와 수녀와 라디오) (322)

 

 

(2)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박철 옮김, 시공사, 2004) 중에서

 

군대라는 곳은 구두쇠는 물건을 아끼지 않는 이로, 아끼지 않는 이는 재산을 탕진하는 방탕자로 만들어 버리는 학교 같은 곳입니다.(537)

속담이란 원래 오랜 세월 동안 쌓인 경험과 신중함에서 우러난 간결한 격언으로 모두 진실하다. (538)

 

 

(3) 로버트 콜스, 하버드 문학 강의(정해영 옮김, 이순, 2012) 중에서


 

그것은 도덕적 사고요, 영적이고 심리적 사고다. 이런 책들을 읽을 때 여러분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인지적 도구로서 정신뿐 아니라 양심과 심지어 (욕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열망과 동경의 측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57)

병들과 미쳐 돌아가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건강이 결코 아니라 오히려 병이고 미친 것이다.(제임스 에이지) (61)

에릭 에릭슨은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분별 있는 분노이며, 그것이 없다면 치료는 변화하는 역사의 바람 앞에 흔들리는 갈대와 다름없다고 결론 내린다. (61)

이유를 묻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의 몫은 그저 하다가 죽는 것이다.”(테니슨)(64)

반항하는자들, 관습 밖에 서 있는 사람들, 즉흥적으로 창조하는 사람들은 모두 반대와 분노, 비난, 추방 같은 대가를 치러 왔다. (66)

그녀는 프롤레타리아에 속했고, 여기에는 어떤 추상성이 존재한다! 다큐멘터리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제공하지만, 한편 주관성에 빠질 위험도 안고 있다. (중략) 이런 추상성은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를 더 객관적인 입장에 서게 할 수 있다. (78) 상당히 매력적인 통찰이다. 우리는 타자가 아니지만, 타자를 알 수 있다. 그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다. ‘추상성때문이다. 추상이 아니면 아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죄책감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고 다른 사람을 알아야 할 인간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위태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야 할 책임감이다. 날카로운 해부는 일종의 폭력이다. 오웰이나 에이지가 보여 주는 연민과 노력은 우리가 멀리 있는 타인들과 서로 팔짱을 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중략) 그들이 묘사하는 세계의 일부가 되고, 우리를 그 세계 속으로 인도한다. 이러한 교우, 이러한 유대와 화해의 제스처는 그 자체로 고귀하다. (82)

제국은 한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군대에 의해 세워지며, 이를 통해 엄청난 수익이 창출된다. (84)

노동자들은 종종 남들의 학식에 대해 막연한 경외심을 품지만, 막상 교육이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면, 건강한 본능으로 그것을 간파하고 거부한다. (중략) 나는 육체노동자가 꾸준히 일하고 보수를 잘 받기만 한다면…… 교육받은 사람들보다 행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감히 말하겠다.(조지 오웰) (88) 요즈음 세태를 보면 정말 공감이 가는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히 일하고 보수를 잘 받기만 한다면이라는 말이겠지.

 

 

(4) 에즈라 보걸, 덩샤오핑 평전(심규호, 유소영 옮김, 민음사, 2014) 중에서


 

기본적인 요점은 자신이 낙후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행했던 많은 방식은 모두 적절치 않은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바꿔야 한다.”(덩샤오핑) (305)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상세하게 조사하며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하시오.(덩샤오핑) (308)

작고 작은 불씨가 넓은 들판을 태울 수 있다.(마오쩌둥) (315)

대국(大局)을 먼저 본 다음에 국부(局部)를 살피고, 대도리(大道理)를 먼저 말한 다음에 소도리(小道理)를 말하자.(덩샤오핑) (333)

원고는 간단하면서도 분명해야 하며, 문장을 짧고 간결하게 하여 좀 더 강력한 느낌이 들도록 하라.(덩샤오핑) (334)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돌아본다.(덩샤오핑) (334)

오늘 나는 한 가지 문제를 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사상을 해방하고 머리를 써서 사실로부터 올바른 길을 찾고(實事求是) 일치단결하여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335) 그리고 이 연설로부터 중국의 현대화가 시작되었다.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