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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돈키호테를 완독하고 서평을 쓰다

 

어찌 시간이 가는지 모르겠다. 지난주와 이번 주에 걸쳐서 세계의 문학신인상 심사가 두 차례 있었고, 그날마다 술자리가 있었다. 새로운 시인과 소설가를 만나는 건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다. 또 오랜만에 친구들과 문단 후배들을 만나서 더 좋았다. 지난 금요일에는 월요일 부서장 회의 준비를 하느라 나올 책들을 살피고 시장을 들여다보느라 저녁 시간을 온통 보냈다. 책과 출판의 세계는 여전히 뜨겁고 읽고 싶은 책들은 항상 쏟아져 나오지만, 그 열기는 좀처럼 확산되지 못하는 듯하다. 동맥경화일까? 어딘가에서 흐름이 막혀서 역류가 계속 일어나는 느낌이다. 주말에는 읽던 책을 마무리하고 틈틈이 새로운 책을 고르느라고 보냈다. 하버드 문학 강의(이순, 2012)돈키호테(시공사, 2004)를 드디어 완독했다.

곧 새로 나올 소설집의 발문을 써 주기로 한 박형서의 기존 소설을 책꽂이에서 모두 찾아서 꺼내 놓고 일단 자정의 픽션(문학과지성사, 2006)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작품 논쟁의 기술은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그 재기 발랄한 입담이 아니라 전락에 대한 탐구가 마음에 들어왔다. 이디스 그로스먼의 번역 예찬(공진호 옮김, 현암사, 2014)는 짧고 강렬해 좋았고, 그런 만큼 상당히 아쉬웠다. 월요일 출근길에 손에 쥐었다가 내쳐 읽어서 화요일 저녁 퇴근길에 완독했다. 최근 이처럼 빨리 읽은 책도 없었고, 글쓴이에게 이처럼 끌린 책도 드물었다.

월요일에는 김탁환의 혁명 ―― 광활한 인간 정도전(2, 민음사, 2014)가 회사에서 나왔다. 오래전에 같이 소설 조선왕조실록을 써 보자고 기획한 책인데, 드디어 첫 결실을 맺었다. 상당히 장중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쓰인 책으로, 그 주제의 치열함이나 다양한 장르를 복합적으로 실험한 문예미학의 측면에서 한국 역사소설의 문학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으로 감히 자부할 수 있다. 왕의 혁명과 신하의 혁명과 백성의 혁명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이성계, 정도전, 정몽주가 꿈꾸었던 나라와 이방원, 조준이 꿈꾸었던 나라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이 진지한 물음을 배경으로 이성계가 낙마하는 장면에서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무참히 피살되는 장면까지 열여드레가 치열하게 전개된다. 수요일 저녁에 군주의 조건(민음사, 2013)을 쓴 젊은 정치학자 김준태 등과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조촐하게 출간을 기념했다. 원고와 교정지로 이미 두 차례나 읽었지만, 이번 주말에 다시 읽어 볼 예정이다.

허미경 기자의 청탁으로 한겨레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를 세 차례 쓰기로 했다. 자사 책 한 권과 타사 책 두 권을 골라 쓰는 것이다. 화요일 저녁에는 이 원고를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이 책 저 책 들춰 보면서 고심하다가 막 다시 읽은 돈키호테를 선택해 썼는데, 8.6매라는 소수점에 시달리면서 시간을 한량없이 보냈다. 억울한 것은 원고를 보낸 후 말미에 필자 소개가 들어간다면서 다시 0.4매를 줄여달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급히 줄이고 손보느라 점심시간을 다시 날려 먹었다. 통재라!!!

목요일부터 프랑수아 줄리앙의 무미예찬(최애리 옮김, 산책자, 2010)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중국학자로서 중국 문화의 중심 개념 중 하나인 ()’의 의미를 탐구한 수작이다.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작년 말 김우창 선생과 대화 중 뛰어난 학자라고 말씀한 것이 떠올라서 드디어 읽게 된 것이다. 전체 열다섯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매일 세 장씩 읽어서 다음 주 초에는 완독할 예정이다.

오늘 새벽 침대에서 문득 일어나 이런저런 생각을 즐기다가 갑자기 오른쪽 다리에 쥐가 심하게 났다. 아내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서 서성거렸는데, 기어이 풀리지 않아서 걸음이 불편해 하루 회사를 쉬었다. 심경호 교수의 동양고전 강의 ―― 논어(민음사, 2013)를 매일 아침 다섯 강씩 읽고, 정민의 우리 한시 삼백 수(김영사, 2014)를 세 편씩 읽으면서 외어 읊조리고, 저녁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 틈나는 대로 괴테 시 전집(전영애 옮김, 2009)를 읽는다. 이 책들은 끊어져 완결되어 있으므로 조금씩 나누어 읽어도 항상 즐겁다. 여기에 회사에서 전자책 싱글로 나오는 매일 읽는 우리 옛글(정민, 안대회, 이종묵 옮김, 민음사, 2014)을 한 편씩 읽어 갈 때에는 삶에 큰 활력이 돌면서 신선조차 부럽지 않다. 이대로 영원히 살고 싶다.

 

 

(1)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박철 옮김, 시공사, 2004) 중에서

 

엉터리 이야기를 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작품을 만들 줄 모르는 작가들에게 문제가 있다. (668)

툴리우스에 따르면 연극이라는 것은 인간 삶의 거울이며 관습의 표본이며 진실의 상()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상연되고 있는 것들은 엉터리의 거울이고 우둔함의 표본이며 방탕함의 상입니다. (668)

완벽한 이야기들도 몇 편 출간되어 유쾌하고 값진 문장들로 우리말을 풍요롭게 하고, 새로 나온 책들의 눈부신 빛으로 낡은 책들을 어둡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며, 한가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바쁜 이들에게도 건전한 오락이 되어 줄 것입니다. 항상 활시위를 당겨놓은 상태로는 있을 수 없고, 또한 인간의 성질도 뭔가 적합한 오락 없이는 지탱해 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671)

책들을 읽으시오. 그러면 귀공이 울적해 있을 때 그것을 씻어 줄 것이고, 마음이 언짢을 때에는 기분을 북돋아 줄 것이오. (688)

가난한 자는 더할 나위 없는 극도의 성의를 가지고 있더라도, 누구에게도 그 관대함의 미덕을 보여줄 자격이 없소. 그러니 단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감사는, 실천 없는 신념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죽은 것과 같단 말이오. (689)

하느님은 신중한 자의 악한 의도는 두둔하지 않으시지만, 단순 무식한 자의 선한 의도에는 늘 도움의 손을 내미시는 거요. (690)

산은 학자를 키우고, 목자의 오두막은 철학자를 담고 있다. (692)

한 처녀를 지키는 데에는 자물쇠보다는 본인의 신중한 태도가 가장 믿을 만하다. (695)

오래 사셔야 해요. 이 세상에서 인간이 행하는 가장 큰 광기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거예요. (723)

 

 

(2) 로버트 콜스, 하버드 문학 강의(정해영 옮김, 이순, 2012) 중에서

 

이 이름 없는 젊은이, 즉 보이지 않는 인간은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교과서나 시험, 성적을 통해 배우지 않았다. (221)

모든 보이지 않는 인간 앞에는 보지 못하는 자가 있다. (227)

보이지 않는 인간은 실존주의적 인간, 20세기 중반의 인간, 많은 것들로부터 단절된 인간, 보기를 갈망하고 빛을 원하는 인간이다. (229)

존재의 신비는 항상 평범한 삶의 결들을 통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가들이 평범한 삶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플래너리 오커너) (239)

우리가 남들을 통해 우리를 볼 수 있도록 거울을 들어 주는 행위다. (248) 이는 문학에 대한 가장 심오한 정의 중 하나이다. 독자의 영혼 안에 타자의 혀를 밀어 넣는 것. 문학이 부르주아 엘리트에 의해 점령되어 장악되고 나면, 타자에 대한 탐구는 사라지고 자신에 대한 구역질나고 지루한 탐구만이 계속된다. 거울을 들어 자신만을 보는 것이다.

학교는 인생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우리는 꿈을 꾸지만, 인생에서 우리는 적응해야 하죠. 그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가 되고 싶은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이냐치오 실로네) (268)

평소에 우리는 늘 같은 도로, 같은 사람들을 지나치면서도, 철저하게 익명의 존재들이며 어느 장소에도 속해 있지 않다. (289)

헤겔은 평범한 하루를 살아 내는 방법을 제외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인간적이 되는 방법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배운다. (291)

우리의 눈은 우리를 위해 타인들 속에 존재하는 신을 향해야 한다. 그들의 삶은 우리 삶의 큰 부분이다. (291)

젊은이들은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걱정하지만, 우리가 알고 경험하고 가슴에 간직한 사랑은 우리 모두를 위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293)

언어는 존재의 핵심이며, 우리가 공유된 자아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언어를 통해서이다.(295)

너는 살아라. 나는 죽겠다. 그러나 나는 명예롭게 죽겠다. 나는 도덕적 인간으로 죽겠다. 품위 있게 죽겠다. 내가 어떻게 죽느냐는 나뿐 아니라 이제 너에게도 유일한 희망일 것이다. (303)

아무리 빤해 보여도, 삶의 단편들은 일정하게 짜인 거미줄의 표본이 아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수 있고, 열정적인 시작은 내리막이 따를 수 있고, 숨어 있던 힘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회를 찾을 수 있다. 과거의 실수는 엄청난 만회를 촉구할 수 있다. (조지 엘리엇) (331)

서로의 삶이 조금 덜 힘들도록 도와주는 것 외에 우리가 살아갈 목적은 무엇인가요? (조지 엘리엇) (332)

우리가 차츰 그들을 흡수하고 그들이 능숙하게 조준하여 불러일으키는 도덕적 불씨를 흡수하게 되면서, 그들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된다. 그것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것, 그리고 우리의 독서와 삶 속에서 존중하고 성찰하고, 무엇보다 반응해야 할 것이다. (333~334)

서로 사랑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살지 못할지니. (W. H. 오든) (350)

 

 

(3) 이디스 그로스먼의 번역 예찬(공진호 옮김, 현암사, 2014) 중에서

 

진지한 전업 번역가라면 (중략)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중략) 번역가가 하는 일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글을 쓴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고쳐 쓰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7)

번역은 어떤 문학 작품에 대해서든 더할 나위 없이 깊은 독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19)

번역가의 경험에서 독특한 점은, 번역가는 원문에 마음의 귀를 기울여 원작자의 음성을 듣는 청자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번역문, 즉 제2의 원문을 들려주는 화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번역가가 들은 것을 다른 언어로 재생하는 것입니다. (20)

번역은 문학을 통해 다른 사회, 다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탐구하는 능력을 키워 줍니다.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바꿔 그것을 음미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잠시나마 우리 자신의 삶, 우리 자신의 편견과 착각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한하고 형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세계에, 우리 의식에 폭과 깊이를 더해 줍니다. (24)

괴테는 한 나라의 문학이 다른 나라의 문학에서 받을 수 있는 영향과 기여를 막는다면, 결국 그 나라의 문학은 스스로 고갈되고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의 질은 낮아지기 마련이라고 믿었습니다. (33)

문학이 있는 곳에 번역이 있습니다. 문학과 번역은 허리가 붙은 샴쌍둥이와 같아 절대로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한쪽에 어떤 변화가 생기면 다른 한쪽에도 영향이 미칩니다. (44)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2월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