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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30일(목)


 

명절 첫 날이라 오늘을 하루 종일 읽던 책들을 내키는 대로 읽었다. 방 청소를 하고 읽으려고 쌓아 둔 책들을 정리했다. 읽는 속도가 책이 쌓이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서 방이 점점 비좁아지는 중이다. 조만간 과감하게 읽지 않는 책을 버려야 할 때가 올 것 같다.

지셴린의 인생(이선아 옮김, 멜론, 2010)을 완독했다. 사유의 대가답지 않은 가벼운 에세이인데, 오히려 그 소박함과 평범함으로 사람을 끄는 데가 있다. 내용이 일부 중복되는 것은 대부분이 신문 등에 연재된 짧은 글을 모은 탓이다. 이 점은 대단히 아쉬웠다. 중국 지식인들의 장점이라면 자신의 글에 춘추 전국에서 명청에 이르는 명문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함으로써 그 논지에 품격을 불어넣고 깊이를 더한다는 점이다. 지셴린이 자주 인용하는 도연명이나 조조의 시, 소동파의 사와 문 등은 우리의 교양이기도 하건만, 나로서는 글에서 전혀 쓰지 못하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한편, 몽테뉴에 대한 지셴린의 경모(敬慕)는 흥미로웠다. 조만간 몽테뉴의 책이 나오면 본격적으로 읽어 보고 싶어졌다.

 

 

(1) 지셴린(季羨林), 인생(이선아 옮김, 멜론, 2010) 중에서



강 위 맑은 바람과 산골짝의 밝은 달/ 귀로 얻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만나면 그림이 되는구나./ 가지고자 해도 말릴 사람 없고 쓰고자 해도 다할 날 없으니/ 조물주의 한없는 보물을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리세.(소동파, 적벽부에서) (166) 원문은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樂이다.

문득 한 폭의 대련 글귀가 기억난다. “세상사를 꿰뚫은 모든 것이 학문이며, 인간사에 밝은 것이 문장이다.” 사상가야말로 세상사에 통달하고 인간사에 밝은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중략) 사상가의 말은 정직하고 부드러워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듣고 나면 눈앞이 밝아지고 마음속의 의문들이 얼음 녹듯 풀어지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177) 이것이 바로 노학자 지셴린이 이 책에서 진정으로 추구하고 싶었던 바가 아닐까.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말로 세상사와 인간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어쩌면 이야말로 대가의 경지일지 모른다.

나는 이 엄동설한에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영국 시인 셸리가 노래한 이미 겨울인데 봄이 멀겠는가라는 구절을 믿는다.(181)

창밖은 이미 한겨울이다. 여름 햇살이 비추던 연꽃의 얼마 남지 않은 마른 잎이 찬바람에 흔들리고, 목련나무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추위를 견디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연꽃 밑 진흙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리고 목련나무의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봄의 꿈을 알고 있다. 그 꿈들은 지금 잠시 쉬고 있을 뿐 여전히 살아 있다. 힘을 모아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는 해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198)

 

 

(2) 에즈라 보걸, 덩샤오핑 평전(심규호, 유소영 옮김, 민음사, 2014) 중에서


섹스는 처음 몇 번 사람을 미혹하지만, 지속적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은 권력이다.(장칭) (253)

사인방의 결말은 한 시대의 종말, 즉 혁명과 계급투쟁으로 세상을 개조하려는 희망이 끝났음을 의미했다.(262)


 

(3) 괴테, 괴테 시 전집(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9) 중에서


내 그대를 사랑하는 건지, 그건 몰라도/ 단 한 번 그대 얼굴을 보기만 해도/ 그대 눈을 들여다보기만 해소/ 내 마음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네.(46)

한 번만 눈길을 다오,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러면 나는 충분히 보답받으리니. (49)

밤은 천()의 괴물을 만들고 있었지만/ 내 용기는 백배하였고/ 내 정신은 타는 불 같았다/ 내 온 가슴이 뜨거운 불로 녹아 흘렀다.(50)

자연이여, 그대 영원히 움트는 자연이여!/ 누구든 삶을 즐기도록 만드는구나.(75)


 

(4)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박철 옮김, 시공사, 2004) 중에서

 

음악은 흩어진 마음을 잡아 주고 근심을 덜어 준다. (376)

누구라 하더라도 나는 내 직분에 따라 내가 해야 할 일과 내 양심이 시키는 일을 할 뿐이야. (396) 이 지조, 오로지 타자(기사담 속의 기사)를 모방하는 데에서 시작했지만, 오로지 자기 안에서 타오르는 이 기적적 윤리! 여기를 잘 들여다보면 새로운 윤리학을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편력기사들은 괴로워하는 자나, 쇠사슬에 묶여 있는 자나, 학대받는 자들을 길에서 만나면 그들이 곤경에 빠진 것이 그들의 잘못 때문인지, 혹은 그들의 미덕 때문인지 관여하지도, 가리지도 않는다. 단지 그들의 감정이 아닌 그들의 고통을 보고 빈곤한 사람을 도와주듯 도와주는 것이다. 나는 줄줄이 묶여 슬픔에 찬 사람들을 우연히 마주쳤고, 기사도가 나에게 요구하는 대로 그들에게 실행했을 뿐이다. (404~405)

모든 일에는 입구가 있는 것처럼 훌륭한 출구가 있을 겁니다. (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