姬路城
賴山陽
五疊城樓插晚霞
瓦紋時見刻桐花
兗州曾啟阿瞞業
淮鎭堪與匡胤家
甸服昔時隨臂指
勳藩今日扼喉牙
猶思經略山陰道
北走因州路作叉
히메지성에서
라이 산요
다섯 겹 쌓아 올린 성에 저녁노을 물드니
기와 무늬 때맞추어 동백꽃 핀 듯 보이네.
일찍이 조조는 연주에서 대업을 열었고
조광윤은 회수(淮水) 강변에서 일가를 이루었도다.
예전 제후들은 손가락이 팔을 따르듯 했건만
지금 제후들은 천자의 목을 조르는구나.
산인도(山陰道) 경략할 일을 깊이 생각해 보건대
북으로 갔다가 다시 주(州)의 길을 가로질러야 하리.
1) 히메지성(姬路城) : 일본어로는 히메지조라고 읽는다. 일본 성들은 대부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전란과 화재 등으로 소실되었는데, 히메지성은 유일하게 피해를 겪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달리 백로성(白鷺城)이라고도 하는데, 회를 발라서 희게 빛나는 외벽과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지붕으로 인해 마치 백로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1330년경에 처음으로 축성되었으며, 16세기 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들을 위해 본성에 해당하는 천수각을 지어 주었다. 그 후 160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위 이케다 데루마사(池田輝政)가 다시 보완해 짓기 시작해 1609년에 완성했다.
2) 라이 산요(賴山陽)는 일본 에도 시대 후기의 시인이자 유학자로 1780년 오사카에서 태어나서 1832년 교토에서 죽었다. 유학자 라이 슌수이(賴春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18년 규슈 여행 이후 시인 및 문장가로 활약했다. 『일본 악부(日本樂府)』 『산요유고(山陽遺稿)』 『산요 시초(山陽詩鈔)』 등을 썼다.
3) 성루(城樓) : 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세운 누각.
4) 만하(晚 霞) : 저녁노을.
5) 아만(阿瞞) : 위나라 무제 조조(曹操)의 아명이다. 조조는 연주자사(兗 州刺史)로 있을 때 한나라 헌제(獻帝)를 맞아 들여 명분을 얻은 후에야 비로소 천하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6) 광윤(匡胤) : 송나라 태조 조광윤(趙匡胤)을 가리킨다. 조광윤의 집안은 회하(淮河) 지역에서 대대로 전공을 쌓아 왔으며, 조광윤은 진주(鎭州)에서 요나라가 쳐들어온다는 보고를 올렸을 때 이를 막기 위하여 출동시킨 군대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켜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7) 구복(甸服) : 옛날 황제가 직접 다스리던 지역. 황궁이 있는 곳으로부터 오백 리 안쪽이었다. 경기(京畿)라고도 한다.
8) 비지(臂指) :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가리키는 말. 한나라 가의(賈誼)의 「진정사소(陳政事疏, 치안책)」에 나오는 말이다. 가의는 “천하의 모든 세력들로 하여금 몸이 팔을 부리듯, 팔이 손가락을 부리듯 따르지 않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9) 훈번(勳藩) : 공훈으로 봉토를 받은 제후.
10) 액후아(扼喉牙) : 목을 조른다는 뜻.
11) 산인도(山陰道) : 일본 팔도(八道)의 하나. 현재의 추고쿠(中国) 지역에 있던 단바(丹波), 단고(丹後), 다지마(但馬), 이나바(因幡), 호키(伯耆), 이즈모(出雲), 이와미(石見), 오키(隠岐)를 가리키는 말.
12) 북주인주로작차(北走因州路作叉) : 북으로 달렸다 다시 주의 도로들을 가로지른다는 뜻인데, 바삐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2009년 9월 26일(금)부터 9월 28일(일)까지 사흘 동안 오사카 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짧은 만큼 강렬한, 그리하여 아쉬움을 짙게 남긴 여행이었다. 이 여행기는 조만간 정리하여 다른 글로 남길 생각이다. 먼저 소개할 것은 일본 에도시대 후기의 유학자이자 시인인 라이 산요(賴山陽)의 한시 한 수이다.
이 시를 만난 곳은 오사카에서 남서쪽으로 기차를 한 시간 반가량 타고 가면 있는 히메지성(姫路城)이다. 세계문화유산에 오를 정도로 유명한 성인데, 일본의 전통적인 축성 기술이 빚어낸 극치의 아름다움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성이다. 외벽이 흰색으로 빛나기에 백로성(白鷺城)이라고도 한다. 성은 겉으로 보면 오 층인데, 안에서는 칠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아침에 히메지성을 두 시간 정도 살펴보고 왔는데, 내가 눈을 들어 성을 바라보는지 성이 저절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지 모를 정도로 황홀한 경험이었다. 라이 산요의 시는 히메지성 천수각(天守閣) 꼭대기 층에 걸려 있었다. 앞의 두 구가 정녕 입이 벌어질 만큼 멋진 시였다. 급히 메모했다가 엉성하게나마 한번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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