飮酒
陶潛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1) 음주(飮酒) : 전체 스무 수의 연작으로 이 시는 그 중 다섯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에는 “내가 한가하게 살다 보니 기쁜 일이 적은데 더하여 밤도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좋은 술을 얻어 밤이면 마시지 않을 때가 없었다. 내 그림자를 돌아보며 홀로 모두 마시고 나면 어느새 취하곤 했다. 취하고 나서 곧 몇 구절 적은 후 스스로 즐거워했는데, 종이에 쓴 것은 많아졌지만 글에 차례가 없었다. 이에 친구에게 부탁해 이들을 쓰게 하니 이는 다만 함께 즐기고 웃으려 했을 뿐이다(余閒居寡懽, 兼此夜已長. 偶有名酒, 無夕不飮. 顧影獨盡, 忽焉復醉. 旣醉之後, 輒題數句自娛, 紙墨遂多, 辭無詮次. 聊命故人書之以爲懽笑爾).”라는 서문이 붙어 있다. 제목은 음주라고 되어 있지만 내용은 반드시 술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술을 마시다가 거나한 기분이 들면 그때그때 지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도잠(陶潛, 365~427) : 진(晋)나라 심양군(潯陽郡) 시상현(柴桑縣) 출생이며, 자는 연명(淵明)이다. 연명은 본명이고 자는 원량(元亮)이라는 설도 있다. 이렇게 이름이나 자가 불분명한 것은 확실한 전기를 남길 수 있는 집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증조부는 서진(西晋)의 명장 도간(陶侃)이며, 외조부는 풍류로 이름 높았던 맹가(孟嘉)였다고 하지만, 시쳇말로 벼락출세한 사람으로 북쪽 지방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당시의 귀족 사회에서는 별로 존중받지 못했다. 하지만 도연명은 도간의 공적을 과하게 여겨서 자신도 그와 같은 활약의 장을 얻고 싶어 했다. 스물아홉 살에 가까스로 강주좨주(江州祭酒)로 출사했다가 사임했으며, 이후 열세 해 동안 드문드문 관직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 사이에 진군참군(鎭軍參軍), 건위참군(建衛參軍) 등으로 전쟁에 종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무렵은 동진 왕조 말기의 극도로 혼란한 시기로 삼류 귀족인 도연명의 관직 생활은 그리 순조롭지 못했다. 서서히 관직 생활에 희망을 잃은 도연명은 전원으로 돌아가기로 생각하고, 은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격을 낮지만 수입은 좋은 팽택현령(彭澤縣令)으로 부임했다. 이때가 마흔한 살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관직 생활에 결별을 고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군(郡)에서 사찰관이 왔는데 도연명에게 의관을 정제하고 나가 맞이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하지만 그 사찰관이 고향의 어린 청년이라는 것을 알자 도연명의 굴욕감은 정점에 달했다. 도연명은 “내가 다섯 되 쌀(현령의 녹봉)을 위하여 고향의 어린놈에게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라고 말하고는 즉시 사직서를 내고 전원으로 돌아갔다. 현령으로 부임한 지 팔십여 일 만이었다. 이때의 심경을 읊은 것이 바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그 후 죽을 때까지 이십여 년 동안 시인으로서 강주의 도읍인 심양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주나 군의 관리들과 사귀거나 전원에서 노닐거나 하는 은자의 삶을 소박하지만 깊은 정취가 느껴지는 시들로 읊어 냈다. 은자 시인으로서 평판이 높아지면서 조정에도 이름이 알려져 마침내 쉰네 살에는 명예직이지만 저작좌랑(著作佐郞)이라는 관직을 얻기도 했다. 어쨌든 이를 계기로 도연명은 강주라는 지방을 뛰어넘어 전원시인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그의 시는 소박했기 때문에 귀족 사회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당나라 때에 이르러 비로소 그 진가가 알려지게 되었다.
(3) 결려(結廬) : 오두막을 짓다. 소박한 집.
(4) 인경(人境) : 사람들이 사는 마을.
(5) 이(而) : 그러나. 역접을 나타내는 접속사.
(6) 거마훤(車馬喧) : 수레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시끄럽다. 수레나 말을 타는 것은 주로 관리들이므로 이는 출세를 위해 세속과 번잡하게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7) 문군(問君) : 그대에게 묻다. 여기서는 스스로에게 묻는다는 뜻.
(8) 하능이(何能爾) :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이(爾)는 연(然)과 같은 뜻이다.
(9) 심원(心遠) : 마음이 세속에서 멀리 거리를 두는 것.
(10) 편(偏) : 궁벽하다. 외지다.
(11) 리(籬) : 울타리.
(12) 유연(悠然) : 한가롭다. 마음이 느긋하다.
(13) 남산(南山) : 남쪽에 있는 산. 여기서는 여산(廬山)을 뜻한다.
(14) 산기(山氣) : 남기(嵐氣)라고도 한다. 산을 둘러싸고 있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을 말한다.
(15) 일석(日夕) : 저녁 노을.
(16) 차중(此中) : 5구에서 8구까지 보여 준 여러 가지 것들.
(17) 변(辨) : 따져 말하다. 변(辨)은 어떤 것을 분석해서 설명한다는 뜻.
(18) 망언(忘言) : 말을 잊다. 『장자』에 나오는 “물고기를 얻으면 통발을 잊고, 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다(得魚而忘荃, 得意而忘言).”를 잇는 구절이다. 『노자』에 나오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와도 통한다.
술을 마시고
도잠
초가 지어 마을에 살고 있으나
수레 소리 말 소리 시끄럽지 않네.
묻노니, 그대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마음 멀어지니 땅도 절로 외져진 탓이라오.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 따다가
느긋이 남쪽 산을 쳐다보네.
산 아지랑이 저녁노을에 더욱 아름다운데
나는 새들 서로 짝 지어 돌아가누나.
이런 속에 참뜻이 들어 있으나
따져 이야기하려 해도 이미 말을 잊었네.
* 이 시는 새로 옮긴 것은 아니고 예전 블로그에 있던 것이다. 틈날 때마다 조금씩 이쪽으로 옮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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