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란, “헌정 질서를 유지하면서 나쁜 권력을 축출하는 절차적 장치”이다. 이는 14세기 영국에서 처음 생겼다. 군주의 절대적인 권력을 견제해 법 위에 군림하지 못하게 통제하며, 고위 공직자의 책임을 강화해서 공익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이후, 탄핵은 미국에서 “공화정과 권력 분립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 장치”로 발전했다.
탄핵은 헌정 질서를 수호하고 “권력 남용을 바로잡는 민주적 장치”이면서 “정치적 도구로 오용될 위험을 내포”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띤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당파성이 필연적으로 개입하면서 “정치적 소모와 사회적 대립이라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탄핵은 “헌정 체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단순한 사법 절차를 넘어선다. 그것은 “권력 충돌과 정치적 긴장의 정점”을 드러내는 제도로, “정치적 역학 관계와 국민 여론,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얽힌 복합적 과정”이다. 특히, 다수당이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거나 반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고, 실제 의결 과정 역시 민주정의 이념이나 국민 상식에 따르기보다 “정당 간 권력 균형과 정치적 계산에 따라 결정”된다.
이철희에 따르면, 탄핵을 결정하는 요인은 부패와 비리 또는 경제 불안(촉발 요인), 헌법 위반과 그 중대성 여부(헌법적・법적 요건), 의회 구성과 정당 간 전략과 협력 여부(정치 환경), 법치주의와 사법부 독립성(사법 환경), 국민 분노와 행동 여부(국민 여론)이다. 특히, 대규모 시위 등으로 표출되는 대중의 동의, 즉 사회적 여론과 국민적 지지가 탄핵 성립의 가장 결정적 요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서 보듯, 탄핵 절차의 시작은 당파적 성격을 띨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대중적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탄핵은 “민주적 헌정 질서를 지키는 사회적 과정”으로, 국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여 헌정 질서를 수호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의회 내 짬짜미로 이루어진 탄핵 과정은 결국 정치적 역풍을 부를 뿐이다.
그러나 탄핵은 정치의 위축과 정지를 가져오기 쉽다. 극심한 정파적 대립과 갈등을 초래하고, 의회와 정부 사이의 협력 관계를 파괴한다. 특히, 탄핵의 남용은 ‘정치의 사법화’를 촉발한다. 의회가 정치 질서 안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문제를 자칫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 손에 떠넘기는 민망한 꼴을 보여준다. 이는 근본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파괴한다. “국민 여론을 둘로 나누고, 정치 분열과 대립을 심화”하며,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신뢰를 악화”하고, “사회 분열을 가속”한다.
한마디로, 탄핵은 극약 처방과 같다. “민주 헌정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반드시 ‘제도적 자제’ 위에서 “헌법과 법치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 탄핵 민주주의, 즉 탄핵을 정파적 도구이자 일상적 정치 수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이라는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해치고, 정치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훼손하며, 시민들 사이의 신뢰를 파괴해 분열과 대립의 비등점을 끓어오르게 한다. 결국, 탄핵의 일상화는 민주적 절차를 약화하고, 사법의 정치화를 가져와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무너뜨릴 수 있다.
탄핵은 내재적으로 불완전성을 품고 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수단인 동시에 다수 당파에 휘둘리는 정치적 도구이기도 한 까닭이다. 탄핵의 “불완전성은 법적 정당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_이용우, 「탄핵의 딜레마」, 《서울리뷰오브북스》 제17호(2025년 봄호), 27~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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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철희의 『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메디치미디어, 2024)에 대한 서평을 요약한 글이다.
탄핵의 이중적 성격, 즉 헌정 질서를 유지하는 최후의 수단이면서 탄핵 중독(탄핵의 일상화)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경고하는 좋은 요약이다.
탄핵이 완결된 국면에서 같이 음미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기록해 둔다.
강경한 목소리가 이기는 세계는 언제나 약자들에겐 최악의 세계다. 아마도 이제 큰 고비를 넘어섰으니, 이후엔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를 이끄는 자세를 유지하는 게 우리 사회의 큰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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