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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파시즘 체제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 글은 로버트 O. 팩스턴의 『파시즘』(교양인, 2005)을 읽고, 요약하면서 작은 의견을 덧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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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국가적 혁명 운동으로, 대중의 참여를 통해 전통적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운동”이다. 흔히 파시스트들은 “개인 권리보다 집단에 대한 의무를 우위에 두”고, “개인은 집단에 복종해야 한다”라는 믿음을 보이기에,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다. 

파시즘에서 나타나는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관한 맹종이다. 파시스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테러의 공포를 확산하면서 대중의 마음속에 믿을 거라곤 강력한 지도자밖에 없다는 ‘대안 부재론’을 유포”한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은 20세기 초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시도한 정치 체제에 영향받은 대중정치 운동 전반을 가리킨다. 프랑스의 불의 십자가, 영국의 파시스트 연합, 벨기에의 렉시스트, 독일의 나치즘 등도 여기에 포함한다. 그중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히틀러의 독일은 집권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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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전개 과정은 대개 5단계로 나뉜다.

(1) 탄생 :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등장해 국가적 어려움을 자기가 단숨에 해결하겠다는 선동적 언사로 대중을 현혹한다.

(2) 뿌리내리기 : 정당을 만들어서 기존 지배체제에 도전한다. 선거에서 득표하고, 의회에 입성하며, 정치 논쟁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키운다.

(3) 정권 장악 : 민주정의 약점을 이용해 선거로 정권을 획득한다. 이 과정에서 보수 세력과 중간계급을 설득해 파시스트를 인정하게 하는 게 필수적이다.

(4) 체제 구축 : 집권 후엔 정부, 기관, 단체, 학교 등에서 ‘반파시스트’들을 추방하고, 법을 개정해서 경쟁 정당의 활동을 금지함으로써 일당 지배체제를 구축한다.

(5) 정상화와 급진화 : 지배체제를 장악한 파시스트들은 대중들을 배신하고 기득권 세력과 타협해 보수적 권위주의 정권으로 ‘정상화’하는 한편, 이를 가리기 위해 급진적 노선을 택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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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먹고 자란다. 국가가 심각한 혼란에 처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을 때, 파시즘의 출현 가능성이 높다. 역사적 파시즘은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세계 대공황을 배경으로 자유주의 체제가 흔들리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당시 “유럽은 재건 불가능한 구세계와, 그들이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신세계로 분열됐다. 인플레는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달았다.” 이는 “자유주의나 보수주의 같은 기존의 정치적 역량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긴장”을 초래했고, 대중들 사이에 “어떤 전통적 해결책도 소용없는 불가항력적 위기감”을 불러왔다. 

대중들은 점차 기존 체제에 지쳐갔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환멸에 빠져들었다. 민주주의는 이들에게 표는 쥐여주었으나, 삶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일자리도 없고, 소득도 없고, 소속감도 없이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대중들은  점차 “자기 소속 집단이 희생자”라고 생각하고, 파시즘 운동에 찬동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들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의 등장에 열광한다. 이로부터 “강자의 승리, 국민의 열정과 단결, 노동계급의 국가 통합, 외국인 제거, 전쟁을 통한 지배민족의 승리를 꿈꾸는” 파시즘 운동이 대중들 사이에서 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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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체제의 구축에서 가장 넘기 힘든 단계는 건전 보수와 중간계급을 설득해서 파시스트들을 받아들이게 하는 일이다. “파시스트가 대중 승인을 얻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했던 단계는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보수주의자와 중간계급을 설득해 파시스트 폭력이 좌파의 도발을 막기 위한 필요악이라고 인정하게 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파시스트들은 정권을 장악해도 좌파만큼은 위험해 보이지 않도록 포장하곤 한다.

한마디로, 파시즘의 수용엔 보수 기득권 세력의 협력이 필수다. “경제적 이익・권력・특권”에 대한 집착 탓에 “자유주의와 좌파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든 보수 세력은 파시스트의 힘을 무시한 채, 순진하게도 이들을 자신들 뜻대로 잘 제어할 수 있으리라 착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진보 세력과 연합해 초당적 협력 구조를 구축하는 대신, 어리석게도 “공공연한 무력 사용을 통한 통치를 요구”하면서 파시즘 세력을 지지한다. “위협을 느낀 보수 세력이 법의 지배를 포기할 태세를 갖추고, 더 강한 동맹 세력을 찾아 헤매며, 파시스트들의 정치적 테크닉과 결집된 열정에 손을 내밀며 그 추종세력을 흡수하고자 할 때, 파시스트들은 벌써 권력에 아주 가깝게 접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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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파시즘은 고정된 체제 또는 질서정연한 이데올로기가 아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파시즘은 “대중 정치 시대에 급조된 새로운 고안물”로, “일관되고 논리정연한 철학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 전통적 이데올로기 비판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는 진보 세력이 파시즘 등장을 막지 못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파시즘은 노골적인 테러리즘 독재로, 금융자본 가운데 가장 반동적이고 가장 국수적이며 가장 제국주의적인 세력”이 아니다.  그냥 파시즘은 불만에 가득차고 불안에 떠는 대중적 열정이 결집한 것이다. 

파시즘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국가 상황, 정치 지형, 주변 정세 등에 따라, 정확히 말하면 그에 반응하는 대중의 열정에 따라 아주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파시즘을 이해하려면 말이 아니라 행동에 주목해야 한다.

“파시즘 정권들은 하나의 분자 구조물과 같다. 그것은 파시즘 세력과 보수적 질서라는 두 가지 완전히 다른 물질이 자유주의와 좌파에 대한 적대감,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파괴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라는 두 공통점을 매개 삼아 서로 결합해서 탄생한 합성물”이다. 팩스턴에 따르면, 히틀러는 이념의 광기에 젖은 미치광이가 아니라 “날카로운 현실감각을 지닌 실용주의적 통치자”였다. 그때그때 정치 환경에 따라 수시로 협력과 배신을 일삼았다는 말이다. 심지어 유대인과도 협력하고, 자기 집권에 앞장선 나치 돌격대장을 숙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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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고전적 폭정과 다르다. 고전적 폭정은 “시민들을 단순히 억압하여 침묵”시키며,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려 애쓴다. 파시즘은 민주주의 내부에서 생기는 것으로, 민주주의의 타락이자 실패 현상이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보편적 시민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법치를 지키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위험한 극단으로, 반복하지만 환멸과 실망에 찬 대중들의 “결집한 열정”에 더 가깝다. 

쿠데타로 집권하는 고전적 폭정과 달리, 파시스트는 선거를 통해서 집권한다. 파시즘의 성공 과정엔 “보통 사람들, 인습적으로 착한 사람들의 조력이 있고, 국가, 당, 관료 등 전통 엘리트층의 묵인 또는 적극 동의가 있으며, 행정 관료, 군 장교, 사업가 등 기존 사회 주류층의 폭넓은 협력”이 있다. 토마스 만은 이를 두고 “저속한 인간쓰레기들이 대중의 열렬한 환호로 정권을 잡았다”라고 말했으나, 그런 경멸만으로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정당성을 획득한 파시스트 정권의 폭주를 막을 수 없었다. 

대중적 열정을 결집하는 데 집권 및 지속 여부가 달려 있기에, 파시스트들은 고전적 폭군들과 달리 집권 이후에도 “파시즘 행위를 형성”하는 여러 집회나 운동을 조직해 대중적 정서를 자극하고 행동을 촉진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들은 대중을 배제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특정한 정치적 주체로 길들인다. 파시스트들은 “대중의 열정을 끌어모아서 내적 정화와 외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향해 국민적 단결을 강화하는 쪽으로 돌리는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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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밝혔듯이, 파시즘 체제가 들어서면, 먼저 정상화 과정을 거친다.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적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인 엘리트층과 불편하나 효과적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법적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한다. 이는 반대 세력에 대한 억압과 구속, 경찰력을 동원한 불법적 체포와 고문, 반대자에 대한 테러와 살해, 입법을 통한 경쟁 정당 제거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기득권 세력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파시즘은 본래 약속을 저버리고, 대중들의 진정한 열망을 배신한다. 이들은 집권 과정에서 반부르주아, 반자본주의, 사회 개혁 등을 내세우나, 집권하면 그 반대로 움직인다. “어떤 파시즘 정권도 위계질서를 바꾸지 않았다. 기껏해야 국가가 시장을 대신하여 경제를 주도했을 뿐이었다.”

파시즘은 이성적 논리가 아니라 대중 열정에 의지하기에, 대중들의 열정이 꺼지는 순간, 바로 붕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파시즘 정권은 결국 대중을 억압하는 전통적 권위주의 체제로 변신해 정상화되거나, 대중을 동원해 약자에 대한 학살과 테러, 외국에 대한 침략과 전쟁을 자행하는 등 급진화할 수밖에 없다. “파시즘 정권은 국민에게 약속한 ‘역사와의 특권적 관계’를 실행하기 위해 무모하고 강박적인 돌진을 거듭하다 자멸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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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열정을 끝없이 동원하기 위해, 파시스트들은 항구적으로 적들을 생산한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를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선악 대립의 종교적 프레임으로 대체한 다음, 자신들을 선한 쪽에, 반대 세력을 악한 쪽에 놓는다. 기성세대의 타락에 경멸과 불만을 품은 순수한 청년들이 이들에게 쉽게 호응하는 이유다. 팩스턴에 따르면, 초기 파시즘은 정치 운동이라기보다는 청년 반란에 더 가깝게 보인다. 

세상을 둘로 나누어 생각하기에, 파시스트들은 언제나 특정 집단을 악마화한다. 초기에 이들은 유대인 같은 정치 지형 전체로 보면 아주 사소한 집단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청년들을 부추겨 자신이 악마로 만든 세력들을 반복해서 공격함으로써 사회 불안을 초래한다. 파시즘 체제의 주요 특징인 폭력과 테러의 일상화는 이로부터 시작된다. “홀로코스트는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소극적 행동에서 출발해 단계를 거치면서 점점 더 광포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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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이념이라기보다 선전을 통해서 대중을 선동하고 그들의 열정을 끌어낸 후, 자기 이익과 목표를 위해서 조직하는 정치적 기술에 가깝다. 처음에 주변부 약자에 대한 공격에서 시작한 파시스트들은 점차 “내부든 외부든 모든 적에 대해 법률적・도덕적 한계 없이 어떤 행동도 정당화하는 정서”를 퍼뜨리고, “필요하면 배제적 폭력이라도 동원해, 공동체를 더 깨끗하고, 더 긴밀하게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체가 처한 위기가 너무 심각해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작용’만으로는 단결을 이룰 수 없다”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파시스트들은 대중들을 폭력에 중독시키고, 타자의 처지는 아랑곳없이 자기 안위에만 신경 쓰게 이끈다. 이들과 함께하는 대중들은 서서히 폭력에 무감하고 공격에 열광하는 주체로 변질된다. 그러나 “체제의 적들에게서 시작된 폭력은 파시즘의 ‘보수파 동맹 세력’을 거쳐, 결국 일반 국민을 상대로도 무차별 행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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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약자들에 대한 시민적 무관심과 사법 제도의 무력화가 이루어진 나라에서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우리가 1938년 11월의 히틀러를 제어할 사법 제도의 결핍이나 종교적・시민적 권위의 결핍, 또는 시민 저항의 결핍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개인적・제도적 묵인의 광범위한 악순환을 이해하기 시작한 셈이 된다.” 파시스트들은 처음에 여러 형식으로 유대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공격한다. 시민들 다수가 이러한 공격을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인기 없는 소수 집단의 자유는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에 매력을 느낄 때, 파시즘은 날개를 달면서 사회 전체를 장악하는 여정에 나선다.

동시에 파시스트 세력은 사법 제도를 공격하고 길들여서 점차 무력화하려 애쓴다.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사회질서를 교란하고, 마음껏 열정을 분출할 수 있어야, 세력을 펼칠 수 있는 까닭이다. “공권력이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에 대한 직접적 적대 행위를 적당히 눈감아 주는 곳이라면 어디나 파시즘이 들어설 공간이 열려 있었다. 이 점에서 파시즘의 가장 큰 적은 사법 및 행정상의 엄격한 법 집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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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턴의 논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그가 ‘파시즘 현상’과 ‘파시즘 체제’를 구분한다는 점이다. 외국인을 혐오하고 약자를 무시하면서 분탕질하는 흐름은 인류사회 어디든, 언제든 존재한다. 때때로 운동이나 단체를 조직해서 활동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무솔리니나 히틀러처럼, 이들이 집권해서 파시즘 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상상 못 할 재앙을 가져온다. 

파시즘 체제는 일상의 파시즘에서 나오지만, 일상의 파시즘을 억제하는 일은 시민 교육에 맡겨야 하는 장기 과제다. 철학자들은 주로 이런 근본 구조를 건드린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할 일은 이들이 체제까지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억제하고 실패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시민 계약, 즉 공화주의적 이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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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스턴에 따르면, 파시즘의 등장은 필연적이지 않다. 파시즘은 “민주주의가 크게 발전한 곳과 대중의 반감과 분노가 좌파로 힘을 몰아주는 나라에선 탄생할 공간이 거의 없었”고, “민주주의 좌파와 사회주의 좌파”가 굳세게 단결한 나라에서도 생겨나기 힘들었다. 한마디로, 파시즘 운동은 민주주의가 대중 정치, 즉 군중 동원 정치로 타락한 곳에서 나타난다.

파시즘 체제의 지배 과정엔 우파 보수주의자들의 잘못된 선택과 함께 좌파의 타락도 한몫했다. “성숙한 사회주의 좌파가 정부에 들어가 타협을 일삼고, 전통적인 노동계급과 지식인 지지자에게 환멸을 안겨 준 상황에서 파시즘이 들어갔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에서 파시즘 체제의 등장을 억제할 수 있는 몇 가지 대안적 경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파시즘 등장 조건의 원천적 제거. 국정을 안정시켜 사회적 혼란을 억제하고, 일자리를 제공해 소속감을 불어넣으며,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서 대중들을 달래는 일이다. 둘째, 진보적 정치체가 오만에 빠진 배타적 강경파에 휘둘리지 않고,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이들이 파시스트들과 손잡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 셋째, 소수자가 대중 열정의 희생양이 되지 않게 사회적 다양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넷째, 엄격한 법 집행으로 파시스트들이 날뛰지 않도록 초기부터 이들을 확실히 제압하는 일이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이 우리 논의의 중심에 놓이는 한, 한국 사회에서 파시즘이 대안적 지배 체제가 되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팩스턴은 말한다. “파시즘 지도자들이 어떻게 정부의 우두머리가 됐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곧 반(反)결정론을 연습해 보는 것이다.”

로버트 O. 팩스턴, 『파시즘』, 손명희・최희영 옮김(교양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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