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에 세상을 떠난 미국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인간 의식의 비밀에 가장 가까이 간 사상가다. 그는 진화론과 생물학, 신경생리학과 인지과학의 최신 연구 성과에 바탕을 두고, 철학의 오래된 주제인 감각, 느낌, 직관, 감정, 지각, 인식, 창의의 보물 상자를 하나씩 열어갔다. 철학자로서 평생 그가 품었던 질문은 ‘어떻게 감각을 처리하고 행동을 제어하는 물리적 기관에 지나지 않는 뇌에서 의식과 사고, 더 나아가 의미와 가치를 지향하는 창의적 마음이 생겨나는가?’ 하는 것이었다.
“철학자와 과학자가 한 배에 타고 있음”을 보여준 데닛의 통찰은 숱한 철학자와 과학자에게 영감을 주었고, 곳곳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995년 출간된 『다윈의 위험한 생각』은 데닛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출세작으로, 2009년 BBC에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인기를 끌었다. 고전 반열에 오른 이 책은 그 방대함과 난해함 탓에 국내에 소개되지 못했는데, 북 펀드를 통한 독자들의 열렬한 참여 덕에 30년 만에 비로소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바다출판사 펴냄).
950쪽에 달하는 이 벽돌책에서 데닛은 다윈주의가 어떻게 생물학 영역을 뛰어넘어 인간 지식 전체에서 전통적・신학적 사고를 뒤흔들고, 생명과 우주와 문화에 관한 지적 정초를 세웠는지를 보여준다. 서문에서 데닛은 다윈주의로 인간 사고 전체를 물들이고 싶다는 야심을 슬쩍 내비친다. “나는 다른 분야 사상가들이 진화론적 사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다.”
그 사고의 핵심은 간단하다. 생명의 발생과 의식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자연 선택 외에 다른 이론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다윈에 따르면, 미리 계획된 의도나 목적 없이도 우발적・맹목적 자연 선택의 반복만으로도 생명은 태어나고 마음은 생겨난다. 인류는 언젠가 그 중심에 놓인 과학 알고리즘을 한 올의 비밀도 없이 알아낼 것이다. 다윈은 부분적으로 틀릴 수 있어도, 다윈주의, 즉 진화론적 사고는 항상 옳다.
데닛에 따르면, 다윈주의는 폭탄처럼 극히 위험하다.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낡은 시각을 전복하는 까닭이다. 다윈주의는 ‘만능산’이다. 진화론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낡아빠진 사고를 부식한 다음, 그 비밀스러운 속살을 도려내고, 거기에 지금껏 없었던 혁명적 세계관을 새겨넣는다. 데닛은 태초에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든지, 존 로크처럼 마음이 물질에 우선한다든지 하는 기적적・신학적・유심론적 사고를 ‘스카이후크’ 사고라고 비판한다. 어느 날 신이 하늘에서 갑자기 창조의 동아줄을 내려주는 허무맹랑한 공상의 산물이란 것이다.
반대로, 진화론은 세상 모든 걸 크레인 사고, 그러니까 땅에서 하나씩 돌을 쌓아 거대한 건물을 이룩하는 축적 과정으로 이해한다. 간단한 도구를 개량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복잡한 기계가 만들어지듯, 최초의 원핵생물에서 출발한 생명체가 방향도 목적도 없는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도덕과 종교를 이룩하고 고도로 복잡한 정치와 사회를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오직 진화론만이 이 느리고 긴 과정, 즉 주체의 기질과 무관하고 의도나 목적이 없으며, 특정 조건만 만족하면 항상 특정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해상도 높게 설명한다.
아울러 다윈주의는 벌레와 동물에서 인간을 거쳐 천사와 신에 이르는 위계적 사고를 해체한다. 다윈주의는 인간을 신이 창조한 특별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모든 종은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시작해 자연 선택과 성 선택에 따라 우연히 진화했다. 종 사이의 위계는 없고, 끝없이 분기하는 ‘생명의 나무’만 존재한다. 인간은 다른 종과 똑같이 그 한 가지 끝에 매달린 존재에 불과하다.
데닛은 인간에게만 있는 듯 보이는 의식도 특별하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마음은 박테리아에서 시작된 자잘한 반응과 몸짓이 수십억 년간 쌓여서 이루어진 적응적 변화의 산물이었다. 이 책에서 데닛이 인간 언어를 하늘의 선물인 듯 말하는 노엄 촘스키, 진화를 점진적 축적에 따른 적응적 변화보다 긴 정체와 짧은 기간의 도약이 반복되는 과정(단속평형설)으로 이해하는 스티븐 제이 굴드를 격렬하게 비판하는 이유다.
그래서 데닛은 생명의 일반 역사 속에서 인류 문화를 설명한다. 모든 생물에는 문화가 있고, 밈이란 유전체를 통해 후대에 독특한 행동양식을 물려준다. 따라서 인간 언어도, 예술도, 과학도, 종교도 진화의 예외일 수 없다. 그는 의식이 온도 조절기나 로봇과 똑같이 알고리즘을 통해 작동한다고 확신했고, 역설계를 통해 그 알고리즘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에겐 생물학이나 철학이 궁극적으로 공학과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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