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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마구스(Magus)에 대하여

마구스(Magus)는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과학과 미신 사이에 존재했던 학구적인 마술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기묘한 마술을 펼쳐서 대중들을 매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에 관한 지식과 원리를 탐구해 책으로 펴냈다.

『15~16세기 유럽의 마술사들』(조행복 옮김, 책과함께, 2025)에서 미국 과학사학자 앤서니 그래프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마구스들의 기예와 경험을 다룬다. 마구스들이 행했던 마술은 점성술, 사랑의 묘약에서 질병 치료, 암호 기술, 유압장치와 자동장치 제작 등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무척 넓었다. 마술이라고 하지만, 의학, 심리학, 과학, 공학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구스들은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고 이를 이용한 재주를 부렸다. 비판자들은 그들의 기예를 악마의 도움을 받은 술수, 즉 ‘마술’이라고 불렀으나, 그들 자신은 심오하면서 무해한 ‘자연 마술’ 또는 ‘신비한 원리’라고 불렀다. 사실, 그들은 주술사가 아니라 세상의 숨겨진 원리를 탐구한 과학의 선구자들이었다. 실제, 그들은 점성술을 위해 천체 움직임을 연구하고, 연금술을 연구해 물질 변형 기술을 파고듦으로써 과학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미신적 요소도 많았다. 마구스들은 목 아픈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시체의 손을 목에 댄다든지, 감기 걸린 환자가 청개구리 입속에 침을 뱉으면 낫는다, 두꺼비의 왼쪽 옆구리 뼈가 물을 뜨겁게 데울 수 있다는 등 기괴한 치료법을 행하곤 했다. 그러나 이 얼토당토한 ‘청개구리 치료법’은 당대엔 상당히 그럴듯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대(大) 마구스’로 여겨지던 중세 독일의 사상가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1486∼1535)가 책을 통해 소개할 정도였다. 

요컨대, 마구스는 당대 최신 문물을 최대한 활용해 “감추어진 것들의 특성과 속성을, 자연의 전 과정에 대한 지식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평가를 받는 르네상스 지식인이었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방법으로 각종 기행을 부렸다. 공중정원을 만들고, 말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기록도 있다. 교회는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이들을 싫어해서 악마의 짓으로 몰았다. 아그리파는 점성술과 연금술을 연구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죽었다.

유명한 마구스로는 요한 게오르크 폰 헬름슈타트가 있다.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인물이다. 파우스트란 말은 헬름슈타트가 ‘파우스트 유니오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강령술사의 우두머리”, “흙과 불의 점술사” 등으로 불렀다.

파우스트가 행한 마술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으나, 광학에 조예가 깊었던 건 분명하다. 그는 자연철학자이자 발명가인 조반니 폰타나가 만든 투사 램프를 활용했다. 마치 그림자놀이처럼 램프 양초 불빛 앞에 자그마한 악마의 형상을 놓고, 벽에 거대한 형상을 벽에 투사하는 방식으로 공포감을 조성해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큰 원반과 작은 원반을 조합해 암호체계를 만들었다. 이는 기계적 원리에서 20세기 독일군의 암호 작성기 에니그마와 똑같았다. 물론 그는 흥분한 마녀들과 움직이는 해골을 그린 그림 제목을 감추는 용도로 사용했다. 발명가였던  그는 청동 원반 둘레에 추를 매달아 놓고 회전시켜 인체와 조각상의 비율을 재고 좌표를 기록할 수 있는 측정 도구도 만들었다. 

물론, 미신적 요소도 많았다. 마구스들은 목 아픈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시체의 손을 목에 댄다든지, 감기 걸린 환자가 청개구리의 입속에 침을 뱉으면 낫는다는 등 기괴한 치료법을 행하곤 했다. 이들이 부리는 마술은 ‘악마를 연상시키지 않는’ 제한적 범위에서 기독교 사회의 일상 기술이 됐다.

15세기에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활동했던 마구스 피코는 식이 요법을 권했다. “음식을 음료보다 두 배 많이 섭취해야 한다. 다시 말해 빵과 음료는 2:1, 빵과 달걀은 1:1.5, 빵과 고기는 3:1, 빵과 눅눅한 생선, 녹색 채소, 과일은 4:1의 비율이어야 한다.”

요컨대, 이들은 인간과 자연, 기계와 도구의 원리를 탐구해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현대 의학과 과학의 선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앤서니 그래프턴, 『15~16세기 유럽의 마술사들』(조행복 옮김, 책과함께,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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