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구 1주택이라는 주택 형식은 20세기에 발명된, 20세기란 시대에 어울리는 주택이다.”
『탈주택』(안그라픽스, 2025)에서 일본 건축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야마모토 리켄과 나카 도시하루는 말한다.
‘1가구 1주택’이란 근대 산업혁명에 최적화한 주거 모델이다.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을 위해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몰아넣는 대신, 서로 교류하면서 단결하지 못하게 핵가족별로 고립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핵심은 남자는 출근해서 일하고 여자는 집안일과 양육을 맡은 남녀 분업 체제를 통해서 쓸데없는 일(가령, 마을일, 동네 축제 등)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평온한 공간에서 노동력을 견실히 재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1955년부터 지어진 일본 공공 주택을 예로 들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절정이 한국 아파트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야마모토는 2024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다. 이 상은 건축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다. 선정 이유는 근대 이후 절대 가치로 여겨온 개인 자유와 사생활 개념을 해체하고, 공간을 공유하고 이웃을 연결하는 건축 언어를 창안했다는 것이다. 나카는 ‘식당 딸린 아파트’란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집을 고리 삼아 소규모 골목 경제권을 이룩하는 주거 모델을 보여준 건축가다. 두 사람이 힘 주어 말하는 ‘탈주택’이란, 프라이버시 보장에 우선 가치를 두는 근대 건축관을 해체하고, 개인 자유와 공동체 재건을 목표로 하는 두 사람 작업을 압축하는 말이다.
두 사람에게 집은 더 이상 폐쇄적 안락함과 고립적 밀폐감을 제공하는 프라이버시 공간이 아니다. ‘1가구 1주택’에 갇힌 그런 ‘행복한 생활 양식’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나 홀로 가구가 폭증하고,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양육과 간병, 외로움과 고독사 문제도 심각하다.
사회적 고립과 이웃 관계 단절을 부추기는 근대 주거 형태는 현대적 삶에 더 이상 적합지 않다. 미래의 주거형은 집을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고, 가족과 가족을 이어주며,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기본 단위가 되어야 한다. 야마모토는 주장한다. “함께 산다는 것은 주변 사람에 대해 책임지는 주거 형식을 뜻한다. 이는 결국 주택을 만드는 방법(설계)의 문제다. 그렇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면 될 뿐이다.”
이 책은 구마모토현 호타쿠보 제1단지, 요코하마 시영주택 미쓰쿄하이쓰, 베이징 젠가이 소호, 헤이타 모두의 집, 고혼기의 집합주택 등을 통해 이런 두 사람 생각이 실현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두 사람 작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판교하우징, 강남하우징, 써드플레이스홍은 등은 관계에 바탕을 둔 집이 개인과 이웃을 이어 마을을 만들고, 개인 작업공간을 서로 연결해 지역 경제권을 이룩하는 미래를 창출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2010년 경기도 판교에 100가구 규모로 조성된 판교하우징은 야마모토의 대표작이다. 이 고급 주택단지는 11~12개 집을 묶어서 전체를 아홉 군데 구역으로 나누었다. 각 구역 중앙엔 작은 광장이 있다. 광장에 접해 있는 각 주택 1층은 투명 유리로 되어 있다. 광장에서 환히 들여다보이는 이곳은 갤러리, 음악실, 응접실, 카페 등으로 이용하게 되어 있다. 광장에선 이웃들이 모여 때때로 바비큐 파티를 열고, 의자와 테이블을 놓아 볕을 쬐며 담소할 수 있다.
2015년 완공된 서울 강남하우징은 1000가구 규모로, 6.5~14평 정도 임대주택들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은 공동 정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게 지어졌고, 각 집 현관은 투명 유리로 만들어져 서로 들여다볼 수 있다. 옛날 사랑방처럼 집 안에 있되, 누구나 살필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건물들은 공중 다리로 연결해 주민들이 오갈 수밖에 없게 설계했다. 관리실, 보육원, 노인정, 스포츠 시설 등이 건물별로 나뉘어 배치된 까닭이다. 건물 옥상엔 텃밭을 두었는데, 주민들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장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공동 정원도 점차 장독대 놓고 작물 기르며 이야기 나누는 텃밭으로 바뀌었다.
저자들은 사랑방이나 툇마루처럼 집 안에 있는 사적인 공간이면서 마을을 향해 열린 공간을 시키이(閾, 문지방)라고 부른다. 투명 유리로 지나는 사람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현관이나 응접실이나 사무실은 이 전통 공간의 현대적 표현형이다. 이 공간과, 거기에 이어진 공용 공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마을 주민이 스스로 정하면 된다. 저자들은 이 공간에 카페, 꽃집 등 가게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동네 경제권이 형성되길 바란다. 지역공동체는 결국 친교뿐 아니라 살림을 나누어야 자치를 잃지 않고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립과 단절이 집과 마을의 기본 구조가 되면, 동네의 삶이 의미도, 재미도 없어진다. 건물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집 안에 틀어박혀 고립된 개인으로 살지 않고, 이웃과 함께 교류하는 게 얼마든 가능해진다. 『탈주택』은 이런 생각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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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서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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