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권위주의, 독재』(글항아리, 2025)는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독재자의 출현 현상을 다룬다. 책의 원제는 스트롱맨(Strongmen). 힘 자랑하기 좋아하는 극우 애국주의 마초 넘들이 현대 민주주의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수법과 그 결과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정치학에선 민주주의와 독재(극우 포퓰리스트)가 결합하는 이 역설적 현상을 ‘하이브리드 정권’ ‘선거제 독재 국가’ ‘신독재주의’ 등으로 부른다.
저자는 루스 벤 기앳. 미국 뉴욕대 교수로 파시즘 연구의 권위자다. 저자는 20세기 이후 전 세계에서 나타난 독재 통치를 1919~1945년 파시스트 시대, 1950~1990년 군사 쿠데타 시대, 1990년부터 현재까지의 신독재주의 시대 등 세 시기로 나눈다. 첫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이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 둘째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이 리비아의 카다피와 칠레의 피노체트. 셋째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이 미국의 트럼프와 러시아의 푸틴이다. 이 책은 이들을 포함해 프랑코(스페인), 모부투(자이르), 에르도안(튀르키예), 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 등 모두 17명의 독재자의 교묘한 통치술을 드러내 폭로한다.
과거의 독재자들이 주로 쿠데타 같은 군사적 폭력을 이용해서 집권했다면,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독재자들은 대개 민주주의의 상징인 선거를 이용해서 집권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기존 사회의 도덕적·제도적 힘이 부족한 곳을 파고들어 민주적 기반을 흔드는 수법을 쓴다.
독재자들의 통치 도구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선전’이다. 현대의 독재자들은 자기 소유 또는 자기 친화적인 언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활용해 여론전을 적극적으로 폄으로써 반대 견해가 확산되지 못하도록 억누른다.
둘째는 ‘부패’다. 이들은 돈과 권력을 이용해 국가 권력 장악에 필요한 사람들을 매수하고 순종적인 공무원을 확보한다.
셋째는 ‘폭력’이다. 이들은 내부의 비판자들을 수시로 협박하고 위협하며, 신체적 상해를 가하고 때로는 암살 등의 수법을 통해 제거한다.
넷째는 ‘마초주의’이다. 웃통 벗은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 주는 등 원초적 힘을 드러냄으로써, 이들은 지도자가 몰락하는 국가의 구원자라는 인식을 퍼트린다.
일단, 집권하고 나면 독재자들은 통합과 설득에 나서기보다 주로 통제와 힘에 호소한다. 극단적인 경우, 그들은 “경제 참사 혹은 좌파로 인한 대재앙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다. 저자는 말한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게 하는 충격적인 일이나 중대한 사건은 독재적 역사를 촉진한다.”
독재자들은 국가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유토피아’와 ‘향수’, ‘위기’를 권력 유지와 권위주의 통치의 지렛대로 활용하면서 ‘국가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라고 약속한다. 과거 잘 나가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현재의 암울한 전망, 장밋빛 미래의 비전과 결합하는 것이다. 가령, 푸틴은 소비에트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트럼프는 2016년 첫 취임 연설에서 미국을 “온 나라에 낡아빠진 공장들이 묘비처럼 흩어져 있는” 황량한 곳으로 묘사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 만들겠다고 유혹했다.
독재자들이 구사하는 통치 전술은 대개 비슷하다. 서로 베끼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수법을 몇 가지로 압축해 제시한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면 사회를 분열시켜야 한다.’ ‘스스로 언론인 정체성을 유지한다. 국가의 편집장 역할을 자임한다.’ ‘국가 자원 약탈에 방해되는 기후변화 관련 과학은 억압한다.’ ‘TV나 소셜미디어에 나오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물론, 이들을 뒷받침하는 돈이 없으면, 독재자의 야망이 실현되지 않는다. 독재자들 뒤에는 언제나 돈 많은 후원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푸틴의 뒤에는 올리가키가, 히틀러의 뒤에는 독일 기업가들이, 트럼프의 뒤에는 일론 머스크 같은 월가가 있다. 권위주의와 재벌의 동맹이 독재의 실체를 이룬다.
시대가 어지러울수록 대중은 독재자들에게 쉽게 종속되는 경향이 있다. 독재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부실 운영이나 탄핵, 국제적 망신을 겪으면서도 그 지도자 편에 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독재자와 이념을 공유하는 철저한 신념가들이 아니다. 그저 더이상 참과 거짓,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않으려 할 뿐이다. “그들이 그를 믿는 이유는 그를 믿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찍이 한나 아렌트가 경고했듯, 생각 없는 대중이 형편없는 지도자를 선택한다. “‘모든 국가는 그 국가가 받아 마땅한 불한당을 얻는다.’ 무솔리니 치하의 파시스트 이탈리아를 두고 당시 한 빨치산의 이 말은 다소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더없이 정확하다.” 그래서 저자는 경고한다.
“사회에서 양극화와 혐오가 확산될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골을 더 깊이 팔지, 아니면 독재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연대, 사랑, 대화로 반대편을 향해 손을 내밀어 새로운 파괴의 굴레를 멈출지는 국가의 주인인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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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요약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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