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직(職)/책 세상 소식

(151)
모리스 센닥이 그린 독서 관련 포스터들 작년 5월 모리스 센닥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그가 만들어 낸 하나의 신기한 세계가 동시에 현실 속에서 함께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 『괴물들이 사는 나라』(강무홍 옮김, 시공주니어, 1994)를 접했을 때의 충격은 그만큼 강렬했다. 『백설공주』나 『알라딘의 램프』와 같았다. 머릿속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어 다시는 떼어내지 못하도록 내 일부가 되었다. 이후 아이들이 태어나 여러 차례 읽어 주면서 아이들 역시 그의 책이 불러들인 기이한 세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의 책은 이미 고등학생이 된 우리 아이들이 아직도 소유권을 놓고 애지중지하는 인생의 보물이 되었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또 다른 세계가 필요한 것이다. 이 재미없고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현실 말고 또 다른 세계가 하나쯤 있다는 것..
출판 공론장의 출현을 기다리며 ― 《기획회의》 350호를 읽고 격주간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드디어 350호를 넘겼다. 불황과 위기의 연속인 한국의 척박한 출판 현실에서 무려 10여 년을 훌쩍 넘긴 세월 동안 이만한 잡지가 계속해서 나왔다는 것은, 공과를 따지기에 앞서 그 자체로 한국 출판사에 남을 기념비적 업적을 계속 세워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령 350호를 맞이하여 편집자로부터 짤막한 의견을 보내 달라는 청탁서를 받았으나 회사 일정 탓에 미처 보내지 못하고 어느새 마감을 넘기고 말았다. 후회 막급이다.개인적으로 아무리 바빠도 《기획회의》만은 미루지 않고 집에 배달되어 오는 다음 날 출근하면서 지하철에서 곧바로 읽어 치우는 것이 편집자로서 이 잡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들게 출판 관련 담론들을 만들어 ..
슈타이들조차 책을 만드는 데에는 편집자가 필요하다 슈타이들조차 책을 만드는 데에는 편집자가 필요하다― 대림미술관의 슈타이들 전시회를 다녀와서 전시회 관람을 그 자리에서 끝내는 것은 대개의 경우 무척 어리석은 일이기 쉽다. 물론 현장의 생생함이 만들어 내는 활기 찬 리듬, 눈을 사로잡는 강렬한 색채와 그들을 빚어 내는 공간의 놀라운 조화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장의 인상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법이라서 며칠 또는 몇 주의 시간이 지나면 메모 몇 줄과 머릿속에서 공명하는 몇 덩이 생각들로 약화된다. 윤곽선은 희미해지고 느낌은 잔잔해진다. 현장의 감격은 사라지고 냉냉한 분석만이 남는다. 그러나 나는 또 알고 있다. 인상이란 우리를 속이기 쉽다는 것을, 진정한 전시회는 도록을 읽는 육체 노동과 사색의 시간을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필요로..
아주 매력적인 책 그림, 그랜트 스나이더의 「스토리 코스터(The Stroy Coaster)」 주말이면 에버노트에 모아 두었던 글들이나 RSS로 받은 출판 & 문화 관련 소식들을 읽는다. 예전에는 구글리더를 주로 이용했지만, 이달 초 서비스가 종료된 뒤 어쩔 수 없이 피들리(Feedly)로 갈아탔는데, 아직도 불편하고 익숙지가 않다. 이번 주말에 받은 소식 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것 하나를 소개한다. 책과 문학에 관련된 일러스트레이션을 주로 그리는 그랜트 스나이더의 작품 「스토리 코스터(The Stroy Coaster)」다. 단 한 장의 그림으로 작품 탄생의 전 과정을 요약해 내는 재능은 탁월하고 놀랍다. 이런 그림은 수많은 작품을 읽어 가면서 터득한 스토리 구조에 대한 통찰과 작가의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출판인들이여, 용기를 품어라 최근에 열린 뉴욕 TOC의 기조 연설에서 잉그램의 사장 존 잉그램은 최근의 변화된 환경이 출판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임을 암시하면서 출판인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주문했다. 새길 만하다. “환경은 앞으로도 계속 변해 갈 것이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사자들의 모든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어리석음이 아니라 용기를 이야기하자. 용기를 품고 계산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때가 도래한 것이다. 그것 외에는 아무런 길도 없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환경에서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미래에 계산된 패를 걸어야 한다. 나는 우리가 그 일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용감한 지점에 머무르는 동시에 어리석은 짓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나를 돕..
자본은 어떻게 출판을 살해했는가?(번역) 전자책 시대로 접어든 이후, 사람들은 끊임없이 출판에 대해 질문해 왔다. 이제 서점은 작가들 또는 예비 작가들에게 출판사 없이 독자들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한다. 작가들은 자신이 쓴 작품을 정해진 플랫폼에 올리고, 메타 데이터를 입력한 후, 클릭 한 번으로 수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작품은 출판을 거절당하거나 수정을 요구받는 등의 치욕스럽고 귀찮은 일 없이 독자들이 늘 읽기를 기다리는 드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다. 서점 역시 마찬가지이다. 출판사와 공급가와 관련한 협상을 벌이고 마케팅을 둘러싼 온갖 대립도 없이 작품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서점 영업자들은 이제 작품이 불러오는 초기 반응을 잘 살피다가 특정 작품에서 기회를 포착해 공격적 노출을 통해 매출을 극대화하..
좋은 글을 쓰려면 선인세를 먼저 받지 말라.(커트 보네거트) 국내외에서 연신 거액의 계약금에 관한 소식이 들린다. 달러로 여섯 자리 숫자니 일곱 자리 숫자니 하는 억, 억, 억 하는 꿈같은 이야기가 떠돈다. 직업상 가끔씩 그러한 오퍼에 끼어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아래 커트 보네거트의 발언은 작가와 출판사와 계약금의 관계에 대한 색다른 성찰을 요청한다. 그의 아들한테 보낸 편지에서 발췌한 부분을 옮긴 것이다. 그의 소설들처럼 역시 그의 사고는 칼끝처럼 날카롭다. 심장을 곧장 찔러 댄다. 혹시 이 글이 블로깅 된 후에는 작가들한테 계약금을 주지 않으려는 악덕 편집자로서 소문나지는 않을까?^^ 선인세로 첫 책의 계약금을 받으면서 나는 복합적인 느낌을 받았다. 우선 선인세를 받기가 아주 힘들다는 것이고, 또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주 적은 ..
책 조각가 브라이언 디트머의 작품 세계 지금 시점을 책의 역사에서 과연 전자책 혁명의 시대라고 불러도 될까? 과연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책의 역사가 어떤 운명적 전환점에 와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당장 눈앞은 흐릿해졌는데 멀리 정상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매일 각종 자료를 읽고 온갖 기기들을 섭렵해 가면서 앞날을 궁구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지만, 시도 자체가 보상일 뿐 미래는 속 시원히 보이지 않는다.책이 디지털 상품으로 바뀌면 지금까지 책을 둘러싸고 있던 프로토콜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책을 둘러싼 여러 가지 모험이 나타나면서 수많은 다양성이 갑자기 출판 안에서 개화할 것이다. 이 돌연변이 꽃들을 즐길 수 없는 이들은 요란스레 외쳐 댈 것이다. “이것은 책이 아니다.” 그러나 임계에 가까워지고 나면, 탐험가들은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