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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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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매일경제신문》 칼럼, 이번에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의 일에 대해서 써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자본의 공포 마케팅에 넘어가서 미리 체념하지 말고, 자본이 바라는 대로 미래를 상상하지 말고, 인류 전체의 행복을 생성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인공지능과 공진화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저한테는 인공지능의 자기계발(^^)보다 자본의 폭주가 더 염려됩니다. 미래의 일자리는 자본이 우리에게 나누어주는 게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가 힘을 합쳐서 우리의 일을 만드는 겁니다. 자본이 일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면, 아마 편리한 인공지능을 없애는 것보다 불편한 자본을 삭제하는 쪽이 더 미래의 행복에 좋겠죠.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토요일마다 시골로 내려가 마을사람들과 같이 『논어..
제4차산업혁명?! 코딩교육보다 차라리 교과서를 폐지하자 며칠 전 자주 이용하는 논문 사이트 첫 화면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다운로드 숫자가 가장 많은 논문 열 편의 제목에 모두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이 정도면 제4차 산업혁명은 업계의 호들갑을 넘어선 국가적 재앙에 가깝다. 학자들 공부가 편벽되면 사회 전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정부 부처는 또 어떤가. 가는 곳마다 모두 제4차 산업혁명 타령이다. 이 말만 쥐고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요술방망이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이 시대의 남근숭배다. 절대적 쾌락을 보장할 것 같아서 모두가 제사에 참여하고, 자신도 참여했다는 사실로부터 얻는 미시권력적 위안에 몸을 떠는 중이다. 초연결성에 기반을 둔 사회의 혁신은 분명히 일어나는 중이다. 누구도 이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
책 읽는 대통령 책 읽는 대통령 2017년 현재 합계출산율 1.23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과도한 양육비와 사교육비, 끔찍한 유치원 전쟁, 결혼·출산 후 여성 경력 단절… 아이 낳기 힘든 나라. 그래서 책이 있다. 2016년 OECD 주요국 어린이·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 최하위. 자살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는 대답이 어린이·청소년 5명 중 1명. 아이가 행복하기 어려운 나라. 그래서 책이 있다. 2015년 청년층(25~34세) 고등교육 이수율 세계 1위 69%. 2016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 25만6000원. 학력 없이 잘살기 곤란해 일단 대학부터 가지만, 돈 없이는 공부도 잘할 수 없는 나라. 그래서 책이 있다.2016년 청년층(15~29세) 실업률 9.8%, 2년 연속 사상 최고 ..
돌이 눈뜨는 시간을 찾아서 _ 문학은 죽음을 견디는 것이다 《중앙선데이》 칼럼, 이번에는 설악산에 가족 여행을 했을 때 느꼈던 바를 하이데거, 엘리엇, 릴케의 시를 읽으면서 곱씹어 보았습니다. 속초는 ‘신이 깃든’ 땅이다. 설악이 있고, 동해가 있다. 머무르는 것과 움직이는 것이 동시에 이 도시에서는 ‘영원성’을 얻는다. 아내와 나, 딸과 아들, 네 식구가 틈을 얻어, 산의 울림을 품었다 바다의 소리를 들었다. 스무 살, 홀로 또는 친구와 온 곳을, 서른 해 건너, 같은 나이 아이들과 함께, 아내의 손을 쥐고 걷는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숲은 고요히 쉰다./ 계곡물은 쏟아진다./ 절벽은 영구하다./ 비는 똑똑 듣는다.// 밭은 기다린다./ 샘물은 솟는다./ 바람은 거주한다./ 축복은 곰곰 생각한다. 여기에 여덟 줄로 응축된 만물이 있다. 숲은 고요하고 물은 움직..
읽기중독자로 살아가기 이번 주부터 《매일경제신문》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첫 번째 칼럼은 읽기중독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읽기중독자로 살아가기 도서관이나 박물관이나 학교나 사회단체에 강연 가는 일이 잦다. 읽기를 퍼뜨리는 일이 소명임을 받아들인 후, 일정을 가릴 뿐 비용을 따지지 않아서다. 약력을 요청받으면 첫 줄에 정성껏 적는다. ‘읽기중독자’.큰 축복을 받아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왔다. 한눈팔 겨를도 없었다. 책을 읽고 만들고 쓰는 일로 인생 전부를 채울 수 있었다. 다른 일을 한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세 권쯤 책을 읽고, 밑줄 그은 것을 가끔씩 옮겨 적고, 때때로 무슨 책을 만들까 고민하면서 살아왔을 뿐이다. 아마 앞으로도 이 일만 계속할 것이다.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영화도 벌써 포기했다. 가..
문학은 슬픔으로부터 태어났다 세월호 3주기 날입니다. 문학은 우리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중앙선데이》에 4주마다 한 번씩 쓰는 칼럼. 문학과 슬픔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인류 최초의 문학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친구 엔키두의 죽음을 슬퍼하는 영웅 길가메시로부터, 『일리아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하는 영웅 아킬레우스로부터, 「공무도하가」는 백수광부과 그 처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여옥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문학의 기원에는 슬픔이 있습니다. 문학은 슬픔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문학은 슬픔으로부터 태어났다 날이 풀렸다 싶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집 앞 냇가를 걷는다. 새벽 첫 빛에 어슴푸레 반짝이는 물살들. 물결이 가볍게 뒤척일 때마다 몸속에서 물이 함께 출렁인다. 푸석한 삶을 견디다 못해 물소..
인간이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중앙선데이》에 연재하는 에세이. 이번에는 터키의 소설 『살모사의 눈부심』을 가지고 권력에 중독된 ‘괴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채 사랑을 모르는 채로 자라서 황제가 된 소년은 전횡을 일삼다, 정변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 간신히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었던 무스타파 1세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가져다 쓴 작품입니다. 『길가메시 서사시』와 같이 읽으면 좋을 듯해서, 조금 고쳐서 아래에 옮겨 둡니다. 한 소년이 있다. 어린 시절, 잔혹하고 무참한 장면과 마주친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형제가 목에 올가미가 걸린 채, 허공에 발길질을 하다 속절없이 스러지는 것을 보았다. 형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율법에 따라 집안 형제들을 모조리 목 졸..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중앙선데이》에 4주에 한 번씩 문학 에세이를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대규모 몰락과 전락의 시절을 맞이해서 ‘리어왕’ 주제를 변주해 보았습니다. 삶이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치는 전락의 고통 없이 어떤 인간도 자신의 참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 밑바닥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사람만이 삶을 올바로 살아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권력의 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들이 줄줄이 떨어지는 계절에, 문득문득 떠오르던 것들을 가볍게 적어 보았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리어는 행복했다. 브리튼 왕국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였다.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고, 아름다운 딸도 셋이나 있었다. 왕국을 세 딸에게 나누어준 후, 딸들 집을 교대로 돌아다니면서 편안한 여생을 보낼 작정이었다.그러나 리어의 계획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