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적 시선에서 벗어나 다르게 살아보라”
“나는 거의 팔십 년간 글을 써 왔다. 처음엔 편지였고, 그 다음엔 시와 연설, 나중엔 이야기와 기사, 그리고 책이었으며, 이젠 짧은 글을 쓴다.”존 버거 자신의 말 그대로,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7)에 담긴 글들은 아주 짧다. 정신의 높이와 넓이는 여전히 충분하지만, 육체가 오랜 긴장을 더 이상 축적하지 못하는 말년의 글이다. 존 버거의 글들은 소박한 언어로 자유를 향한 정치적 격렬함을 표출하고, 간결한 어조로 땅에 일구며 살아온 인류의 지혜를 온축할 줄 알았다. 그 경지가 한층 깊어진 것일까. 이 에세이들은 행들과 밑줄이 나란한 기적을 연출한다. 어쩌면 지난 1월 2일, 사망 소식을 접한 후이고, 이 책이 마지막 에세이집으로, 더 이상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안타..
마케팅 4.0 시대의 출판
최근에 출간된 『필립 코틀러의 마켓 4.0』(길벗, 2017)은 전통적 관점에서 시장을 대하던 사람들한테 엄청난 충격을 준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지점은 코틀러 자신을 마케팅 이론의 살아 있는 전설로 자리 잡아 준 상징 자산인 ‘시장 세분화와 목표 고객 설정, 브랜드 포지셔닝과 차별화’(STP), ‘제품, 장소, 가격, 프로모션’(4P)으로 이루어진 마케팅 믹스와 이에 기반을 둔 판매 전략의 유효성을 부인해 버렸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마케팅 전략은 고객 가치의 창출과 획득, 마케팅 믹스를 통한 고객 가치 전달을 중심에 두고 있다. 코틀러 자신이 정리한 이 전략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정을 거듭하면서 전 세계 마케터들의 교과서 역할을 해 왔던 『코틀러의 마케팅 원리』(제15판, 시그마프레스, 2015)에 ..
‘작가의 수지’로부터 편집자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작가의 수지’로부터 편집자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봄에 순천향대와 동덕여대에서 시작하는 출판 강의에 소개할 책을 몇 권 추가했다. 제럴드 그로스의 『편집의 정석』(이은경 옮김, 메멘토, 2016), 스가쓰게 마사노부의 『편집의 즐거움』(신현호 옮김, 아이콘북스, 2016), 모리 히로시의 『작가의 수지』(김연한 옮김, 북스피어, 2017), 안정희의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이야기나무, 2015) 등이다. 네 책 모두 훌륭한 점이 있지만, 이중에서 학생들이 가장 신나게 읽을 책은 아마도 『작가의 수지』일 것이다. 돈이야말로 사람을 일단은 들뜨게 하는 법이니까.작가 모리 히로시는 『모든 것이 F가 된다』(박춘상 옮김, 한즈미디어, 2015)로 국내에도 이름이 조금은 알려진, 그러나 일본에서는 2010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