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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본은 ‘작은 책’이 아니다 문고본은 ‘작은 책’이 아니다_ 인간과 책이 만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때 “책의 세상 자체는 충분히 혁신적이다.”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미디어이지만, 그래서 아무런 변화 없이 이어져 내려온 것 같지만, 출판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책의 혁신이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출판의 위대한 선배들은 다른 분야에서 이룩한 첨단 기술을 수용함으로써 책과 인간이 만나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모험을 포기하지 않았다.출판의 혁신은 대부분 내용과는 별 관련이 없다. 출판의 위기가 일상화되면서, 참신한 콘텐츠와 새로운 기획의 출현을 중요한 대안인 것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독자를 놀라게 하는 콘텐츠는 항상 열광을 불러오므로, 하루를 살아가는 개별 출판사의 차원에서 볼 때에는 그다지 잘못된 이야기만도 아니다..
책 읽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_ 차기정부 출판산업 진흥을 위한 국회 토론회 보고 어제(4월 5일) 차기정부 출판산업 진흥을 위한 국회 토론회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의 사회를 맡아서 진행했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김민기, 유은혜, 소병훈이 주최하고, 여러 출판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인회의, 학습자료협회,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한국기독교출판협회, 한국아동출판협회, 한국학술출판협회 등이 공동으로 주관한 행사였다.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렸는데, 이런 대규모 공적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경험은 별로 없어서 불의의 사단이 있을까 해서 조금은 긴장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마친 듯하다. 지난 1월 돌아가신 민음사의 박맹호 회장께서는 “책은 인간의 DNA”라고 한 바 있다. 책에 간직된 인류 정신의 정화야말로,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물려받고 물려주어야 하는 영원한..
[낭독 TV] 인간과 책이 만나는 새로운 방법 ‘낭독TV’를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은수입니다. 인간과 책이 만나는 새로운 방법, 모바일 기반의 슬로 텔레비전 ‘낭독TV’를 시작합니다. 인간과 책이 만나는 방법은 무궁합니다.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하는 ‘묵독’도 있고, 책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정담’도 있고, 청중을 앞에 두고 저자 등이 책 이야기를 전하는 ‘강연’도 있습니다. 감명 깊게 읽은 구절을 함께 나누거나, 카드 뉴스를 만들어서 흥미롭게 전달하거나, 서평을 써서 돌려 읽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출판 환경은 책과 인간의 연결을 확장하는 동시에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모바일 콘텐츠 소비가 사회 전체에 확산되면서, 인간과 책을 연결하는 전통적 수단들은 점차로 혁신을 요구받는 중입니다. 특히, 데이터를 서로 교환하는 비용이 무료에 가깝게 떨어짐..
편집자로 사는 것, 역시 좋은 일이네요 편집자로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이 무엇일까요. 오래전 이 일을 시작한 이래, 저자로부터 첫 원고를 받아서 읽는 일이야말로 저한테는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우편으로 도착한 봉투를 뜯어서 원고 뭉치를 꺼내거나 전자 우편에 딸린 첨부 파일을 클릭하는 순간은 감격과 기대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죠. 회사를 나온 후, 출판에 관련한 여러 일을 해 왔고 앞으로도 많은 일을 해가겠지만, 그 어떤 일도 첫 원고를 들여다보는 기쁨을 대체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아직 텍스트 덩어리에 지나지 않기에 첫 원고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반적 얼개는 당연히 잡혀 있지만, 전체가 튼튼하도록 단단한 구조를 세우고, 구체적인 세부를 만지고, 새로 넣을 것과 굳이 뺄 것을 고민하는 일을 편집자가 어떻게 해 내느냐에 따라 ‘책’의 모..
[21세기 고전] 그래도 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 《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21세기 고전’. 이번애는 이현수의 『신기생뎐』을 다루었습니다. 역사의 밀물에 떠밀리고 있는 근현대사의 잊힌 삶들에 주목하는 이 작가의 성취는 아주 높습니다. 언어의 세밀화가로서 그녀가 그려내는 세계는 정말 풍요롭죠. 이 작품을 비롯하여 『토란』(문이당, 2003), 『나흘』(문학동네, 2013) 등은 독서공동체에서 같이 읽고 이야기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군산 부용각. 빼어난 노래와 신명나는 춤을 빌미로 여자들이 사랑을 사고파는, 그러다 사랑을 하기도 잃기도 하는 기생집이다. 이현수의 『신기생뎐』의 무대다. 주요 주인공은 넷이다. 소리기생 오 마담, 부엌어멈 타박네, 춤기생 미스 민, 오 마담을 스무 해 동안 외사랑하는 박 기사. 연작소설의 화자를 이루는 사람마다 사연이 절..
독고준, 정우, 전혜린, 전태일, 또 다른 삶을 꿈꾸다 《문화일보》 서평. 이번에는 박숙자 선생의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푸른역사, 2017)를 다루었습니다. 『속물 교양의 탄생』(푸른역사, 2012)에 이어서 이번에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독고준, 정우, 전혜린, 전태일, 또 다른 삶을 꿈꾸다 박숙자,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푸른역사, 2017) 읽으면서 가슴이 찢겼다. 때때로 울컥하기도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고, 늙으신 어머니가 겹쳤다. 평생을 노동으로 자신을 증명했던 아버지는 ‘죽지 않은’ 태일이었고, 공장에서 ‘다행히’ 정년을 한 어머니는 상경하지 않은 영자였다. 달동네에서 자라 문학을 하고, 또 책을 만들며 살았던 나 자신은 이 책에서 다룬 준과 정우와 혜린의 정신적 파편이자 후예였다.준은 『광장』의 독고준이고, 정우는..
바람과 물의 언어로 기록한 우포늪의 풍경 손남숙의 『우포늪, 걸어서』(목수책방, 2017)는 물과 바람의 언어로 쓰여 있다. 냉정한 과학적 탐구의 언어는 아니다. 차라리 은근한 사랑의 언어라고 부르고 싶다. 우연히 펼친 후 몇 줄 읽다 보니, 마음이 책 속으로 조금씩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연이어서 고리가 걸리는 느낌이 읽기를 재촉하면서 어느 순간 마지막까지 이르렀다. “물은 서두르지 않는다. 바람과 햇빛과 조응하면 물풀이 일렁이는 늪가를 부드럽게 간질이고 새들의 발가락을 꼼꼼히 살핀다.” 이런 문장은 사랑스러워 책 속 어딘가에서 한 줄 더 찾아내고 싶은 기분이 든다. 독자의 머릿속에 공감각을 일으키는 아주 가벼운 시적 문장들.우포늪은 국내 최대의 자연 습지다. 저자 손남숙은 근처의 창녕에서 나고 자랐다. 지난 10년 동안 그녀는 우포늪..
인간이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중앙선데이》에 연재하는 에세이. 이번에는 터키의 소설 『살모사의 눈부심』을 가지고 권력에 중독된 ‘괴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채 사랑을 모르는 채로 자라서 황제가 된 소년은 전횡을 일삼다, 정변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 간신히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었던 무스타파 1세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가져다 쓴 작품입니다. 『길가메시 서사시』와 같이 읽으면 좋을 듯해서, 조금 고쳐서 아래에 옮겨 둡니다. 한 소년이 있다. 어린 시절, 잔혹하고 무참한 장면과 마주친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형제가 목에 올가미가 걸린 채, 허공에 발길질을 하다 속절없이 스러지는 것을 보았다. 형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율법에 따라 집안 형제들을 모조리 목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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