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960)
밀란 쿤데라 전집을 펴내면서 다음 주에 밀란 쿤데라 전집 열다섯 권이 드디어 완간된다. 1988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계간 《세계의 문학》에 실린 이래 스물다섯 해 만이다. 프랑스어권 바깥에서는 세계 최초로 출간되는 전집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전집을, 그것도 외국 작가의 전집을 간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미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플레야드판 전집이 완간된 데다, 밀란 쿤데라가 19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에, 더 나아가서 한국 문화에 끼친 공헌을 생각하면 그리 무리한 것도 아니다.밀란 쿤데라의 문학은 처음 번역 출판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지금 글을 쓰는 한국의 어떤 작가도 결코 그에게 생각의 물줄기를 대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때로는 직..
모파상 외,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고전소설 1』(숨비소리, 2006)을 읽다 지난 한 달 동안 모파상 외,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고전소설 1』(곽상환, 신선미, 전혜정, 최낙준 옮김, 숨비소리, 2006)을 읽었다. 이 책은 호손, 모파상, 푸슈킨, 로렌스, 고리키 등이 쓴 전 세계 고전 단편들을 모아서 엮은 것으로 작품마다 청소년을 위해 선생님들이 쓴 간략한 해설이 덧붙인 책이다. 어른이 읽기에는 다소 싱거운 감이 있지만, 이런 소설에 처음 입문하는 학생들이 읽기에는 괜찮은 책이다.이 책은 2002년 모두 여섯 권으로 나왔던 같은 제목의 책을 두 권으로 묶어서 다시 펴낸 책의 첫 권이다. 청소년 책답게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자아에서 세계로 관심이 점차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주제별로 분류해 작품들을 싣고 있다. 각 장의 주제는 나 ――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모리스 센닥이 그린 독서 관련 포스터들 작년 5월 모리스 센닥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그가 만들어 낸 하나의 신기한 세계가 동시에 현실 속에서 함께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 『괴물들이 사는 나라』(강무홍 옮김, 시공주니어, 1994)를 접했을 때의 충격은 그만큼 강렬했다. 『백설공주』나 『알라딘의 램프』와 같았다. 머릿속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어 다시는 떼어내지 못하도록 내 일부가 되었다. 이후 아이들이 태어나 여러 차례 읽어 주면서 아이들 역시 그의 책이 불러들인 기이한 세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의 책은 이미 고등학생이 된 우리 아이들이 아직도 소유권을 놓고 애지중지하는 인생의 보물이 되었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또 다른 세계가 필요한 것이다. 이 재미없고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현실 말고 또 다른 세계가 하나쯤 있다는 것..
피츠제럴드의 『아가씨와 철학자』(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를 읽다 벼르던 일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두 주 전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양억관 옮김, 민음사, 2013) 교정을 끝마치고 난 후, 기왕에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김욱동 옮김, 민음사, 2003) 말고 피츠제럴드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나온 『피츠제럴드 단편선 1』(김욱동 옮김, 민음사, 2005)와 『피츠제럴드 단편선 2』(한은경 옮김, 민음사, 2009)를 읽으려고 꺼내 놓았다가, 곧 마음을 바꾸어서 피츠제럴드의 첫 번째 단편집으로 예전에 편집 참고용으로 사 두었던 『아가씨와 철학자』(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를 이번 주 내내 읽었다. 가장 거칠고 미숙했던 시절의 피츠제럴드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이 나온 것은 1920..
정명환의 『인상과 편견』(현대문학, 2012)을 읽다 사유의 대가와 함께 출근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아침 풍경은 정신의 빛으로 가득 차 역동적으로 꿈틀거리고, 세상은 그 이면의 깊이를 드러내면서 매혹한다. 밤의 허무에 쫓겨 한껏 느슨해져 버린 마음은 문자의 숲들 속에서 휴식과 함께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그런 뜻에서 지난 두 주일 동안 정명환 선생과 함께 출근한 것은 정녕 현명한 일이었다. 연구에서 사상에 이르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현실의 뜨거운 망치질로 단련받지 않은 쇳덩이가 날카롭게 벼려지는 법은 없다. 사회과학자들이 각종 위원회나 연구소 등을 통해 현실에 직접 참여하고, 인문과학자들이 출판사를 기웃대면서 각종 잡지에 정열을 다하는 것은 이를 알기 때문이다. 나는 연구 그 자체의 논리와 윤리를 존중하지만, 현실에 참여해 보지 않은 연구자의 말에 귀..
읽기에 헌신하는 삶을 위한 세 가지 방법 그러니까 스페인 여행 이후, 나는 조금 더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말라가의 푸르른 지중해 바다 앞에서, 문득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는가 하는 물음이 떠올랐는데, 여행 내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읽기만이 내 인생의 유일한 근거였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읽는 것이 나의 도약대이자 진지이고 무덤이어야 하는 것이다. 편집자의 삶이란, 읽고 쓰는 일에는 오히려 지쳐 있기 마련이어서 자칫하면 진행하는 책 외에 자발적 독서가 증발하는, 읽기의 사막에 사는 데 익숙해지기 쉽다. 책을 둘러싼 수많은 전략과 전술의 난무가 읽기의 순박한 즐거움을 앗아 버리는 역설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 정신의 정화인 책을 다루는 편집자가 정신적 공허에 시달리는 기묘한 삶의 아이러니.스페인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앞으로..
왜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는가? ― 굿리즈(Goodreads)의 조사 발표를 보고 왜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는가? ― 굿리즈(Goodreads)의 조사 발표를 보고 지난 7월 9일 세계 최대의 소셜 독서 사이트 굿리즈(Goodreads)는 회원들이 올린 글을 분석해서 책 읽기를 중간에 포기하는 현상에 대한 인포그래픽 하나를 발표했다. 나는 언젠가 이 인포그래픽의 내용을 자세히 살피려고 에버노트에 저장해 두었는데, 오늘 마침 미국의 다른 사이트에서 이 인포그래픽을 소개한 것을 보고 시간을 내서 블로그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인포그래픽은 비록 미국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 성향은 아마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자료가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 미국 출판계를 부러워하면서 아래에 내용을 정리해 둔다.(여기서 다루어진 책들은 국내 출간 도..
윌리엄 포크너의 드로잉을 만나다 한국 문학 사정에 밝은 사람이라면,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화가라고 하면 서슴없이 『초식』(문학동네, 1997)의 작가 이제하와 『무진기행』(민음사, 2007)의 작가 김승옥을 우선 떠올릴 것이다. 김승옥은 뛰어난 감각으로 민음사 세계시인선 초판(1974)의 표지를 비롯하여 수많은 디자인 작품을 남겼으며, 이제하는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표지에 나오는 시인 캐리커처 초상을 시인 김영태와 나누어 맡아 한 시대를 풍미했다. 노벨상 수상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김명주 옮김, 민음사, 2003), 『압살롬, 압살롬』(이태동 옮김, 민음사, 2012), 『성역』(이진준 옮김, 민음사, 2007), 『소리와 분노』(공진호 옮김, 문학동네, 2013) 등의 작품을 통해서 고향인 미시시피 주의 자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