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출판이나 도서관 연구는 대상에 고착되어 있다. 도서관을 공공 건물 중심으로 생각하거나 출판을 물리적 책(종이책) 중심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서사 재료나 구현 공간보다 중요한 게 있다. 행위이다. 기억하고 쓰고 고정하고 장식하고 유통하고 팔고 사고 읽고 보관하고 배치하고 자랑하고 빌려주고 훔치는 것.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체로 나타나는 이런 욕망 행위 속에서 출판과 도서관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현재보다 더 출판과 도서관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도서관은 건물 자체와 큰 상관이 없다. 미국 이주 초기 마을 도서관은 책 상자 하나로 운영됐다. 책 모으기와 자랑하기가 도서관의 그 핵심 정체성이다. 10권이든 1000권이든 1000만 권이든 책을 모아서 스스로 뿌듯해하거나 남한테 보여주고 자랑하는 순간 도서관이 출현한다. 물론 모으기엔 지식과 정보의 독점욕 또는 지배욕이 포함된다.
능력 있으면 책도 더 모으고 건물도 짓는 것이고, 무료로 소수에게만 빌려줄 수도 있고, 유료로 밀리의서재처럼 다수 전자책을 마련해 회원 모아 빌려줄 수도 있다.
공공 도서관처럼 왕이나 국가가 돈을 내고 ‘자격 있는’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모델은 역사적으로 150년 정도 되는 우발적 현상이다. 그전에도 도서관은 때론 서재의 형태 등으로 존재했다.
출판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옵셋 인쇄과 자동제본 방식의 기계식 대량 생산 모델은 19세기에나 일반화했다. 우리는 20세기 초에 퍼졌으니 100년 정도 된 셈이다. 이전에도 책은 있었고, 다양한 형태로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됐다.
서점은 공간이 아니라 책 거간 및 판매 행위 자체다. 고정되지 않고 다양하게 흐른다. 요즘 인스타그램이 서점화하는 걸 보면 흥미롭다. 북클럽이나 유튜브를 활용해 출판사가 서점이 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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