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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들

출판사의 첫 책

『출판사의 첫 책』(출판사 핌, 2024)은 작가 송현정이 만난 열 군데 출판사 이야기를 다룬다. 대부분 일인 출판에 가까운 출판사이지만, 이야기장수처럼 대형 출판사의 임프린트인 곳도 있고, 골든래빗처럼 처음부터 주식회사 형태를 갖춘 곳도 있다. 창업 후 꾸준히 성장을 이룩한 곳도 있고, 좋아하는 책을 내는 데 만족하는 곳도 있다.

출판 창업 관련 책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첫째, 이승훈의 『내 작은 출판사 시작하기』(북스페이스, 2017)나 신동익의 『독립출판 제작자를 위한 대형서점 유통 가이드』(프랭크유통연구소, 2019) 같은 창업 실무 안내서. 둘째, 이현화의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유유, 2020)이나 박지혜의 『날마다, 출판』(싱긋, 2021) 같은 일인 출판사 대표가 쓴 체험적 창업론. 셋째, 여러 창업자의 인터뷰를 모아 펴낸 인터뷰집이 있다.

『출판사의 첫 책』은 『출판 창업』(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6), 『지금 여기 독립출판』(프로파간다, 2013), 『우리, 독립출판』(북노마드, 2016) 등과 같이 세 번째 갈래에 속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한 작가가 썼다는 점에서 와타나베 미치코의 『일본의 소출판』(김광석 옮김, 신한미디어, 2000), 고지마 기요타카의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 – 출판 정신으로 무장한』(박지현 옮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7), 니시야마 마사코의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김연한 옮김, 유유, 2017)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 나는 출장을 떠나거나 여행을 갈 때마다 소출판사 이야기를 담은 이 책들을 반드시 가방에 넣어서 떠나곤 했다.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그때마다 편집 일에 영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첫 책에서 자기 생각을 펼쳐낸 레모, 편않, 딸세포, 출판사 핌, 한바랄, 돌고래, 이야기장수, 호랑이꿈, 에디토리얼, 골든래빗 대표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각자 출판사를 창업한 동기는 달랐으나, 좋아하는 책을 고민하고, 독자에게 필요한 책을 펴내며, 홍보와 마케팅에 마음을 다하는 모습은 이전의 다른 책들과 똑같았다. 험난한 세상에서 누군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서 거기에 헌신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무릎을 꿇리는 온갖 고난과 좌절에도, 그러니까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 표현을 빌리면 “눈이 짓무르도록 우는 날들” 속에서도 스스로 기운 나게 하는 법을 아는 이들은 확실히 빛이 난다.

“가고자 하는 방향을 놓치지만 않으면”(그러나 이게 너무 어렵다), “다른 사람들 마음에 닿는”(김희진 돌고래 대표) 기적 같은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사례가 그걸 잘 보여준다. 작은 출판사의 세계는 단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그 기적을 믿는 사람에게만 비로소 열리는 듯하다. 전문적으로 말하면, 버팀의 힘을 믿고 꾸준히 브랜드를 구축하면 소비자는 언젠가 생겨난다. 브랜드가 최상의 마케팅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 일을 선연한 언어로 설명할 힘은 소출판사일수록 더욱더 필수적이다. 프랑스 문학 전문 출판사인 레모, ‘긴 호흡의 저널리즘’을 실천하고 싶다는 딸세포, 동화에세이나 아제세이 같은 새로운 글쓰기 양식을 보여주고 싶다는 출판사 핌, 책과 출판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져가는 출판 공동체 편않의 언어는 흥미로웠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그 일을 내가 한다면……’ 같은 질문이 일어선다. 거기에서 자기 이야기를 발견하는 독자들도 분명히 생겨날 것이다.

돌고래, 이야기장수, 호랑이꿈, 에디토리얼, 골든래빗 등 기성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훈련받고 단련된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해야 할 일, 실제 할 수 있는 일을 더욱더 선명히 구분하는 듯하다. 이연실 대표가 “현실을 몸으로 살아 내는 사람의 이야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란 자기 인식과 함께 “‘유일한 책’을 지향하는 편집자”로 자기 업을 정의하는 건 울림이 있었다. 인생 에세이를 주로 펴내는 이야기장수의 지향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내고 싶은 책과 시장 현실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좁은 길이 있음을 믿고, 그 길을 꾸준히 걷는 것만으로 출판사는 좋아진다. 버티고 견디면서 그 길을 걸어갈 체력만 있다면 말이다. 소출판사는 날씬한 몸매로 가볍게 걸을 수 있기에 자기 확신과 시장을 결합하는 데 무척 유리한 편이다. 대다수 출판사 대표가 일흔 살까지를 내다보는 장기 시야를 유난히 강조하는 건 이 때문이다. 에디토리얼 최지영 대표는 말한다. “일 년에 네다섯 권을 발행하는 것이 혼자 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어요. 제가 일흔 살까지 일하면 앞으로 몇 권의 책을 내게 될지 간단히 계산되는데, (중략) 그 과정에서 의미를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요.” 그 의미가 과학책에서 생겨나길 바라고 애쓰는 것, 그것이 에디토리얼이 걷는 먼 길일 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출판에 대한 각자의 다짐을 읽는 일에도 마음이 끌렸지만, 여러 해 출판을 거듭하면서 쌓인 작은 노하우를 발견하는 기쁨도 그에 못지않았다. 가령, 레모의 윤석헌 대표는 말한다. “‘두꺼운 건 안 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긴 시간과 큰돈을 들여 얻은 교훈이죠.” 원가 관리야말로 물건 만드는 사업의 기본이라는 점은 당연하지만, 그 행간의 사정이 생생했다. 이는 출판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이 우선해 알아야 할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언론 서평 등 책이 팔릴 만큼 충분히 발견성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글항아리가 보여주듯 책은 벽돌책이 더 유리하다.(이는 시대정신을 꿰뚫는 감각, 언론 생리에 대한 이해 없이는 어렵긴 하다.)

딸세포 김은화 대표의 말도 와 닿았다. “편집자마다 잘하는 일이 다를 테지만, 저는 정확한 타기팅이 장점인 편집자인 것 같아요.” 독자에게 소구하는 지점을 정확히 찾아내고, 이를 디자인으로 구현하고, 텀블벅 펀딩, 언리미티드 에디션 참여 등을 통해서 이를 구현하는 과정의 리듬이 (가려진 우여곡절과 상관없이) 깔끔해 보였다. 생계와 직접적으로 결부되지 않은 독립출판 형식이라면 모범적일 테다. 편집자 전문성을 이용해 글쓰기 교실이나 그림책 창작 강좌를 열어 예비 저자들을 모으고, 이를 바탕 삼아 출판사 창업에 나선 출판사 핌이나 호랑이딸의 사례도, 창업을 고민하는 편집자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만하다.

많은 소출판사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 실린 출판사들도 주로 홍보나 마케팅에 고민이 크다. 한 해 수많은 책이 쏟아지고, 서점 진열만으론 발견성을 확보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이기에 당연하다. 우수 사례 발표 같은 관련한 콘퍼런스도 매년 열린다. 호랑이딸 신혜영 대표의 말은 어린이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알겠지만) 꼭 해야 할 마케팅 활동을 환기한다. “그림책은 학교나 도서관에 납품되고 수업에 활용되는 것이 판매량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사서, 교사, 그림책 활동가를 만나는 게 중요해요. 같은 맥락으로 독후 활동지도 유행하고 있죠. 독후 활동지는 편집자들이 기획해서 만들기도 하지만 원고 청탁을 하기도 해요.”

그러나 사례는 대개 그 출판사의 사례에 그치기 쉽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사례, 가령 서점 이벤트, 북펀딩, 북토크, 페스티벌 참여, 홍보 동영상 등을 왜 하는지, 어떻게 해야 내 마케팅 활동에 통합해서 지속해서 내 브랜드 강화에 이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이를 체화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사례를 읽어도 그 순간뿐이다. ‘나도 한번 해 볼까’ 정도가 전부 아닐까.

차라리 최지영 대표의 말처럼, 자기가 잘하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규모 출판사라면 꾸준한 독자가 있는 분야에서 좋은 책을 잘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마케팅일 수밖에 없을 거예요. 북클럽이나 공식 서평단을 모집하여 지속해서 운영하는 게 아니라면 그때그때 독자를 이용한다는 인상을 주는 마케팅 방식은 자제하는 편이에요. 소수라도 우리 출판사 책을 눈여겨보시는 분들을 북마킹해서 소소하게 책을 보내 드리고 있어요.” 

좋은 아이디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좋은 시스템이다. 이런 의미에서 골든래빗 최현우 대표의 말은 출판 마케팅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반드시 읽히고 싶다. IT 관련 실용서를 주로 펴내는 출판사답게 무슨 책을, 어떻게 펴내야 하는지, 브랜드를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지, 조직은 어떻게 갖추어야 하는지, 마케팅 활동의 기본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이처럼 투명하고 명료한 언어로 자기 회사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는 극히 드문 것 같다. 모셔서 유료 세미나 같은 걸 한 번 열었으면 좋겠다.

(1) 내가 마케팅한 결과들이 계속 내 홈페이지에 쌓이고, 내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트래픽이 온라인 서점으로 이동해서 구매가 이루어지거든요. 그런데 대부분 일인 출판사에 홈페이지가 없어요. 내가 존재해야 세상도 있는 것처럼 내 홈페이지가 있어야 나머지 생태계가 구축되는 것인데, 생태계의 핵심 사슬이 빠져 있기에 마케팅이 안 되는 것이죠.

(2) 매일 정기적으로 하는 마케팅을 이길 수 있는 건 없어요. 대개 유명 유튜버는 적어도 일주일에 하나씩 콘텐츠를 올리죠. 유튜브는 라이프 사이클이 긴 편입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은 스물네 시간이 지나면 노출이 안 됩니다. 그래서 스물네 시간에 하나씩은 게시글을 올려야 해요. 더 부지런하다면 열두 시간에 하나, 가능하다면 하루에 세 개씩 게시물을 올리는 것이 베스트죠. 이것이 마케팅의 첫걸음입니다. 기본을 하지 않으면 출판사로 살아남을 수 없어요.

(3) 모객이 가능한 인원은 회사가 가진 마케팅 채널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 회사의 마케팅 채널과 접촉하는 인원이 천 명이라면 그중 3%인 30명을 동원할 수 있을 겁니다. 만 명이라면 300명을 동원할 수 있겠죠.

송현정의 『출판사의 첫 책』엔 이처럼 출판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크고 작은 팁이 넘쳐난다. 출판을 이야기할 때, 열정이나 신념 같은 모호한 말이 넘쳐나는 것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른 사례들을 모아서 두 번째 책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조심스레 품어 본다.

송현정, 『출판사의 첫 책』(출판사 핌,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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