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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읽기에 대하여

책을 읽으면 머리가 좋아질까

(1)

생물학적 의미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은 약 2만 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조상들도 우리만큼 똑똑했다. 우리의 뇌는 여전히 구석기 시대의 (현대적) 뇌와 같다.



(2)

변화한 것은 뇌가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경험을 축적하고 전달하며 학습하고 활용하는 문화적 역량이다. 기호와 문자의 발명은 인간과 동물의 문화적 역량을 가르는 결정적 사건이다.



(3)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현재 인간 뇌의 일반적 배선 상태는 구석기 인간의 일반적 배선 상태와 다르다. 문화적 역량은 인간 뇌의 물리적 배선 상태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4)

인간은 자기 규율을 통해서 집단 및 주변 환경에 더 적응하기 쉬운 방식으로 자신을 길들인다. 뇌를 문화에 맞추어 길들이는 것은 인간 지능 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5)

우리의 생물학적 뇌는 우리 조상들에 비해 다르지 않으나 우리의 문화적 뇌는 우리 조상들과 완전히 다르다. 성인이 될수록 우리는 세계를 더 깊게, 더 넓게, 더 고차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6)

우리 문화적 뇌의 고차적 인지 능력 형성 과정에 책은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현재 인류는 책 말고 이러한 인지 형성을 대체할 다른 일반적 수단을 갖지 못한 듯이 보인다. (불립문자[명상], 예술 또는 장인 수업 같은 도제식 교육으로도 효율은 낮으나 가능한 듯은 하다.)



(7)

인생의 어느 시기에 독서로 문화적 뇌를 강화하는 과정을 어떤 식으로든 겪지 않고 깊은 사고가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답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에 대해 잘 모른다.



(8)

독서를 하지 않으면 섬세한 언어 사용은 어려워 보인다. 상징과 비유로 가득한 시 읽기나 고급 문학 읽기는 수리 사고나 알고리즘 사고 등을 잘해도 잘 못 한다.



철학 같은 데서 쓰이는 추상적 언어 사용도 쉽지 않은 듯하다. 이는 수학처럼 별도 언어를 쓰니까 학습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것 같다.



시간 사고는 인간 사고의 한 특징이므로 역사나 전기 읽기는 상대적으로 수용이 쉬운 듯하다.



(9)

문학이나 철학 같은 특수한 언어 사용법을 소수 엘리트 말고 대중 전체가 학습해야 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우리는 현재 이 질문 앞에 서 있는 듯하다.

 

인간의 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