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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읽기에 대하여

글쓰기는 우리를 바꾼다

『뉴욕 3부작』의 세 작품에서 화자는 모두 누군가를 추적하고, 흔적을 관찰하며, 그 결과를 꼼꼼하게 공책에 기록한다. 

글쓰기는 잊힌 자아를 환기할 계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처음에 타인의 관찰로 시작된 기록은 사건 진행과 함께 묘하게 자신과 세계에 대한 기록으로 변해 간다. 

블루의 말처럼, “길 건너에 있는 블랙을 염탐하는 일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저 남을 지켜보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켜보는 일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현재만 존재하는 뉴욕의 속도에 포섭된 후, 블루한테는 한순간도 자신을 돌아볼 때가 없었다. 블루는 말한다.

“그는 지금껏 한 번도 자신의 내면을 이렇게 오래도록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내면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알았지만, 지금까지는 그저 미지로, 자신조차 아직 탐험해 본 적이 없는, 알 수 없는 부분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한 그는 생각의 표면만을 따라 활동해 왔다.”

뉴욕의 속도에 맞추어 분주하게 사는 일을 멈추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에서 내면을 돌보기 시작하자, “전에는 미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씩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매일같이 방을 지나가는 빛살의 움직임”이나 “자신의 심장 고동, 숨소리, 눈의 깜박임” 등이다. 그리고 “이런 표현들이 차츰차츰 뭔가 의미를 띠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서서히 블루는 블랙의 관찰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비밀을 탐색하는 탐정으로 변해 가고, 블랙의 관찰 기록은 서서히 블루 자신에 관한 고백록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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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풍월당에서 발행하는 무크 <풍월한담>에 쓴 글의 한 부분입니다. 

이번에는 폴 오스터의 매력적인 작품 『뉴욕 3부작』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에요. 읽기(관찰)와 쓰기(기록)는 인간을 바꿉니다. 

ps. 그나저나 풍월당에서 같이 작품 읽던 날들이 까마득하네요....ㅜㅜ 팬데믹 끝나면 다시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