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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민주주의는 가장 좋은 사고법이다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신비한 기관이다.

단순한 세포로 이루어진 뇌가 어떻게 복잡한 생각과 고차적 지능을 생성하는지 아직 우리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생각의 물리적 기초는 뇌, 특히 포유류에만 존재하는 신피질인 만큼, 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이에 맞추어 사는 건 우리 자신을 알고, 삶의 지혜를 얻는 좋은 지름길 중 하나다.

『천 개의 뇌』(이충호 옮김, 이데아, 2022)에서 미국 신경과학자 제프 호킨스는 우리 뇌가 본래 민주적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막 태어났을 때, 우리 뇌는 보고 듣고 배우도록 조직은 되어 있으나, 실제로 아는 건 하나도 없다. 태어나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느냐에 따라서 우리 뇌는 다르게 발달한다.

우리 뇌가 세상을 배우는 방식은 독특하다. 뇌는 구체적 사물이나 사건을 하나하나 일일이 배우진 않는다.

처음에는 커다랗고 네모난 종이에 작은 문자로 정보를 인쇄한 문서가 ‘신문’이란 ‘사실’을 몇 차례 학습한다. 그다음엔 비슷한 문서를 보면 신문이라고 ‘예측’한 후, 사실이면 이를 강화하고 아니면 주의를 기울여 이를 수정하는 식으로 배운다.

뇌는 모든 걸 세세히 기억하는 기억 장치라기보다 먼저 모형을 대충 만들고 이를 통해 미리, 빠르게 판단하는 예측 기계에 더 가깝다.

호킨스는 처음에 뇌가 배워 획득하는 판단의 ‘기준틀’을 ‘세계 모형’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세계 모형’을 배우고, 이 모형을 바탕으로 예측하고, 체험을 통해 모형을 끝없이 고치면서 살아간다.

예측이 자주 틀리면 사는 게 점차 힘들어지고, 포식자를 친구로 오인하는 경우처럼 몹시 운이 나쁘면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좋은 세계 모형을 보유하는 것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의 흔한 착각과 달리, 우리 뇌가 보유한 세계 모형은 하나가 아니다. 뇌의 전 영역은 각기 다른 경험을 통해 각자 다른 세계 모형을 만든다.

가령, 시각 영역과 청각 영역의 모형이 다르고, 촉각 영역과 후각 영역의 모형이 또 각각 다르다. 추상적 사고나 신념 등을 처리하는 모형도 따로 있다. 눈은 속지만 귀나 코나 혀끝은 속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이고, 때때로 우리가 낡은 가치와 새로운 감각 사이의 혼란에 빠져 갈등하는 이유이다.

한마디로, 뇌는 하나가 아니다. 뇌는 서로 다른 세계 모형을 갖춘 수천 개의 독립적 뇌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는 순간순간 이들의 합의를 통해 세상을 지각하면서 살아간다.

뇌는 언제나 민주적으로 작동한다.

우리 생각은 절대로 고정되거나 일사불란할 수 없다. 생각이란 뇌의 각 영역이 동시에 수많은 예측을 하고, 이들이 경쟁과 합의를 통해 가장 그럴듯한 진실에 이르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흔히 편견에 사로잡히고 좀처럼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뭘까.

뇌는 세상을 직접 감지하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온갖 지식을 학습하며,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만나서 입력 신호를 자꾸 바꾸지 않으면 생각은 점차 고착된다.

만날 핵심 관계자만 모여 떠들어 봐야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입력 경로를 다양화하지 않으면 뇌는 갈수록 독재자가 된다.

민주 사회에서 입력을 고정해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사람은 신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대부분 변화에 맞추어 세계 모형을 수정할 수 없는 바보에 불과하다. 이런 사람이 지도자라면 조직 전체가 침몰한다.

누구나 그 앞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보장하고, 지도자가 이를 일단 자기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을 때 사회 전체가 좋은 판단을 유지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가장 좋은 사고법이다. 뇌의 작동 원리는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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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칼럼입니다.

제프 호킨스, 『천 개의 뇌』, 이충호 옮김(이데아,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