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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금수저 연예인이 늘어나는 이유

 

1980년대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은 계급의 종말을 선언했다. 부모의 재산, 지위, 학력 등이 아이들 성공에 더 이상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오직 아이들이 갖춘 능력만이 신분 이동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짓이었다. 실제론 “부모 잘 두는 것도 능력”이라는 혐오스럽고 분노를 일으키는 말이 갈수록 현실이 되었다. 특히, 선망하는 직업, 좋은 직장에 대한 사회적 봉쇄가 심각해졌다.
『계급 천장』(사계절 펴냄)에서 샘 프리드먼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와 대니얼 로리슨 미국 스워스모어대 교수는 타고난 계급에 따라서 사회적 성공 가능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선연히 보여준다. 수많은 조사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이들은 개인 노력과 재능만으로 좋은 직업을 얻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다수가 특권층 출신이며, 그 성공은 ‘능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들이 주로 살핀 자료는 영국 노동력조사(LFS)이다. 2014년부터 영국 정부는 이 조사에 처음 출신 계급 조사를 포함했다. 조사 대상자가 열네 살이었을 때, 부모 가운데 주 소득자의 직업을 묻는 방식이었다.
저자들은 이 자료에 나타난 개인 10만 8000명, 엘리트 직종 종사자 1만 8000명의 부모 직업을 전문직 및 경영직(특권층), 중간직(중간계급), 노동계급으로 나눈 후, 자녀 직업을 살폈다. 결과는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층 출신은 의료, 법률, 금융, 회계, 건축, 방송 등 엘리트 직종에 종사할 확률이 특권층 출신보다 약 6.5배나 낮았다. 저자들은 이를 ‘계급 천장’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계급 천장은 ‘유리 천장’에서 따온 말이다. 유리 천장이 여성의 사회적 성공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의미하듯, 계급 천장은 하층 계급 아이들의 계층 이동을 방해하는 사회문화적 요인을 뜻한다.
직업별로 장벽 높이가 달랐다. 의사 자녀는 의사 될 확률이 무려 24배나 높고, 변호사 자녀는 법조인 될 가능성이 17배 높으며, 방송인 자녀 역시 방송 및 연예 계통에서 일할 확률이 12배 높았다.
반면에 엔지니어 쪽은 2배 정도로 장벽이 낮았다. 요구 역량이 비교적 투명하고, 학습하고 평가할 수 있으며, 특권적 배경을 통해 전수될 가능성이 작아서다. 이 분야의 남녀 불균형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은 기술을 배우는 게 비교적 신분 상승에 유리한 셈이다.
특권층 자녀들은 공부를 좀 못해도 괜찮았다. 똑같이 학위가 없더라도 상위 직급에 도달할 확률이 2배 이상 높았다. 하층 출신은 설령 엘리트 직업을 얻더라도 보이지 않는 차별에 좌절하기 십상이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상층 출신보다 평균 수입이 약 16% 더 낮았고, 사회문화적 자본이 부족해 경력 쌓기나 승진 경쟁에서 번번이 밀려났다.
저자들은 방송국, 회계법인, 건설사, 연기자 등 175명을 심층 인터뷰해 엘리트 직업 내부의 역학 관계를 세밀히 살폈다. 특권층 아이들은 부모 도움을 받아 인턴십 등 좋은 직장에 접근할 기회를 쉽게 얻고, 이를 발판 삼아 능력을 인정받고 출셋길을 열었다. 부모라는 순풍을 타고 성공을 향해 질주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착취적 일자리를 거부하고 좋은 회사, 훌륭한 인맥, 유망한 직업을 얻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엄마 아빠 은행’이 이들을 책임지고 먹여 살리며 떠받쳤던 까닭이다. 기약 없이 좋은 자리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연예계, 방송계에서 이런 현상은 아주 선명했다. 금수저가 아니면 긴 무명 생활을 도무지 버틸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최근 연예인 중에서 금수저 출신이 많아지는 이유를 알려준다.
반면에 중산층 이하 아이들은 생활고에 쫓겨 나쁜 일자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기적처럼 엘리트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그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들은 자주 야망이나 포부나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타박받았다. 세련된 태도, 우아한 말씨, 적절한 유머 감각 등 익숙지 않은 특권층 문화가 이들을 위축시켜 조금씩 기회를 빼앗았다. 고위직에 오를수록 하층 출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였다. 말 안 통하고 취향 안 맞는 사람으로 몰려 윗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등 ‘비공식 후원’을 받을 수 없어서 승진에서 서서히 밀리는 것이다.
학력, 기술, 자격 등 개인 능력은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능력이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인정받는 경로다. 엘리트 직업일수록, 고위직으로 갈수록 개인 능력은 특권층 문화에 종속된다. 따라서 그런 문화에서 교육받고 자라서 그 언어, 취향, 행동 규범 등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매우 유리하다. 하층 출신 아이들은 그에 어울릴 수 없어 서서히 밀려나거나 중간에 스스로 야망을 포기하는 자기 제거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대신 슬프게도 소확행이나 욜로를 외친다.)
저자들은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려면 엘리트 직업 내 출신 계급을 정기적으로 파악해서 천장 효과를 유발하는 요인들을 제거하라고 권한다. 특히, 부모 찬스를 이용할 수 있는 “무급 및 미공고 인턴십을 금지”하고, 비공식 후원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인사 절차를 투명화하며, 노동계급 출신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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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문화일보> 서평입니다.
 
 
샘 프리드먼, 대니얼 로리슨, 『계급 천장』, 홍지영 옮김(사계절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