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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문학 번역

 

발자크, 스탕달, 플로베르, 졸라로 이어지는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을 번역할 때 가장 먼저 겪는 어려움은 물리적인 어려움이다.

다시 말해 분량이 방대하기에 상당한 시간적 투자와 함께 특별한 집중력을 요한다.

그런데 방대한 분량의 번역에서 주의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말 실력임이 틀림없다. 번역자에게 풍요로운 어휘 지식, 다채로운 문장 구성력이 없다면, 요컨대 300쪽 이상 길게 쓸 문장력이 없다면 좋은 번역서가 탄생하기 힘들 것이다.

프랑스 번역학자 앙투안 베르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낯선 언어의 시련이상으로 낯익은 언어의 시련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

_ 유기환, 문학번역이란 무엇인가?, 악스트40(202201/0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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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언어의 시련.....

깊은 함축을 담은 말이네요.

이 글은 에밀 졸라의 패주(문학동네, 2020)를 번역한 소감을 적은 글입니다.

단어 하나, 대화의 말투, 지명, 화법, 문체 등 패주를 번역하면서 겪었던 문학 번역의 난점을 차례로 짚어 갑니다.

문학의 경우, 문체를 파괴하는 번역은 부분적인 오역보다 더 나쁘다. (중략) 작가의 문체를 전달하는 일 다음으로 어려운 것은 등장인물의 말투를 번역하는 일이다. 말투란 발화자의 문체이다. (중략) 문학 번역의 경우, 요는 작가의 스타일, 인물의 스타일의 번역이다.”

창작자가 침문의 바다에 힘겹게 말을 던지는 자라면, 번역자는 그 말을 또 다른 미지의 바다로 힘겹게 연결하는 자가 아닐까.”

짧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 글입니다. 번역자나 편집자가 한 번쯤 음미할 만한 글이네요.

ps. 패주의 표지는 참 우아한 포즈의 죽음이지만, 본문의 죽음은.....ㅜㅜ

 

 
 
 
 《악스트》 40호(2022년 01/02호)

 

에밀 졸라, 『패주』, 유기환 옮김(문학동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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